3심 재판, 대법원 아닌 '상고법원'에서? … 국회의원들도 입장 엇갈려

입력 2015-04-21 21:45 수정 2015-04-21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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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려드는 감기 환자 때문에 대학병원이 정작 치료법 연구를 못하고 있다.' 한 전직 대법관은 퇴임 직전 1년에 3만건 이상의 사건이 몰려드는 대법원의 어려움을 병원에 빗대 이같이 토로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위원장 이상민)는 20일 국회 본청 법사위 대회의실에서 공청회를 열어 '상고법원' 설치에 관해 논의했다.

상고법원은 대법원이 본래의 역할을 하기 대안으로 제시된 제도다. 2심 판결에 불복하는 3~4만건의 사건 중 대법원 판결이 필요한 사건과 그렇지 않은 사건을 나눠 전자는 대법관들이, 후자는 새로 설치된 상고법원 판사들이 판결하게 한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여·야 의원168명은 지난해 12월 이러한 내용의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우리나라에서 재판이 이뤄지는 '심급'은 기본적으로 3단계다. 대법원은 사실관계를 다루는 1, 2심과 달리 재판에 적용된 법률 이론만을 검토한다.

대법원은 법 해석에 관해 새로운 기준을 제시해야 하지만, 사건이 너무 많아 제기능을 할 수 없다는 게 법원 측의 설명이다. '교통범칙금 사건도 상고심으로 넘어온다'는 말이 엄살이 아닌 셈이다.

사건 당사자 입장에서는 일장일단이 있다. 상고법원이 도입되면 대법관에게 3심 재판을 받을 기회가 줄어들지만 '심리불속행' 판결을 받는 일은 없어진다. 심리불속행이란 대법원이 심리를 하지 않고 사건 당사자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말한다. 지난해 대법원에 올라온 사건 중 절반 이상이 심리불속행으로 제대로 된 심리를 받지 못했다. 대법원은 상고법원 도입을 추진하며 '심리불속행' 제도를 폐지한다는 조건을 걸었다.

상고법원 도입 문제는 국민이 재판받을 권리와 밀접한 사안인 만큼, 이날 열린 공청회는 당초 예정됐던 시간을 초과해 장시간 동안 진행됐다. 이날 공청회에는 △서보학 경희대 로스쿨 교수 △유병현 고려대 로스쿨 교수 △이재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사법위원회 부위원장 △장준호 수원지검 검사 △한승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실장이 나서 전문가로서 의견을 개진했다.

◇이병석 위원(새누리) "20년 논의했으면 설치해야…'4심 재판' 비용은 국가가"

새누리당 소속의 이병석 위원은 상고법원을 가능한 빨리 설치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위원은 "대법원 기능 정상화와 구성 다양화 문제를 논의한 지 20년 가까이 되는데, 연간 3만6000여건의 사건이 대법관 14명의 손에 매여 판결이 지체되는 것은 정의롭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이 위원은 '4심 비용'을 국가가 부담하는 안을 검토해보라는 말도 덧붙였다. 현재 발의된 상고법원 설치에 관한 사항을 담은 법원조직법 개정안은 '특별상고제'를 두고 있다. 헌법에 위배되거나, 대법원 판례와 상반되는 상고법원 판결에 대해 다시 대법원에서 판결을 할 수 있는 셈이어서 사실상 4심 재판을 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이 위원은 "4심제에서 인용하는 판결이 나오면 인지대를 국가가 내줘야 한다"고 지적했고, 한승 실장은 "상고법원의 잘못된 판결로 인한 인지대 국가부담은 적극적으로 검토할 수 있는 문제"라고 답했다.

◇이춘석 위원(새정치민주연합) 조건부 찬성…전관 예우 문제 심화 가능성 지적도

새정치민주연합의 이춘석 위원은 "상고법원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두가지 조건이 전제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 위원은 1심과 2심 재판을 충실히 해 대법원으로 가는 사건을 줄이고, 대법관 구성을 다양화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을 달았다.

이 위원은 상고법원을 별도로 두지 말고 대법원 내부의 조직으로 두는 방안을 언급했다. 국민 정서상 대법원에서 재판을 받는다는 인식을 주는 게 바람직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재화 변호사는 전관예우 근절 차원에서 이 위원의 주장이 바람직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이 변호사는 "현재도 상고심 사건에서 심리불속행이 아니라 대법관이 기록을 보게 하기 위해서 대법관 출신 변호사를 찾는다"며 "사건이 상고법원에 갈 것인가, 대법원에 갈 것인가의 문제가 생기면 전관예우 문제가 더 심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유병현 교수는 "상고법원에서도 사건을 대법원으로 보낼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우려는 크게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도읍 위원(새누리) "상고법원에 판사 보내면 1,2심 재판 부실…상고 허가제 해야"

김도읍 위원은 한정된 법원 인력을 상고법원에 집중하면 오히려 1,2심 재판이 부실해져 상고사건이 늘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 위원은 "우리나라와 일본은 상고율은 그다지 차이가 없는데, 항소율은 일본의 20배에 달한다"며 "1,2심을 충실히 하는 게 상고사건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이라고 말했다.

그는 "경력 15년 이상의 법관들이 상고법원에 포진하게 될텐데, 1,2심 재판장을 해야 하는 분들이 상고법원으로 빠지면 하급심 부실화가 촉발할 수 있다"며 "대법원은 과감하게 상고허가제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상고허가제는 3심 재판을 받아줄 지 여부를 법원이 정하는 것으로 우리나라에서는 1981년 도입됐지만,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한다'는 여론으로 인해 1990년에 폐지됐다.

◇임내현 위원(새정치민주연합) "대법원 필수 사건 폭 넓혀야"

임내현 위원은 '필수적 심판사건'을 폭넓게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임 위원은 "법안에 따르면 상고법원이 도입되더라도 당선무효형과 사형, 무기형은 반드시 대법원이 처리해야 하는데, 무기형이 아니더라도 징역 20년 이상의 중형인 경우에는 반드시 대법원 재판을 받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한승 실장은 "필수적 심판사건을 어느 정도 범위로 할 것인가는 입법정책으로 볼 수 있다"고 답했다. 한 실장은 다만 "필수적 심판사건이 많아지면 대법관 전원의 합의를 원칙으로 하는 데 부담을 줄 수 있으므로 조화를 이루는 범위에서 필수적 사건이 정해져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진태 위원(새누리), "인구 노령화로 사건 줄어들 것…엄살 정도껏 해야"

김진태 위원은 "(상고심) 사건 수 자체는 거의 정점을 찍은 게 아닌가 싶다"며 "인구 대비 사건 수는 조금씩 감소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인구가 노령화되고 있는데 사건이 늘겠느냐, 엄살도 정도껏 하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이에 대해 한승 사법정책실장은 "인구가 감소하면 소송이 줄고, 상고사건도 감소할 것이라는 주장이 있지만, 이를 보여주는 실증적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한 실장은 "사건 수는 정치, 사회, 경제 등 제반 요인에 따라 얼마든지 변동될 수 있다"며 "상고제도 개선 논의가 필요 없을 만큼 의미 있는 규모로 사건이 줄어들 것이라고 예측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서기호(정의당), "대법관 3명 증원으로 응급처방 충분"

서기호 위원은 '판사는 자기 사건이 항소되면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는 이용훈 전 대법원장의 말을 인용하며 "사실심을 충실히 하는 것과 신속한 재판이 충돌하면 충실화가 우선돼야 한다, 항소될 가능성이 높으면 지연을 할 필요도 있다"고 설명했다. 1심 재판을 충실히 해 항소율을 떨어트리는 게 우선이라는 의견이다. 서 위원은 "현재 사건이 많은 상황에서의 응급처방은 대법관을 3명 정도 증원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이인호 중앙대 로스쿨 교수는 "사건 수가 현재 다소 줄어든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대법원이 제기능을 못한다고 본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1심을 강화하는 나라라도 상고사건은 늘고 있고 그래서 상고허가제를 두고 있다, 모순된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홍일표(새누리당) 의원, "판사들이 편하려고 상고제도 개선하려는 게 아니다"

홍일표 위원은 "판사들이 편하려고 상고제도를 개선하려는 건 아니다"라며 "상고사건 수가 정점을 찍었는데 뭐하러 고치느냐는 지적도 있지만, (상고사건이) 2만건이 되도 제도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법원이 밝힌 지난해 상고사건 수는 3만7000여건에 달한다.

홍 위원은 상고법원 판사의 경우 대법관과 달리 대통령 임명이나 국회 동의 절차가 없어 위헌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는 "우리가 개정안을 놓고 토론하지만, 국회와 대통령이 (임명절차에) 관여하는 게 좋겠다면 그런 방향으로 논의하면 된다, 중요한 건 3만건 이상 사건이 쌓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상고법원 도입에 반대하는 이재화 변호사는 "국회 동의와 대통령 임명절차를 거치게 되면 상고법원 판사가 대법관과 차이가 없게 된다"고 말했고, 홍 위원은 "차이가 없으면 더 좋다"고 응수하기도 했다.

◇박지원(새정치민주연합), "상고허가제보다는 상고법원 설치가 국민이익"

박지원 위원은 "대법관을 30명 늘린다고 하더라도 미국 대법관이 처리하는 사건보다 훨씬 많은 사건을 처리해야 한다"며 상고허가제 도입 보다는 상고법원 설치가 더 좋은 법률서비를 받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박 위원은 "지방법원에도 2심을 담당하는 항소부가 있다, 항소부에서 재판해도 고등법원 효력과 똑같다"며 "법사위원을 오래 했지만, 지방법원 항소부에 큰 불만이 있는 것을 못봤다"고 말하기도 했다. 3심 재판을 대법원이 아닌 상고법원에서 진행하더라도 반발감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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