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자회견으로 ‘정윤회 국정개입’ 파문에 쏠렸던 관심을 돌리려던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의 바람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수첩에 적힌 메모로 물거품이 됐다. 

김무성 대표가 12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자신의 수첩을 들여다보는 장면이 언론사 카메라에 포착됐다. 수첩에는 ‘문건 파동 배후는 K, Y. 내가 꼭 밝힌다. 두고 봐라. 곧 발표가 있을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준석 전 새누리당 비대위원과 음종환 청와대 행정관 등의 이름도 적혀 있었다. 

JTBC <뉴스룸>은 13일 “K와 Y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의원”이라고 보도하며 “일단락 되는가 했던 비선 국정개입 의혹이 다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고 밝혔다. 14일자 주요일간지 역시 김무성 대표 수첩 메모가 가져올 파장에 주목했다. 키워드는 이준석 전 비대위원과 음종환 행정관이었다. 

   
▲ 13일 JTBC '뉴스룸'.
 

조선일보를 비롯한 각종 언론보도를 종합하면 김무성 대표는 이준석 전 위원과의 대화내용을 수첩에 적었다. 중앙일보는 “김 대표는 6일 새누리당 김상민 의원 결혼식에서 만난 이 씨로부터 발언을 전해 듣고 수첩에 적어놓았다”고 보도했다. 이준석 전 위원은 조선일보와 통화에서 “12월 18일 음종환 행정관이 문건 파동 배후에 김 대표와 유 의원이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말했다. 

이준석 전 위원이 밝힌 음종환 행정관의 발언은 구체적이다. 그는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음 행정관이 말한 배후란 정윤회 문건을 유출하고 사건의 판을 키운 세력 뒤에 김 대표와 유 의원이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이 전 위원은 “음 행정관이 내가 방송에서 한 발언을 비판하며 출연을 못하게 할 수도 있다고 했다”며 “내가 만난 적 없는 여성 이름을 거론하며 누구를 만나고 있지 않느냐는 협박성 발언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 전 위원은 “문제의 (음 행정관) 발언을 김 대표가 인지하고 청와대 정무라인에 사실관계 확인에 들어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동아일보는 “내용을 전해들은 유승민 의원은 6일 안봉근 대통령 제2부속비서관에게 전화를 걸어 항의했다”고 보도했다. 당사자인 두 사람 모두 이 상황을 예삿일로 보지 않았다는 의미다.

   
▲ 조선일보 5면.
 
   
▲ 한겨레 2면.
 

이는 음종환 행정관의 위치 때문이다. 조선일보는 “음 행정관은 정윤회 문건에 등장하는 이른바 십상시 멤버 중 한명”이라고 보도했다. 음 행정관은 친박계 이정현 최고위원의 보좌관 출신이다. 한겨레는 “청와대 핵심 행정관이자, 정윤회씨 국정개입 의혹 문건 보도로 명예훼손을 당했다며 소송을 낸 음 행정관이 이들과 문건 유출 사건의 개연성을 언급했다는 것 자체가 당청 간 분란과 계파 갈등의 소지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음 행정관은 조선일보‧경향신문 등과 인터뷰에서 이준석 전 위원의 발언이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음 행정관은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당시 발언을 해명하며 “박관천 경정의 배후는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이고, 조 전 비서관은 유 의원을 만나 ‘배지’나 달려고 하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 말을 근거로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이) 사실인 것처럼 논평하는 건 아니지 않느냐고 (이준석에게) 이야기한 게 전부”라고 말했다.

당청관계는 파국을 예고하고 있다. 경향신문은 “청와대가 문건 파동 배후로 집권여당 사령탑인 김무성 대표와 차기 원내대표 후보인 유승민 의원을 의심하는 정황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만만찮은 정치적 파장이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동아일보는 “김 대표와 유 의원이 거론된 것 자체가 청와대와 김 대표 체제 여당의 불편한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라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청와대나 친박 진영이 새누리당 원내대표 경선에 출마하는 유승민 의원을 견제하기 위해 K‧Y 배후설을 흘렸다는 분석도 나온다”며 “친박 진영에선 유 의원 대신 이주영 전 해수부 장관을 지원할 것이란 전망이 적잖다”고 보도했다. 한겨레 역시 “새누리당에선 청와대 보좌진에게 문제를 느낀 김무성 대표가 이 메모를 의도적으로 공개한 게 아니냐는 관측도 적지 않다”고 보도했다. 

   
▲ 박근혜 대통령이 제 18대 대선후보 때 2012년 전북 전주 완산구 농어촌공사 전북본부에서 가진 새만금과 전북경제 활성화를 위한 시민 간담회에서 토론자들의 의견을 수첩에 받아적고 있다. ⓒ 연합뉴스
 

연초부터 박근혜 대통령이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검찰 수사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자충수’ 때문이다. 한국일보는 이날 사설에서 “검찰은 정윤회 문건에 있는 2013년 십상시 송년모임과 정윤회씨의 김기춘 비서실장 관련 언급에 대해 박관천 경정의 창작으로 결론 내렸다. 그러나 문건 작성 경위와 창작 과정이 분명치 않고 허위라면 범행 동기가 있어야 하는 데 그것도 없다. 대통령이 허위라고 해도 세간의 의혹을 불식시키지 못하는 까닭은 검찰 수사의 허점에 있다”고 주장했다.

부실한 검찰수사는 ‘K‧Y 배후설’이란 김무성의 수첩 메모에 힘을 불어넣었다. 공교롭게도 문건에서 ‘십상시’로 분류된 청와대 행정관이 사건의 당사자다. 박근혜 대통령의 수첩이 다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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