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학생 생리대 파문’은 사회적 문제이자 여성 건강권 확보의 문제

  • 김은경,황인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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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6-23 07:57  |  수정 2016-06-23 07:58  |  발행일 2016-06-23 제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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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불거진 생리대 파문의 본질은 청소년기에 성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을 정립하고, 여성의 건강권을 확보하는 것이다. 대구 한살림 생협에서 판매중인 면생리대. 황인무기자 him7942@yeongnam.com

“생리대 살 돈이 없어 신발깔창 덧대”
SNS 사연에 지자체 대책마련 나서
대구시는 저소득층 7천여명 돕기로
의사회와 협의 검진과 치료도 검토
여성계선 올바른 성가치관 형성 강조


국내 생리대 점유율 1위 업체가 최근 신제품 가격을 7.5% 올리겠다는 발표를 했다. 인상계획이 발표된 후 SNS를 중심으로 ‘생리대가 비싸서 쓰지 못한다’는 여학생들의 안타까운 사연이 이어졌다. ‘생리대 살 돈이 없어 신발 깔창을 속옷에 덧대 사용했다’ ‘생리기간에 1주일간 결석하고 수건을 깔고 누워 있었다’ ‘학교 화장실의 휴지를 말아 해결했다’ 등 학생들의 사연은 엄청난 파장으로 이어져 지자체 차원의 대책을 촉구하는 계기가 됐다.

이후 대구시를 비롯해 전국의 지자체들이 저소득층 청소년에게 생리대를 무상으로 지원하는 정책을 속속 도입하고 있다.

그러나 여성계 일각에서는 이번 문제의 본질은 단순히 경제적인 지원을 넘어 여성 건강권에 대한 새로운 자각과 검토가 필요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단기적인 지원을 넘어 정부 차원의 근본적 대책이 필요함은 물론 청소년에게 참된 성에 대한 가치를 일깨울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 대구시, 생리대 지원 나서

SNS에서 시작된 생리대 파문은 이후 경기 성남·화성, 서울 등 지자체의 후속대책을 불러왔다. 대구시도 어려운 형편 때문에 생리대 사기가 부담스러운 청소년에게 생리대를 지원하고, 부인과 질환검진을 무료로 제공하는 등의 지원책을 최근 발표했다.

대구시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공동으로 만 10~18세 저소득층 여학생 7천354명을 대상으로 생리대 무료지원사업을 추진한다. 지원대상은 기초생활수급자 가정과 한부모 가정, 조손 가정, 장애인 가정 등이다.

대구시는 연간 총 예산이 10억원 정도 들 것으로 보고, 우선 6개월 치 예산 확보에 들어갔다. 올해 하반기에만 5억3천여만원이 소요될 것으로 보고 추경 예산을 편성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지원대상인 여성 청소년이 시 홈페이지나 각 동주민센터의 사회복지담당에게 신청하면 우편을 통해 생리대를 보내준다.

또 생리대 지원과 함께 여성 질환에 취약한 저소득층 청소년들의 보건 환경 개선책 마련 검토에도 들어갔다. 산부인과의사회 등과 협의해 무료 검진 및 치료 지원을 검토하겠다는 것. 다만 청소년들이 부인과 질환 검진에 수치심을 느낄 수 있는 점을 감안해 지원 방식은 신중하게 논의하기로 했다.

◆ 생리대, 본질은 여성 건강권

한국사회에서 여성의 생리는 보이지 않는 수면 아래에 감춰져왔다. 청소년은 물론 성인 여성조차도 생리라는 말 자체를 꺼내기 민망해하고, 따라서 각자 개인적인 영역의 문제인 것으로 치부해 온 것이다.

일부 청소년들이 생리를 하면서 느끼는 고충은 상당하다. 생리대를 사달라는 것을 가계에 부담을 주는 것으로 여겨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한다. 라면만 먹고, 버스비도 없이 걸어 다니는 학생의 입장에서 생리대값 1~2만원은 부담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싱글대디 가정의 자녀들은 더 많은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초경이 시작돼도 말을 꺼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아빠에게 생리대를 사달라는 말을 못해서 버티는 경우도 있다.

정일선 대구여성가족재단 대표는 “SNS를 통해 불거진 이번 생리대 파문은 그동안 금기시되고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되며 사각지대에 있던 여성의 생리를 사회적 문제로 공론화시킨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정 대표는 “생리는 단순히 한 여성이 매달 치르는 달거리라는 의미를 넘어 여성의 건강권, 재생산권 등과 연관해 큰 의미를 가진다. 처음 생리를 시작하는 청소년들이 생리에 대한 바른 가치관, 건강한 여성관을 형성하도록 돕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은경기자 enigma@yeongnam.com

■ 건강·환경 위한 선택 ‘면 생리대’
"샐까 불안하고 세탁 불편해 수요 많지 않지만 곧 익숙해지고 몸에도 좋을 것"


한 여성이 일생 동안 쓰는 일회용 생리대 수는 무려 1만개가 넘는다. 대개의 여성들은 약국과 슈퍼마켓에서 일회용 생리대를 구입해 사용한다. 하지만 이번 SNS 생리대 파문을 계기로 여성의 건강을 고려한 ‘면 생리대’가 새삼 주목받고 있다.

일회용 생리대는 나무를 베어 석유화학처리를 해 만드는데, 90%가 폴리에틸렌이라는 플라스틱이고, 약간의 펄프가 섞여 있다. 하얗게 하기 위해 형광증백제를 사용한다. 따라서 생리기간 내내 일회용 생리대를 사용하고 나면 생리대와 여성의 살이 마찰하는 부분이 가렵고 짓무르거나 염증이 생기기도 한다. 사용한 생리대는 환경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매립 때는 화학약품덩어리가 지표에 스며들어 땅을 오염시키고, 썩는 데도 100년이 넘게 걸린다. 태운다면 대기가 오염된다.

하지만 면 생리대는 건강과 환경을 지킬 뿐 아니라 빨아서 다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경제적이다. 세탁은 저녁에 세안하면서 찬물에 담가 놓았다가 핏물이 어느 정도 가시고 난 뒤 세탁기에 돌리면 된다. 아직은 수요가 크게 많지는 않다. 대구에서는 한살림 생협 등 일부 오프라인 매장에서 면 생리대를 판매하고 있다.

한살림 생협 류금희씨는 “면 생리대가 환경과 건강에 좋다는 것은 이미 많은 여성들이 알고 있지만, 자칫 생리혈이 샐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세탁의 어려움 때문에 일회용 생리대를 선택하게 된다. 하지만 면 생리대를 사용하다 보면 쉽게 익숙해지는 것은 물론 몸에 좋은 변화까지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점점 더 많은 이들이 찾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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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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