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성 줄어드는 러시아 경제 불확실성 줄어드는 러시아 경제

이광우 | 2009-06-16 |

막대한 외환보유고와 국제유가 상승 추세를 고려할 때 기업의 대외 채무 상환 불이행, 은행 위기 등 러시아 경제의 리스크 발생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평가되며, 하반기부터 러시아 경제는 안정적인 회복세를 나타낼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 기업들은 글로벌 경기 침체를 계기로 나타날 러시아의 산업 정책 변화 가능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근 글로벌 경기 침체의 속도가 둔화되고 국제유가가 저점을 통과함에 따라 급격한 경기 위축을 경험하고 있는 러시아에서도 경기 회복에 대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그러나 은행 부문의 건전성 악화로 금융 불안정성이 지속되는 등 경기 회복의 발목을 잡을 리스크들이 남아 있다는 점에서 향후 러시아 경제는 매우 불확실한 상황이라는 주장도 존재한다.


러시아의 최근 경제 상황과 함께 대두되고 있는 러시아 경제 리스크들의 발생 가능성을 살펴보고 하반기 이후 러시아 경제를 전망해 본다. 

 

최악의 국면에서 벗어난 금융 시장


지난 해 하반기 동안 러시아의 민간 부문에서 빠져나간 외국인 자본 규모는 1,498억 달러로 2008년 GDP의 9%, 투자의 41%에 이른다. 글로벌 금융 위기 발생, 국제유가 급락, 그루지야와의 전쟁 등 대내외 경제 환경 악화로 막대한 규모의 외국인 자본이 이탈하면서 러시아 금융 시장에서는 주가지수 급락, 이자율 폭등 등 극심한 금융 시장 위축 현상이 나타났다.


그러나 최근 들어 글로벌 금융 시장이 안정을 되찾아 가는 것처럼 러시아 금융 시장의 불안도 점차 완화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빠르게 절하되던 루블화가 금년 2월초부터 절상세로 전환되었고 주가지수는 508에서 저점을 기록한 이후 상승세로 돌아서면서 5월에는 1,000을 돌파하였다(<그림 1> 참조). 은행간 금리 역시 1월에 최고치를 기록한 이후 점진적으로 낮아지고 있으며, 시중 유동성 지표인 광의통화(M2) 역시 2월부터 전월 대비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금융 시장만을 놓고 본다면 최악의 신용경색 국면에서는 벗어난 것으로 보인다.

 

내수와 고용 부진으로 실물 경기는 위축 중


이처럼 금융 시장이 최악의 국면에서 벗어나고 국제유가가 상승세로 전환되었지만 러시아의 급격한 실물 경기 위축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국내외 수요 감소로 생산과 투자가 감소함에 따라 실업이 증가하고 소득이 감소하면서 국내 수요 위축이 더욱 가속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금년 1분기에 전년 동기 대비 GDP 성장률 -9.5%를 기록하면서 1998년 모라토리엄 당시보다 더 깊은 경기 침체를 보였다. 국제유가가 지난 해에 비해 40% 이상 하락하면서 수출이 전년 대비 43% 감소하였으며, 산업 생산과 투자 역시 각각 14.3%, 15% 감소한 탓이다. 기업의 생산 및 투자 활동 위축으로 실업률은 9.5%로 상승하였으며 소득 감소로 소매 판매는 1.1% 감소하였다.


국제유가가 소폭 상승세를 보였던 4월로 접어들어서도 러시아의 실물 경기는 여전히 하강세를 보였다(<그림 2> 참조). 3월에 비해 산업 생산이 8.1% 감소하였고 실질 임금과 소매 판매는 각각 0.2% 감소하였으며, 실업률은 0.7%포인트 상승한 것이다.

 

BRICs 국가들 중 러시아의 경기 침체가 가장 커


특히 러시아는 다른 BRICs 국가들에 비해 금융과 실물 등 모든 경제 부문에서 가장 큰 폭의 위축을 나타내고 있다.


글로벌 금융 위기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2008년 9월부터 올해 4월까지 BRICs 국가들의 주가지수, 환율, 외환보유고 등 주요 금융 변수의 변화를 살펴보면 러시아는 세 지수 모두 큰 폭의 하락세를 나타냈다(<그림 3> 참조). 반면 중국은 주가지수와 외환보유고 모두 금융 위기 발생 당시보다 높아졌고, 인도와 브라질 역시 러시아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양호했다.


실물 경기 측면에서도 러시아의 감소 폭이 가장 크게 나타난다. 러시아의 지난 3월 산업 생산이 전년 동월 대비 13.6% 감소한 반면 중국의 경우 7.3%로 증가했으며, 브라질과 인도는 각각 10%, 2.3%의 감소에 그쳤다.


이처럼 러시아 경제가 BRICs 국가들 중 최악의 경제 상황을 보이는 것은 에너지 자원 의존형 경제 구조와 민간의 해외 자금 조달 비중이 높은 구조적 이유 때문으로 보인다(<박스기사> 참조).


경기 침체 진행 과정에서 대두되고 있는 국내 경제 리스크


최악의 상황을 보이고 있는 러시아 경제에 대해 일부에서는 실물 경기 급랭에 따른 국내 경제 리스크 발생 가능성 마저 제기하고 있다. 대외 환경 변화에 취약한 러시아 경제가 글로벌 경기 침체로 실물 경제 위축이 이어지면서 기업의 대외 채무 불이행, 채권 은행의 연쇄 도산에 따른 은행 위기 등 새로운 리스크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내 경제 리스크의 현실화를 우려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러시아 기업과 은행 등 민간의 외채 상환 스케줄을 살펴보면 향후 2년 중 금년 4분기의 상환 부담이 가장 큼을 알 수 있다. 2009년 2분기부터 연말까지 민간이 상환해야 할 대외 채무는 전체 대외 채무의 20%인 896억 달러이며 이 중 57%를 기업이 차지하고 있다(<그림 6> 참조). 현재 급속히 위축되고 있는 실물 경기를 감안해 보면 대외 채무 상환 부담은 기업이 은행보다 상대적으로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영국 소재의 옥스포드 분석원(Oxford Analytica)은 최근 보고서에서 러시아 기업들의 만기 상환금에 대한 롤오버 비율이 40~50%에 불과할 것으로 추정하기도 했다.


또한 글로벌 금융 위기 발생 이후 무수익 여신(이하 NPL, non performing loan)이 빠르게 증가하면서 은행의 자산 건전성 악화에 대한 우려가 대두되고 있다(<그림 7> 참조). 가계에서는 실업 증가와 소득 감소에 따라, 기업에서는 자금 조달 애로와 실적 부진에 따라 은행 대출에 대한 상환 능력이 약화되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 정부와 해외 기관들은 러시아 은행의 NPL 비율이 2009년 말까지 빠르게 증가하면서 10%를 넘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러한 부실채권 증가 전망은 최근 들어서 더욱 비관적으로 변하고 있는데, 러시아 예금보험공사는 5월 22일에 러시아 은행의 NPL 비율이 연말까지 20%로 높아질 것으로, 신용평가회사인 Standard & Poor’s는 5월 19일에 러시아 은행의 NPL 비율이 10~20%가 될 수 있다고 추정한 바 있다.

 

막대한 외환보유고와 유가 상승으로 경제 리스크 발생 가능성은 낮아 


그러나 러시아의 외환보유고 수준과 유가 전망을 고려할 때 극단적인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물론 국제유가의 상승이 부진하고 러시아의 실물 경기 위축세가 하반기까지 이어질 경우에는 기업의 대외 채무 불이행과 은행 부도가 확대될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국제유가가 연말까지 강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됨에 따라 이러한 경제 리스크들의 발생 가능성은 하반기로 갈수록 더욱 낮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  외환보유고, 극단적 위기 발생 방지 가능 규모 


러시아의 외환보유고는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30% 이상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4,041억 달러로 수입 대금을 10개월 정도 지불할 수 있는 규모이다. 한편, 2009년 연말까지 만기 도래하는 민간의 대외 채무 금액은 896억 달러인데 앞서 소개한 옥스포드 분석원이 추정한 롤오버 비율의 최저치를 적용할 경우 연내에 상환해야 할 대외 채무 금액은 538억 달러로 계산된다. 또한 5월에 Citigroup이 추정한 NPL 비율 20%에서 발생할 지원금 규모가 800억 달러(러시아 중앙은행은 NPL 비율이 10~12%일 경우 추가 자본금이 최소 157억 달러가 필요할 것으로 최근 추정)임을 고려하면, 대규모 대외 채무 불이행과 NPL 비율 20% 상황에서 러시아 정부가 추가로 감당해야 할 지원금은 1,338억 달러로 계산된다. 이는 러시아의 외환보유고로 충분히 충당할 수 있는 규모이다.


즉, 국제유가가 러시아 경상수지의 적자 전환점인 배럴 당 50달러 수준에 머무른다고 해도 러시아 정부가 현재 외환보유고의 33.1%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는 뜻이다. 또한 IMF가 계산한 전세계 은행 위기에서의 평균 NPL 비율이 34%인 점과 1998년 러시아 모라토리엄 당시 NPL 비율이 40%였던 점을 감안해 볼 때에도 러시아에서 은행 위기라는 극단적인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예상된다(<그림 8> 참조).

 

•  국제유가 상승 시 은행 건전성 개선 기대


러시아에서 은행 위기라는 최악의 상황이 나타날 가능성이 낮아 보이는 가운데, 국제유가 상승세 지속은 기업의 대외 채무 상환 능력을 높여 은행의 건전성 제고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국제유가 상승은 러시아 실물 경기에 활기를 불어넣고 가계와 기업의 대출 상환 능력을 높여 은행의 부실자산 비율을 낮추기 때문이다.


국제유가 변화와 NPL 비율 간의 관계는 실증적으로도 잘 나타난다. 2002년부터 2009년 1분기까지 러시아 은행의 NPL 비율과 국제유가 변화 간의 분기별 상관관계를 구해보면, 국제유가의 변화가 1~3분기 정도의 시차를 두고 NPL 비율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난다(<표> 참조>. 또한 이 둘 간의 상관관계가 음으로 나타나고 있어 국제유가가 상승할 수록 러시아 은행의 NPL 비율은 낮아지는 것으로 해석된다.


아울러, 표본의 수가 적어 유의미한 결과로 확신하기에는 미흡하지만 최근 4년 간의 상관관계를 살펴보면 러시아 은행의 NPL 비율이 국제유가 변화에 과거보다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러시아 경제가 국제유가 변화에 더욱 의존적으로 변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에 따라 현재 악화되고 있는 은행 건전성은 국제유가의 뚜렷한 상승세를 바탕으로 가을부터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국제유가는 4월까지 배럴당 월평균 50달러 미만을 기록하다가 5월부터 60 달러 내외로 반등하기 시작했다. 또한 OPEC의 감산 정책 고수와 비OPEC의 생산 감소로 공급이 부진한 가운데 하반기부터 개도국을 중심으로 한 석유 수요 증가와 미국 달러화 약세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국제유가는 하반기에도 완만한 상승세를 보일 전망이다. 이러한 전망과 앞의 계량분석 결과를 종합해 보면, 국제유가의 강세가 나타나기 시작한 5월에서 1분기 후인 8월부터는 러시아 은행의 NPL 비율의 상승 기세가 점차 꺾이고 은행 위기 발생 가능성 논란도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하반기 이후 점진적인 경기 회복 전망


국제유가의 지속적인 상승으로 리스크 발생 가능성이 낮은 러시아 경제는 금년 하반기부터 점진적인 회복세를 나타낼 것으로 예상된다(<그림 9> 참조). 다만 국제유가 상승이 은행의 건전성 개선과 내수 활성화를 이끌어 내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하반기 중 일부 기업들을 중심으로 대외 채무 불이행과 이에 따른 영세 은행의 파산 등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이며, 내년에는 러시아 경제가 완만한 경기 회복세를 나타낼 전망이다.


2010년 이후에도 국제유가의 강세가 지속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러시아 경제 역시 지속적인 성장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글로벌 경제가 본격적인 회복을 나타낼 내후년 이후부터는 원유 수요가 증가하는 데 반해 공급 측면에서는 신용경색과 저유가로 인해 투자가 감소하면서 공급 확대가 부진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국제 석유 시장에서는 수급이 타이트한 상황이 나타나면서 국제유가의 강세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러시아 경제는 성장세를 이어나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의 산업 정책 변화 가능성


러시아 경제는 대외 의존적 경제 구조에서 당분간 벗어나기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다만, 러시아 정부로서는 이번 위기를 계기로 대외 의존적 경제 구조의 개혁에 한층 노력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경상수지의 안정화를 위해 에너지 이외 분야에서 수입 대체, 수출 촉진에 주력할 것으로 보여 우리 기업으로서도 러시아 현지 경영 전략에서 이러한 러시아 정부의 정책 의지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또한 러시아 및 현지 진출 외국 기업의 외화 자금 조달 등에 대한 러시아 정부의 감시와 규제가 강화될 가능성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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