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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탐대실] 선풍기에 다친 손가락, 당신 잘못 아니다

입력 2018-09-13 10:21 수정 2018-09-13 10:29

세상은 못 구해도 너의 일상은 구해줄게
작은 탐사, 큰 결실 #소탐대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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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탐사, 큰 결실 #소탐대실

[소탐대실] 선풍기에 다친 손가락, 당신 잘못 아니다

① 선풍기에 손가락 왜 들어가? (http://bit.ly/2oQlQZB)
② 선풍기에 다친 손가락, 당신 잘못 아니다


■ 테스트 통과한 선풍기인데 내 손은 왜 들어가지?

지난 편에서 우리는 선풍기의 망 간격이 어떻게 정해지는지 알아봤다. 기준은 테스트핑거였다.

 
[소탐대실] 선풍기에 다친 손가락, 당신 잘못 아니다

사진에 보이는 이거다. 사람의 손가락을 닮았다. 사람의 손가락을 모티브로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테스트핑거'라 불린다. 규격은 지름 1.2cm에 길이 8cm로 어른 손가락과 유사하다.

(선풍기에 손가락 왜 들어가? ▶ http://bit.ly/2oQlQZB)

이 테스트핑거를 넣어서 날개가 닿았던 선풍기 한 대가 있었고, 우리는 국가기술표준원에 확인을 요청했다.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이 선풍기만 문제일까? 마트에서 현장 조사를 해보니 손가락이 날개에 닿는 선풍기가 많았다. 아니 대부분 그랬다. 그런데 이들은 안전 시험에서 테스트핑거를 막아냈다. 하지만 그게 안전하다고 할 수 있나. 내 손은 날개에 닿는데, 결국 선풍기를 만지는 건 우리의 진짜 손가락이다.

선풍기 시험 방법이 현실성이 있는 걸까? 다시 한 번 소탐한다.


■ 테스트핑거, 이거 손가락 맞아?

선풍기가 안전 인증을 받기 위한 요건 중 하나가 망의 간격이다. 지름 1.2cm짜리 테스트핑거를 선풍기 망에 넣었을 때 날개에 닿지 않아야 한다.
 
[소탐대실] 선풍기에 다친 손가락, 당신 잘못 아니다

내 검지 손가락 끝 마디의 높이는 1.2cm로 테스트핑거 지름과 같다. 그런데 한 선풍기에 내 손가락은 들어가고 테스트핑거는 들어가지 않는다.

 
[소탐대실] 선풍기에 다친 손가락, 당신 잘못 아니다

보다시피 테스트핑거는 금속 재질이다. 전체가 단단하다. 살이 눌리는 실제 손가락과 차이가 있을 수밖에. 실생활에서는 1.2cm보다 더 굵은 손가락도 선풍기 날개를 쉽게 만질 수 있다.

 
[소탐대실] 선풍기에 다친 손가락, 당신 잘못 아니다


■ 테스트핑거와 달리 사람 손에는 살이 있다
 
[소탐대실] 선풍기에 다친 손가락, 당신 잘못 아니다

2015년 발표된 논문이다. 성인 2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검지 끝 부분의 뼈 굵기는 평균 4.8 × 3.4mm라고 한다. 나머지는 살이다. 망 사이에 들어가면 얼마든지 접힐 수 있다.

내 손가락을 선풍기에 넣을 때는 마디 하나까지 들어갔다. 마디 주변을 만져보면 그쪽 뼈가 더 굵은 느낌이다. 근데 마디뼈 두께에 관한 자료는 찾기 어려웠다. 그래서 직접 엑스레이를 찍어봤다.

 
[소탐대실] 선풍기에 다친 손가락, 당신 잘못 아니다

마디 부분의 뼈는 0.6cm 내외다. 1.2cm짜리 테스트핑거를 막아낸 선풍기 망에 손가락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던 이유, 바로 뼈의 굵기와 살 접힘 때문이다.

그래서 손가락이 굵은 어른들도 가끔 사고를 당하는 거다. 체코의 테니스 선수 크리스티나 플리스코바도 그랬다. 지난해 중국 장시오픈에 출전했던 그는 선풍기 날개에 엄지 손가락을 다쳐 기권하고 말았다. 일반 가정용과는 다른 대형선풍기였지만, 어른들도 방심할 수 없다는 걸 보여준 사고다.

 
[소탐대실] 선풍기에 다친 손가락, 당신 잘못 아니다 출처 : 트위터


■ 선풍기 망 시험에 어린이는 빠졌다

테스트핑거는 선풍기뿐 아니라 다른 전자제품을 시험할 때도 사용한다. 규격도 여러 가지다. 어린이가 위험 부위에 접근할 때를 고려한 소형 규격의 프로브도 따로 있다.
하지만 선풍기 망을 시험할 때는 어른 손가락을 바탕으로 한 1.2cm×8.0cm 규격을 사용한다. 우리나라만 그런 게 아니라, IEC 국제표준을 도입한 다른 나라에서도 그렇게 하고 있다.

모두 알다시피 선풍기 날개 사고에서 가장 취약한 건 아이들이다.
 
[소탐대실] 선풍기에 다친 손가락, 당신 잘못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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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소비자원에서 받은 자료만 봐도 그렇다. 선풍기 끼임 사고를 당한 대부분이 만 10세 미만 어린이다. 스스로 주의하면 사고를 피할 수 있는 어른과는 다르다.

특히 우리가 많이 쓰는 스탠드형 선풍기는 어린이 접근이 쉽다. 싱가포르도 이 점을 유의하고 있는 것 같다. 싱가포르 사회가족부(MSF)는 학생 지원 센터(Student Care Centre)에 스탠드형 선풍기는 쓰지 말라고 가이드라인에 명시하고 있었다. 학생들 안전을 위해서다.

 
[소탐대실] 선풍기에 다친 손가락, 당신 잘못 아니다



■ 좌식생활에서 더 민감한 선풍기 안전

먼저 이야기했듯 선풍기 망 안전 시험은 여러 나라에서 동일한 방식으로 이뤄진다. 그럼 그 수많은 나라가 어린이 안전을 외면하고 있다는 말인가?

그렇게 속단하기는 어렵다. 어느 나라나 선풍기 날개에 어린이들이 다칠 수 있다. 다만 좌식생활을 하는 우리가 좀 더 영향을 받는다. 바닥에 선풍기를 놓고 그 주변에서 생활하니 자연히 접촉 가능성이 커지는 거다.
우리처럼 좌식생활을 하는 일본은 어떨까? 이미 오래전부터 선풍기 안전에 신경 써온 듯하다.

 
[소탐대실] 선풍기에 다친 손가락, 당신 잘못 아니다

선풍기 디자인 역사를 연구한 히라노 키요시 교수(가와사키의료복지대학)는 논문에서 동서양의 선풍기 접근법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서양에서는 소형 선풍기를 바닥에 두는 일이 없지만, 일본은 다다미 위에 선풍기를 두기 때문에 어린이가 다칠 위험도 더 높았다는 거다.

아래 사진을 보면 그 차이를 알 수 있다. 1925년 출시된 독일 선풍기와 일본 선풍기의 광고다. 같은 해 제품인데도 망 간격이 확연하게 차이 난다.

 
[소탐대실] 선풍기에 다친 손가락, 당신 잘못 아니다


■ 국제 표준보다 더 안전에 공들이는 일본

현재 일본도 우리처럼 IEC 국제 표준을 바탕으로 선풍기 망을 시험하고 있다. 망을 더 좁게 하라고 따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 다만 제조사나 지자체 등이 표준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가 안전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소탐대실] 선풍기에 다친 손가락, 당신 잘못 아니다

선풍기 망을 그물 형태로 디자인해 어린이 사고를 방지하는 제품들이 있었다. 별도의 안전망을 안 써도 될 만큼 촘촘해 보인다. 사용 후기를 봐도 아이들이 있는 집에서 많이 쓰는 것 같았다. 국내에도 일부 비슷한 제품들이 있었지만, 일반적으로 쓰던 형태는 찾을 수 없었다.


■ 천으로 된 '안전망', 무조건 의지할 순 없다

아이들 안전을 위해 그나마 보호자가 할 수 있는 조치는 선풍기에 천으로 된 안전망을 씌우는 거다. 일본에서는 이 안전망까지 품질 테스트를 했다. 2011년 도쿄도 생활문화국이 시중 안전망이 어린이 손가락을 제대로 보호할 수 있는지 실험했다. 선풍기에 안전망을 씌우고, 지름 7mm의 막대를 선풍기 망에 밀어 넣었다. 만 1~2세 유아의 사고율이 높다는 점을 고려해, 2세 손가락 평균 두께인 7mm를 적용한 거다.

 
[소탐대실] 선풍기에 다친 손가락, 당신 잘못 아니다



조사 결과 시중 14개 제품 중 11개에 문제가 있었다. 안전망이 느슨해 막대가 날개에 닿았던 거다. 도쿄도는 소비자들에게 안전망 하나만 믿어서는 안 되며, 헐렁한 제품은 사용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또한 제조사와 관계 기관에는 어린이 사고를 방지할 수 있는 제품 생산과 안전 정보 제공을 요청했다.

이참에 소탐대실도 안전망을 사서 선풍기에 씌워봤다. 그리고 도쿄도 조사처럼 만 1~2세 아기가 손가락을 넣을 때를 가정해 7mm 막대를 넣어봤다. 날개에 잘 닿는다. 왜 '짱짱한' 안전망을 쓰라는지 알 것 같다.

 
[소탐대실] 선풍기에 다친 손가락, 당신 잘못 아니다

일본의 일부 가정에서는 난로에 쓰는 철조망을 쓰기도 한단다. 여름에는 선풍기를 두고 겨울에는 난로를 두는 거다.

 
[소탐대실] 선풍기에 다친 손가락, 당신 잘못 아니다


■ 선풍기 망, 방사형에서 원형으로 바꾸자

100% 완벽한 안전이란 없을 거다. 그래도 지금보다 사고 위험을 줄이는 방법은 있지 않을까? 물론 에어컨이나 날개 없는 선풍기를 쓰면 걱정은 덜겠지만, 그만큼 통장 잔고도 덜어간다.

현장조사에서 봤던 선풍기 중 눈에 띄는 게 있었다. 바로 망이 원형인 제품들이다.

 
[소탐대실] 선풍기에 다친 손가락, 당신 잘못 아니다

원형 망에는 손가락이 잘 안 들어갔다. 대부분 망 간격이 좁고 단단한 편이다. 그래서 그런지 날개가 메탈 소재인 선풍기들이 원형 망을 주로 썼다.

앞서 나왔던 일본의 그물망 선풍기처럼 촘촘하면 좋겠지만, 딱 봐도 재료비나 공정이 만만치 않을 것 같다. 그럼 원형 망은 어떨까? 흔히 쓰는 방사형 망에 비해 자재를 더 많이 쓸 것처럼 보이진 않는다. 어차피 들어가는 자재 양이 비슷하다면, 그나마 손가락이 잘 안 들어가는 원형 망을 쓰는 게 낫지 않나?

망 형태에 따라 자재 양이 얼마나 차이 나는지 계산해봤다.
조건은 다음과 같다. 지름 45cm짜리 선풍기 망이 2개 있다. 하나는 방사형, 다른 하나는 원형이다. 두 망을 각각 하나의 선으로 펼친다면, 그 길이가 얼마나 나오는지 보는 거다.

 
[소탐대실] 선풍기에 다친 손가락, 당신 잘못 아니다

방사형의 망 간격은 시중 제품들을 참고해 1cm로, 원형은 그보다 더 좁혀서 0.8cm로 설정했다. 선풍기 가장자리의 곡면도 감안했다. 계산 결과는 아래와 같다.

 
[소탐대실] 선풍기에 다친 손가락, 당신 잘못 아니다

원형 망이 약 10% 짧게 나온다. 원재료가 더 적게 들어간다는 말이다. 실제 제조과정과 차이는 있겠지만, 적어도 원형 망이 제조사 입장에서 큰 부담이 될 것 같진 않다.

원형의 망 길이가 방사형보다 짧으니, 바람이 지나는 공간이 더 많아질 거란 유추는 할 수 있겠다. 그래도 직접 실험하지 않았으니 단정하진 않겠다. 하지만 우리는 망 형태에 따른 풍량, 소음 등 효율을 고려하기 전에 안전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그렇다면 원형 망이 나름의 방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 조심하라고만 하지 말고 안전하게 바꾸자

선풍기는 사용자의 각별한 주의가 필요한 물건이다. 애초에 손가락을 넣어서도 안 된다. 그럼에도 사고는 불시에 발생할 수 있다. 어린이는 더더욱 그렇다. 제품의 변화 없이 그저 사용자의 주의만 계속 요구하는 게 맞을까?

선풍기는 오랜 세월을 거쳐 규격화됐다. 하루아침에 바뀔 수 없을 거다. 국제 표준까지 정해져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개선의 여지는 있다고 본다.

 
[소탐대실] 선풍기에 다친 손가락, 당신 잘못 아니다

[소탐대실] 선풍기에 다친 손가락, 당신 잘못 아니다

초창기 선풍기를 보면 지금과 많이 다르다. 망 사이 간격이 매우 넓다. 이때만 해도 선풍기는 고가의 전자제품이었다. 그래서 사람이 아닌 선풍기를 보호할 목적으로 망을 설치했다. 촘촘할 이유가 없었던 거다.

하지만 점차 보편화되고 사용자 안전 문제가 부각하면서, 지금의 선풍기 모습을 갖추게 됐다. 그뿐인가. 이제는 날개 없는 선풍기, 타워형 선풍기 등 새로운 유형의 제품도 자리 잡고 있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선풍기는 우리의 필요에 따라 바뀔 수 있다. 지금까지 큰 문제 없이, 큰 불만 없이 써왔다고 위험을 감수하며 쓸 이유가 있나. 현실에 맞는 대안이 차근차근 논의되어야 한다. 다음 여름, 아니면 그 다음 여름에라도 작은 변화가 시작되길 기대한다.


소탐대실 끝.


#저희는_작은_일에도_최선을_다하겠습니다

기획·제작 : 김진일, 김영주, 박진원, 송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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