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매는 없다, 민법서 부모 체벌권 없앤다

입력
수정2019.05.24. 오전 1:27
기사원문
이승호 기자
본문 요약봇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정부, 징계권 이름도 바꾸기로
“가벼운 훈육 체벌도 못하나” 반론
어디까지 체벌로 볼지도 문제
[중앙포토]
체벌이 법률상 학대일까 사랑의 매일까. 정답은 ‘재판부의 판단에 따른다’다. 민법에 있는 ‘징계권’ 때문이다.

민법 915조는 ‘친권자는 자녀를 보호 또는 교양하기 위해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어떤 것이 징계인지는 명시되지 않았다. 조문만 보면 자녀 훈육을 위한 체벌도 ‘징계권’으로 볼 여지가 있다.

법원은 자녀 체벌이 징계권을 벗어났는지 여부를 사회통념에 맞춰 구체적·개별적으로 판단해 왔다. 장화정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장은 “부모의 자녀 체벌도 아동복지법·아동학대처벌법 등으로 처벌할 수 있지만 교육 목적 등으로 고의가 없다고 판단되면 형이 줄거나 무죄가 나오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같은 체벌도 재판부 판단에 따라 학대 행위일 수도, 훈육 수단일 수도 있는 것이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23일 오전 서울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포용국가 아동정책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친권자의 ‘징계권’ 범위에서 체벌을 제외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법률상 부모의 ‘체벌 권한’을 없애는 것이다. 정부는 23일 이 같은 내용이 담긴 ‘포용국가 아동정책’을 발표했다. ‘징계권’ 이름도 바꾸기로 했다. 자녀를 부모의 권리행사 대상으로 오해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민법 915조는 1960년 제정된 이후 한 번도 개정되지 않았다. 강동욱 동국대 법무대학원장은 “법 제정 당시 아이를 강압적인 훈육으로라도 바르게 키워야 한다는 전통적 사고가 반영됐다”며 “부모가 자식을 ‘징계’한다는 생각이 지금은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친권자에게 ‘징계권’을 부여한 나라는 한국과 일본뿐이다. 일본도 지난 3월 징계권 개정을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지난 19일엔 친권자의 자녀 체벌 금지를 규정한 아동학대방지법과 아동복지법 개정안을 중의원에 제출했다. 내년 4월부터 시행될 전망이다.

이미 스웨덴 등 54개 국가에선 아동 체벌을 금지한다.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한국 정부에 가정·학교 등 모든 기관에서 체벌을 금지하도록 법률과 규정을 개정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국제인권법 전문가인 이경은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사무총장은 “유럽에선 가족법상 ‘친권(parental rights)’이란 용어를 ‘부모의 의무(parental responsibility)’로 변경했다”며 “징계권을 개정하는 데 그치지 말고 이참에 자녀 양육이 부모의 권리가 아닌 의무란 인식을 법에 담아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 77%는 “체벌 필요하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하지만 훈육 목적의 가벼운 체벌을 못하게 하는 게 지나친 처사라는 반론도 상당하다. 보건복지부가 2017년 12월 ‘아동학대에 대한 국민인식 조사’를 했더니 응답자의 76.8%는 체벌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어디까지를 체벌로 볼지도 문제다. 강동욱 원장은 “징계권에서 체벌을 제외해도 체벌을 정의하지 않으면 다양한 해석을 낳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용구 법무부 법무실장은 “체벌 정도와 사유 등도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형모(전 아동복지학회장)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체벌이 아닌 훈육 방안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할 시기”라고 말했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네이버 메인에서 중앙일보를 받아보세요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중앙일보(https://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자 프로필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사회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