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는 미래에 닥칠 재앙이 아닙니다.” (1)
2016년 9월 8일  |  By:   |  과학, 세계  |  No Comment

버지니아주 노포크(Norfolk) 시 곳곳에는 낮은 지대를 지나는 도로 옆에 도로가 물에 잠겼을 때 물이 얼마나 깊은지 확인하는 데 쓰는 자가 수직으로 꽂혀 있습니다. 갈수록 빈번해지는 침수 시에 사람들이 이 길을 차로 지나가도 될지 확인하라는 뜻일 겁니다.

노포크 시에서 대서양을 따라 남쪽으로 800km를 가면 조지아주의 작은 마을 티비 아일랜드(Tybee Island)가 나옵니다. 이곳은 원래 섬이지만 도로를 내 육로로 이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해수면이 높아지면서 해일이나 침수가 잦아져 티비 아일랜드를 잇는 유일한 도로는 ‘잠수교’ 신세가 됐습니다. 도로가 물에 잠기면 티비 아일랜드는 고립된 섬이 됩니다.

티비 아일랜드에서 다시 남쪽으로 800km를 달리면 나오는 플로리다 주 포트 로더데일(Fort Lauderdale) 시는 잦은 해일과 침수 피해로 유실된 도로와 하수 시설을 정비하는 데만 수백만 달러의 예산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대책을 세울 여유도 없이 일단 도로에 찬 바닷물을 퍼내는 데 쓰는 중장비를 대기 급급한 실정입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인간이 만들어 낸 온실가스로 극지방의 빙산이 녹고 바닷물이 팽창하면서 해수면은 조금씩 높아졌습니다. 과학자들은 해수면이 높아지면 가장 먼저 피해를 볼 곳 가운데 하나로 미국의 해안지대를 꼽아 왔습니다.

이제 과학자들의 경고는 재난영화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복선이나 교과서에나 실려 있는 이론적인 경고 수준을 넘었습니다. 바닷물은 점점 더 자주 바닷가를 넘어 뭍으로 범람하고 있습니다. 조수가 높거나 태풍까지도 가지 않는 강한 바람만 불어도 뭍에 사는 사람들의 집이나 도로가 바닷물에 잠겨버리는 일이 갈수록 잦아지고 있습니다.

폭우 때문이 아니라 바닷물이 넘쳐 일어나는 침수 피해를 흔히 “마른하늘에 홍수(sunny-day flooding)”라고 부릅니다. 미국 정부 과학자들이 이러한 사례를 집계한 결과 미국 동부와 남부 연안에서 이런 “마른하늘에 홍수”가 급격히 늘어났습니다. 해수면은 계속 높아지고 있습니다. 높아지는 속도도 빨라지고 있습니다. 상황은 갈수록 악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태평양의 조류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뀌고 있어 서부 연안도 안심할 수 없다고 과학자들은 경고합니다.

만조 때 해일이 발생하면 40~50cm 정도 침수되는 것이 보통입니다. 집이 떠내려갈 정도는 아니더라도 도로가 물에 잠겨 교통이 마비되고 특히 주택 지하실이 잠기고 차량이 부식되는 등 피해가 발생합니다. 바닷물의 염분 때문에 잔디나 숲의 식물들이 폐사하고 식수로 쓰는 지하수도 오염되고, 하수 시설이 마비될 우려도 있습니다.

해안 지역은 가뜩이나 잦아진 호우 피해에 해일 침수 피해까지 겹쳐 심각한 상황에 부닥쳤습니다. 과학자들은 최근 기승을 부리는 국지성 호우, 폭우도 온실 효과로 인한 기후변화와 관련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에서 해안 지역 침수 관련 연구를 이끌고 있는 윌리엄 스윗 박사는 피해가 눈에 띄기 시작하면 이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고 말했습니다.

“백 년 뒤에 일어날 수도 있는 그런 재앙이 아니에요. 지금 이 순간 우리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지역 주민들에게 침수 피해는 눈앞에 닥친 시급한 문제입니다. 유권자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을 수 없는 지방 정부가 가장 먼저 행동에 나선 것도 당연합니다. 침수 피해를 막거나 줄이는 데 예산을 확보하고 실질적인 대책을 세우겠다는 공약을 내세운 후보가 지방선거에서 이기고 있습니다. 마이애미 비치(Miami Beach) 시는 가장 적극적인 대책을 추진하는 곳 가운데 하나인데, 총 4억 달러(약 4,500억 원)를 조달해 도로 지대를 높이고 펌프를 설치하고 방조제를 더 높이 쌓을 계획입니다.

큰 피해를 본 도시와 지역 정치인들은 소속 정당과 관계없이 한목소리로 기후변화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티비 아일랜드의 제이슨 부엘터만 시장은 조지아주에서 가장 먼저 기후변화 상세 대응 매뉴얼을 만들어 배포했습니다.

“저는 공화당원이지만, 어떤 객관적인 분석, 연구 결과를 보더라도 해수면이 상승하고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임을 알게 됐습니다.”

하지만 기후변화는 지방정부 홀로 맞설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지방정부는 주정부와 연방정부에 방조제와 펌프 설치, 도로 복구작업 등에 필요한 예산과 함께 기후변화에 맞서는 데 필요한 전반적인 지침과 조언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지방정부의 간절한 바람이 대개 가로막히는 건 워싱턴에 있는 의회입니다. 의회는 해수면 상승에 대비해 군 기지를 보수, 강화하겠다는 군의 계획마저 예산을 승인하지 않으며 가로막고 나섰습니다. 콜로라도주가 지역구인 공화당 하원의원 켄 벅(Ken Buck)은 최근 군의 제안서를 가리켜 “급진적인 기후변화 주장”에 불과하다고 일축했습니다.

시급히 추진해도 늦은 감이 없지 않은 정책들이 의회에서 발목이 잡히면서 미국은 국가 차원에서 기후변화와 해수면 상승 문제에 제대로 대응할 동력을 모으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한,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탓에 오히려 스스로 위험을 더 키우고 있기도 한데, 대표적으로 미국 정부는 심각한 침수 피해가 우려되는 해안 지대에 새로 짓는 주택에도 기존 규정에 따라 지원금을 주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문제가 갈수록 나빠져 국가 안보에도 위협이 될 정도라고 경고합니다. 특히 바다를 떠나서는 존재 의미가 없는 해군이 문제인데, 해군 기지들이 현재 위치한 곳들은 거의 예외 없이 잦은 침수 피해가 예상되는 곳입니다.

“마치 온 나라가 국경선(해안선)을 따라 전면적인 공격을 받는 것이나 다름없죠. 집중포화는 아닐지 몰라요. 아주 느리고 점진적인 공격이니까요. 하지만 끝내 나라 전체의 안전과 안보를 위협하고도 남을 만한 심각한 공격입니다.”

플로리다대학교의 기후과학자이자 해수면 상승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안드레아 더튼 교수의 말입니다.

 

기후 변화를 몸소 겪는 사람들

노포크에 사는 캐런 스페이츠 씨는 8년 전 그날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식탁에 앉아 저녁으로 엄마와 맛있는 게 요리를 먹고 있었는데, 갑자기 발 쪽이 따끔거리고 얼얼해지는 걸 느꼈습니다. 캐런은 소리쳤죠.

“엄마! 이럴 수가, 제 발이 젖었어요. 집에 물이 찼어!”

처음에는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며 웃어넘긴 엄마도 이내 바닥에 물이 차오르는 걸 보았습니다. 스페이츠 씨는 이 모든 일이 꿈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집은 1964년에 지은 뒤로 단 한 번도 해일로 인한 침수 피해를 겪은 적이 없던 집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뒤로도 바닷물은 두 번이나 더 스페이츠 씨 집으로 넘쳐흘러 들었습니다. 꿈이 아니라 엄연한 현실이었던 거죠. 스페이츠 씨는 그 뒤로 기후변화 관련 연구들이나 뉴스를 주의 깊게 지켜보며 돈을 모아 어떻게든 침수 피해 걱정 없는 곳으로 이사하는 걸 목표로 살고 있습니다.

“기후변화를 믿지 않을 수가 없죠. 제가 지금 기후변화를 몸소 겪고 있는 걸요. 반세기 만에 처음으로 집으로 바닷물이 흘러들어왔어요. 다른 건 다 그대로인데, 그렇다면 뭐겠어요? 해수면이 높아진 거죠.”

해수면이 높아지면서 육지는 상대적으로 낮아진 셈이 됐습니다. 햄튼 로즈(Hampton Roads)라고 알려진 노포크 시와 주변 지역은 미국에서도 특히 가장 큰 피해를 본 지역으로 꼽힙니다. 노포크 시가 특별히 운이 없었다기보다 그저 미국의 다른 지역이 앞으로 겪게 될 일을 미리 겪고 있을 뿐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주택과 도로가 시도 때도 없이 바닷물에 잠기는 겁니다. 해수면이 높아지면서 큰 바다로 이어지는 바닷물길(tidal creeks, 조류 세곡)과 습지(tidal marshes)가 범람해 바닷물이 주택가로 흘러듭니다.

올여름 노포크 시를 찾았을 때 곳곳에서 바닷물이 흘러넘친 흔적, 앞으로 일어날 해일 침수에 대비한 시설을 마주쳤습니다. 도로 곳곳에는 바닷물이 빠져나가고 남은 소금기가 남아있었고, 염분이 있어도 죽지 않는 해안 습지의 식물들이 도심의 풀밭 곳곳에 잡초처럼 피어 있었습니다. 원래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을 나무들은 바닷물에 흠뻑 젖은 뒤 고사했습니다. 도롯가에는 큰 자가 수직으로 박혀있었습니다. 바닷물이 범람해 도로가 잠겼을 때 사람들이 차로 그 길을 지나가도 되는지 알려주고자 수심을 재는 용도로 쓰이는 자였습니다. 지역의 환경 운동 단체에서 일하는 윌리엄 스타일스 씨는 말했습니다.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피해가 계속 나타나고 있어요. 바닷물이 있을 곳이 아닌 도랑에 바닷물이 흘러요. 퍼내도 퍼내도 차올라 도로로 흘러넘치죠. 비도 예전에는 이렇게 심하게 내리지 않았어요. 밀물도 마찬가지로 이렇게 심하지는 않았고요. 자영업자, 상공인, 사업가, 정치인 등 직업에 상관없이 누구나 다 확연히 드러난 문제를 지나칠 수 없었죠. 이제 누구나, 어디서나 이 문제를 걱정스레 이야기하고 있어요.”

스타일스 씨의 제안으로 지역 대학교 학생들이 스페이츠 씨가 사는 체스터필드 헤이츠(Chesterfield Heights) 지역을 자세히 관찰하기 시작했습니다. 과거에는 홍수 피해가 거의 나지 않던 지역이 상습 해일 침수 지대로 바뀌자 그 추이를 정확히 살펴보고 대책을 세우기 위해서였습니다. 관찰 기록을 바탕으로 학생들과 시민단체는 이 일대 마을들을 높아진 해수면과 그로 인한 피해로부터 지키는 장기적인 계획을 수립해 제출했습니다. 버지니아 주정부는 이 계획을 토대로 연방정부로부터 1억 달러 넘는 교부금을 확보했습니다. 오바마 정부는 또한 지역 대학교 한 곳을 아예 관련 연구 중심대학으로 지정해 더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도록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장기적인 연구비용이 포함되긴 했지만, 어쨌든 지역 커뮤니티 한 곳을 관리하고 복구하는 데 우선 받아간 예산만 1억 달러가 넘는다는 건 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하고, 많은 자원과 시간을 들여 맞서야 할 문제인지 간접적으로 보여주기도 합니다.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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