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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신문에 감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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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5. 13. 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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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옛날 자료들을 찾느라 1930년대 동아일보 데이터베이스를 네이버에서 뒤적뒤적했다. 그 어렵고 암울한 시절에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신문의 전체적인 퀄리티가 좋아서 깜작 놀랐다. 요즘 동아일보보다 더 재밌고 수준이 높다.


당시 하루에 8면이 나왔는데(월요일만 4면), 1면부터 국제뉴스가 굉장히 많다. 물론 그때가 2차대전을 앞두고 있었고 또 만주사변도 나고 하는 등 세계적인 대사건들이 벌어지던 때이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은 그저 일본의 지배를 받고 괴롭힘만 당하면서 노예처럼 살았을 것이라는 지금 우리의 막연한 느낌과는 영 다른 분위기다. 이 정도 기사를 읽었다면, 당시 사람들이 꽤나 깨어있었단 얘기.





히틀러다. 지금 보면 무시무시하지만, 아직 2차대전이 터지기 전인 1937년 당시 조선사람들에겐 아주 강력한 정치지도자 정도로 보였을 것 같다. 그 당시엔 지금처럼 군사독재자에 대한 대중의 생각이 부정적이지 않았다. 시인 윤동주조차도 '조선인은 당파심이 심해서 군사독재자 아니면 통치가 불가능할 것'이라 말한 바 있다.


"병역면제세 부과"라는 제목의 기사 내용을 보면 히틀러의 인기 이유를 조금 이해할 수 있다. 1937년 9월 1일부터 독일의 병역면제자들에게 추가로 4~5%의 소득세를 부과한다는 내용이다. 2년간 의무 군복무를 한 사람은 군대 면제자보다 2년 늦게 직장생활을 하게 되고, 결국 평생동안 직장에서 동갑내기 병역면제자의 하급자로 일해야 하는 부조리가 있다는 것이 히틀러의 문제의식. 그래서 그 대가로 병역면제자들은 45세까지 소득세를 더 내게 만들었다. (단 소득 일정수준 이하 가난한 사람은 제외다)


현대의 대한민국에서도 잘 먹힐 정책이다. 대중은 이런 정책에 환호한다. 엘리트 계층은 싫어하겠지만 히틀러는 엘리트형 정치인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신문 맨 뒤에 들어가는 경제면의 수준도 상당하다. 매일 주식 시황과 시장 전망 브리핑이 실렸다. 조선의 증권거래소(조선취인소)는 1920년에 설립돼서 1930년대 후반에는 주식과 상품 선물투자가 상당히 보편화됐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보니 주가와 상품가격에 영향을 주는 금리와 외환, 국제경제 지표를 다루는 기사도 많았다. 조선일보도 마찬가지였다 한다.


위의 칼럼(경제시평)은 일본중앙은행의 저금리정책을 비판하고 있다. 요즘 한국의 경제신문들에 나오는 칼럼보다 나은 것 같다. 공교롭게 2016년 벌어지고 있는 전 세계적 저금리 현상과 비슷한 상황이었나보다. 아마 그때도 경기부양을 위해 중앙은행이 금리를 내리고 있었던듯. 허.....



동아일보, 1932821

 

저금리정책의 효과

 

일본은행이 금년에 들어 벌써 3차례나 이자율 인하를 단행했다. 상업수형 할인보합(상업채권 할인율)을 12리(*주* 100엔 당 0.012엔이라는 뜻. 즉 0.012%. cicero99님 감사합니다)로 정했다. 과거 최저율이라 할만한 명치 26년(1893년), 명치 43년(1910년)의 상업수형 할인보합이었던 13리(0.013%)에 비한다면 이번 인하는 일본은행의 금리역사에 확실한 신기록이라 할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일본은행 창설이래 최저율이라 한다.  


12리를 연리로 환산한다면 438모(0.012% X 365일 = 4.38%)다. 그럼으로 현재 미국의 25리(2.5%), 영국의 2, 불국(프랑스)25리에 비교한다면 2푼내지 26~7모의 고율로서 족히 낮은 수준이라고 칭하지 못하겠으나, 이를 다시 독일의 5푼(5%), 이태리 5, 오스트리아 7푼에 비교한다면 국제적으로 확실히 저율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우체국저금의 이자율 인하라든지 시중은행의 태도를 보아 저금리 시대의 출현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리하여 일본은행은 금번 적극적으로 정부의 저금리 정책과 협동해서 일반적 저금리를 유도했다 할 것이다. 이에 일본도 점차 세계적 저금리의 와중에 들어 일본 경제 궁황(불황)을 타개하는 동시에, 산업을 진흥시킴은 물론 세계불황의 퇴치에 향응하랴 함이라 하겠다. 그러나 현제 세계경제의 정세를 통찰할진대 금리의 인하로 경제가 근본적으로 호전되리라 하지 못한다.

 

미국의 예를 본다 하더라도 이것이 명백하며, 영국의 사정은 좀 다르다하나 또한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인가 한다. 지금 일본으로 말하면 만주문제라든지 대중국 문제와 같은 특수사정이 있는 이상, 저금리로 경제의 근본적 갱생을 기대하는 것이 의문이라 아니할 수 없다.

 

현재 일반 경제계의 원하는 바도 금리의 높고 낮음보다는 차라리 융자의 획득이라 할 것이다. 이에 당국자는 말하리라. 즉 예금이자 인하에 의하여 대출금의 비용, 다시 말하면 코스트가 저하되니까 저금리의 자금이 융통되어 그야말로 효과적 금융의 목표가 실현된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신용이 극도로 위축된 이상, 빌리지 못하는 돈이 수억 원이 있으며 따라 사용하지 못하는 수억만 원의 금전에 대한 금리가 낮아진다 하더라도 그 무슨 실익이 있겠는가. 다시 말하면 금리인하가 국민의 실제생활 효과를 가져오지 못한다면 무소용이란 것이다.

 

이 모든 관계를 종합해서 생각건대, 이번 일본은행 이자율 인하가 일반 경제를 지도한다는 의미라 하겠지만, 정부의 일로 본다면 완전히 수동적인 인플레이션 정책의 선발적 행동에 불과하다. 현재 경제 실정상 금융을 호전시킬 것이라 기대하기에는 효과적인 것이 의문이다.

 

김우평


(글쓴이 김우평이 어떤 분인지 검색을 해보니,  여수 부잣집 출신이라서 고등학교부터 일본에서 나왔고 미국으로 유학가서 오하이오주립대 경제학과-_-; 와 컬럼비아대 통제경제학(경제정책학인듯) 석사를 나왔단다. 같은 학교에서 박사를 하던 중에 모친상을 당해 한국으로 들어온 듯 하다. 동아일보 경제부장을 지냈고 1933년 조선경제학회 창립멤버였다. 그리고 만주국 경제관료로 일하기도 했다. 쯧쯧...... 돈 때문은 아닐테고 벼슬을 하고 싶으셨나보다. 암튼 해방후엔 1대 조달청장(당시엔 장관급)을 지냈고 민주당 국회의원도 했다. 한국이 계획경제하에 공업국가가 되어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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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동아일보 8개면 중 2개 면은 학술과 예술면이었다. 신문의 무려 1/4을 학예에 할애한 것이다. 심지어 글을 쓰는 사람도 지금 교과서에 소개되는 그런 문인과 예술인, 학자들이다. 요즘 신문들처럼 소양 부족한 기자들이 찌끌찌끌 쓰는 토막글들과 다르다. 요즘으로 치면 교양잡지, 예술전문지 수준의 기사와 기고문을 매일 실었던 것 같다.




왼쪽은 피아니스트 김메리에 대한 기사. '학교종'을 작곡하신 분이라 한다. 가운데는 성악가 정훈모의 음악평론. 오른쪽 사진은 stand-alone 사진이고, 밑에는 해외 연예계 학술계 소식들이 줄줄 나오고 가장 밑에는 멋진 사진이 곁들어진 연재소설이 있는데 캡쳐하진 못했다.




왼쪽은 제주도의 양성평등 문화에 대한 탐방기사. 오른쪽은 선배 민속학자가 후학들에게 주는 연구 팁들과 추천도서 리스트. 


가운데 사진은 영국에서 개발한 신형 전투기. 그리고 그 오른쪽에 작은 박스는 당시 활동하던 문인 유치진의 시. 어느 하나 버릴 기사가 없다. 당시 동아일보 독자들은 얼마나 신문 읽는 게 재밌었을까. 전반적으로 독자의 수준이 현대 동아일보 독자들보다 높게 설정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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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의 일간신문들은 매일 40면 이상을 발행한다. 근데 오히려 볼거리는 8개면만 찍던 1937년의 신문보다도 부족한 느낌이다. 글의 질이 좋으면 8페이지만 읽어도 한두시간이 훌쩍 간다. 현대의 일간신문들이 뭔가 방향을 잘못 잡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페이지수를 줄이고 질에 집중하는게 낫지 않을까? 특히 요즘처럼 인터넷이 잘 되어있는 시대에 시시콜콜하고 잡다한 기사들을 지면에 모두 담으려 할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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