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살에 자원입대 … 형제들 작년부터 흔적 찾는 중
병적증명서 이름 오류로 훈장 못받아 '15일 수여'
▲ 고(故) 정해용씨의 셋째 동생 정해덕(81)씨가 형님의 전사통지서를 가리키고 있다. 정해용씨는 1951년 3월11일 강원도 횡성군 안흥지구에서 적과 교전 중 관통상으로 전사했다. 전사통지서는 전사한 지 9일 만인 1951년 3월20일에 발송됐다. /양진수 기자 photosmith@incheonilbo.com
'1951년 3월11일 강원도 횡성군 안흥지구에서 적과 교전 중 관통상으로 전사. (전사통지서에서)'

학도병 고(故) 정해용(丁海龍)을 기억하는 단 하나의 기록이다.

1935년 인천에서 7남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1950년 겨울, 16살의 나이로 자원입대해 3개월 뒤 전사했다.

그로부터 25년 뒤 막내 정해경(58)씨가 태어났다.

막내는 명절 가족들이 모여 제사를 지낼 때 얼굴도 모르는 큰형의 축문을 읽으며 그를 알게 됐다.

누구보다 장남이 그리웠을 부모는 생전 그의 얘기는 꺼내지 않았고, 집엔 사진 한 장 남아있지 않았다.

큰형을 기억하는 셋째 정해덕(81)씨만이 "아버지를 닮아 체격이 커서 중학교 때 럭비부에서 운동을 했다"고 회상할 뿐이었다.

60여년간 큰형을 가슴 깊이 묻어온 형제들이 그의 흔적을 찾아 나선 건 작년부터다.

윤동주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에 간 막내 정씨는 윤동주와 마찬가지로 암울한 시대 속에서 일찍 세상을 뜬 큰형이 생각났다.

형제들은 막내를 필두로 큰형의 발자취를 쫓았다.

그가 다니던 인천 숭의초등학교와 인천중학교, 국방부, 국가보훈처의 문을 두드렸다.

처음부터 난관에 부딪쳤다.

병적증명서에 이름이 '정해용'이 아닌 '정해중'으로 기재돼 있었다.

군번과 주소는 동일하지만 이름이 달랐다.

막내는 지난 4월 말 전사통지서를 확인했고, 정해중이 큰형이란 사실을 밝혀냈다.

정씨는 "얇은 기름종이에 까맣게 휘갈겨 쓴 전사통지서를 보는데 눈물이 나더라"며 심경을 전했다.

큰형의 이름을 바로잡는 과정에서 이름이 달라 훈장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1954년 국방부는 큰형 고 정씨에게 화랑무공훈장을 수여할 예정이었지만 가족과 연락이 닿지 않아 무산된 것이다.

고 정씨는 오는 15일 64년 만에 훈장을 받게 된다.

여전히 형제들은 큰형의 사진 한 장 찾지 못했다.

1972년에 없어진 인천중에서는 입학한 사실조차 확인할 수 없었다.

정씨는 자료 하나라도 더 찾기 위해 숭의초교 총동창회를 통해 졸업생들을 수소문하는 중이다.

그는 "가족이 기억하지 않는 사실을 역사가 기록할 리 없다. 자료를 찾고 또 찾겠다"고 했다.

흔적 찾기의 대상은 고 정씨에 그치지 않는다.

"큰형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진 전몰학도병 1300명의 신원을 밝히고 유골이 안장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한편, 가족들은 1950년 당시 인천 선화동에서 살았고 인천중학교 1학년이었으며 럭비부원이었던 정해용을 알거나 관련 사진이 있는 분들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다.(itellove@naver.com)

/김예린 수습기자 yerinwriter@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