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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절벽` 우려에 문 닫는 점포…소비세 인상에 움츠린 日경제

정욱 기자
입력 : 
2019-09-30 18:01:08
수정 : 
2019-09-30 23:3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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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부터 소비세율 8%→10%…새로운 도전 나선 일본

제각각 세율적용에 혼란 가중
빵 사서 매장서 먹으면 10%
바깥 공원벤치서 먹으면 8%
전자결제땐 5% 포인트 환급

사재기로 TV 매출 4배 급증도
◆ 日 소비세 5년만에 인상 ◆

사진설명
도쿄 지요다구에서 90년간 영업해온 노포 수제구두점 오쓰카야가 30일을 끝으로 폐업했다. 고객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소비세까지 인상되면 고객이 더 줄 것이란 점이 결정적 이유다. 소비세율 인상이 내수까지 침체시킬 수 있다는 염려가 일본 내에서 커지고 있다. [도쿄 = 정욱 특파원]
"소비세율 인상분을 가격에 반영하긴 했는데 걱정이 앞서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일본 도쿄 니혼바시의 일본은행 앞에서 인근 직장인을 상대로 커피 트럭을 운영하는 미치가즈 에리카 씨는 10월 1일부터 시작되는 소비세 인상에 좌불안석이다. 가뜩이나 장사가 부진해서 걱정인데 세금 부담이 늘면 다들 소비를 줄이게 되고 미치가즈 씨의 주력인 커피나 간식 등이 첫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어서다. 본인도 이해가 어려운 소비세 적용 방식을 고객에게 설명하는 것도 부담스럽다.

1일부터 일본에서 모든 제품에 부과되는 소비세가 기존 8%에서 10%로 오른다. 한국의 부가가치세와 비슷한 소비세가 인상된 것은 2014년 4월 이후 5년여 만이다.

2014년 소비세 인상 이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떨어지는 등 충격이 적지 않았다. 5년 전 악몽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며 일본 정부에서는 다양한 대책을 쏟아냈다. 하지만 너무 많은 대책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면서 일선 현장에서는 혼선을 불러오는 등 역풍도 만만치 않았다. 소비세율 인상에 따른 서민 경제 충격이나 소비 감소를 줄이겠다며 일본 정부가 각종 예외 항목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경감세율이란 이름이 붙은 예외 항목은 언뜻 듣기에는 명확한 기준 같지만 구체적 사례를 보다 보면 황당한 사례가 적지 않다. 일례로 매장에서 빵을 먹으면 세율이 10%지만 테이크아웃으로 사서 바로 옆 공원 벤치에서 먹으면 세율이 8%다. 원래는 서민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음식품과 신문 정기구독에 대해서만 8%를 인정하려던 것이 점차 예외가 늘기 시작해 담당 직원도 세율이 고민스러워질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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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신용카드, QR코드 결제, 교통카드 등 전자결제를 촉진하겠다며 구매 금액에 대한 포인트 환원 정책도 1일부터 시작된다. 중소 규모 매장(자본금 5000만엔 이하)에서 물건을 구매하고 전자결제를 하면 구매 금액의 5%를 포인트로 돌려준다. 편의점 등 프랜차이즈 매장에선 포인트 환원율이 2%, 백화점에선 포인트 환급이 없다. 똑같은 빵을 어느 매장에서 어떻게 구매하는지에 따라 적용 세율이 3%, 5%, 6%, 8%, 10%로 제각각이다. 여기에 전자결제의 경우 금융사별로 포인트를 적립해주는 곳도 있고, 금액을 깎아주는 곳도 있다. 소비자는 물론 판매자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판매자로서는 복잡해진 세율 계산에 맞춰 결제단말기 등을 교체해야 하는 부담이 작지 않다. 이 때문에 돈을 주겠다는데도 전자결제 도입을 포기하는 곳이 많다. 일본 경제산업성에서는 전자결제 도입에 따른 포인트 적립 대상이 되는 매장이 200만곳에 달할 것으로 봤지만 9월 말까지 허가를 받은 곳은 4분의 1 정도인 50만개 매장에 그쳤다.

소비세 인상을 계기로 사업을 접는 곳이 나타나고 있다. 도쿄 간다에서 90년간 수제구두를 판매해온 오쓰카야는 9월 30일부로 폐업했다. 후계자 문제 등으로 고민하던 중에 소비세 인상이 결정타가 됐다. 오쓰카야는 "소비세 인상으로 인해 고객이 더 줄지 모르는 데다 결제단말기 교체 등 비용만 늘어 결국 문을 닫기로 했다"고 밝혔다.

가격 인상에 따른 고객 이탈이나 제각각인 가격에 대한 소비자 불만을 염려해 세율 인상에도 가격을 유지하기로 한 곳이 등장했다. 일본 최대 대중음식점 체인인 스키야는 1일 이후로도 매장 내 식사 고객에 대한 판매가를 낮추는 식으로 기존 세후 판매가를 유지하기로 했다. 맥도널드 등에서도 일부 제품을 제외한 주요 제품 가격을 동결했다.

소비세를 줄이려는 소비자가 몰리면서 9월 30일까지 소비가 큰 폭으로 늘어났다. 이 때문에 10월 1일 이후 '소비절벽'을 염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대표적인 사재기 품목은 4K 영상 시청이 가능한 TV다. 특히 올해 12월부터 일본 위성TV 등에서 4K 방송에 나설 예정이라 조금이라도 쌀 때 사자는 수요가 몰렸다. 비쿠카메라 신주쿠점에서는 9월 4K TV 매출이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4배 이상 늘었다. 같은 매장에서 냉장고와 세탁기도 2배 이상 증가했다고 아사히신문이 30일 보도했다.

도쿄에서 가장 고급 쇼핑가인 긴자의 마쓰야백화점에서는 9월 보석류와 시계 등의 판매가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2배로 늘었다.

[도쿄/정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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