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사건 외부전문가 투입계기 '협업' 지적
'심리학 박사 등 300명 보유' 미 FBI는 일상

최근 화성사건을 계기로 장기미제 등 해결이 어려운 사건에 '외부전문가'를 투입하지 않는 경찰의 수사기법이 지적을 받는 모양새다.

선진국에서는 경찰-전문가 간 '협력'이 이미 시스템적으로 자리 잡았지만, 유독 국내 경찰은 변하지 않아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꾸준했다.
경기 경찰의 경우 이례적으로 외부전문가와 토론하고 조언을 받는 방식의 수사를 실행했으나 계속 활용하지 않아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14일 경기남부지방경찰청 등에 따르면 경찰은 화성사건 증거물에서 용의자 이모(56)씨의 DNA가 검출됨에 따라 전직 수사관과 범죄심리학자 등 외부전문가와 함께 수사를 펴고 있다.
경찰은 외부전문가 도움으로 그동안 확인하지 못했던 화성사건 전후 발생한 유사범죄를 파악하는 등 간과했던 부분을 재차 들여다보고 있다.

그동안 경찰은 화성사건을 수사하면서 범죄심리학자 등 전문가 투입 없이 기존 경찰만으로 사건을 해결하려 했다.
그러나 1986년 9월15일 1차 범행에서부터 1991년 4월3일 10차 범행이 발생할 동안 용의자는 파악되지 않았다. 2006년 마지막 10차 사건 공소시효가 끝날 때까지도 이 같은 수사가 지속됐다.
화성사건뿐 아니라 다른 미제사건들도 마찬가지였다.

이수정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국내는 전문 인력 없이 기존 수사 경찰만으로 수사해 한계가 있다"며 "이 같은 상황에서도 외부전문가를 대규모로 모아 조언을 받는 일은 거의 없다"고 했다.
이 교수는 "현재 미국 FBI는 심리학 박사 등 전문가만 300명 이상이고, 현장요원이 곧 전문가"라며 "앞으로 경찰도 전문 인력을 뽑아 실제 현장에서 협업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기 경찰이 '전문가 투입 방식'의 수사기법을 아예 시도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2006년 12월부터 '경기남부 지역에서 부녀자 실종 사건'이 잇달아 발생하자 외부전문가들을 투입해 수사 도움을 받았다.
공개수사 전환에도 용의자 윤곽조차 파악되지 않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경기남부 부녀자 실종사건은 2006년 12월14·24일 수원과 화성에서 노래방 도우미 배모(45)씨와 박모(37)씨가 각각 실종된 데 이어, 이듬해 1월3일·6일 같은 지역에서 회사원 박모(52)씨, 노래방 도우미 김모(37)씨가 실종된 사건이다.

당시 경찰대 표창원 교수, 이수정 교수 등 교수 4명과 전직 형사, 경찰청 범죄연구관 등 모두 8명이 수사에 참여했다.
이들은 사건 현장을 직접 찾아 범행패턴 등의 공통점과 수사미비점 등을 분석했다.
또 전문가들은 현장 분석결과를 토대로 의견을 나눈 끝에 '연쇄살인사건'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전문가가 수사에 참여하는 일이 없었던 터라 경찰 내부에서조차 이례적인 일로 평가받았다.

경찰은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해 수사에 활용했고, 2009년 1월25일 군포에서 여대생 살해 혐의로 붙잡힌 강호순이 진범으로 밝혀졌다.
연쇄살인에 무게를 둔 전문가들의 의견이 맞아떨어지면서 '외부전문가의 수사 참여 효과' 입증된 셈이다.
하지만 이후 미제사건에 외부 전문가가 대거 참여한 적은 더 이상 없었다.

곽대경 동국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도 "이번 화성사건이 외부의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수사방향 범죄성격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경훈 기자 littli18@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