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타치 11조원 이어… 파나소닉도 美 SW업체 인수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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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1.04.09. 오후 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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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제조기업들, M&A로 돌파구 찾기

일본 최대 전기·전자 기기 업체 히타치(日立)는 최근 미 실리콘밸리의 소프트웨어 기업 글로벌로직을 96억달러(약 11조원)에 인수하기로 했다. 연 매출의 10%가 넘는 금액으로, 일본 전자 업계 사상 최대 규모 인수합병(M&A)이다. 일본 산업계에선 “110년 기업의 사활을 건 도박”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1905년 설립한 히타치는 전후 산업용 기계·가전을 앞세워 일본 제조업 신화의 핵심 주역으로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중국 제조업의 저가 공습에 밀려 2008년 일본 제조업 사상 최악의 적자(7880억엔·약 10조원)를 기록한 이후 제조업 비율을 낮춰왔다. 히타치는 이번 인수를 통해 사업의 중심 축을 디지털로 완전히 옮길 것으로 알려졌다.

보수적인 기업 문화로 유명한 일본 기업들이 최근 과감한 해외 인수합병(M&A)으로 사업 구조와 체질을 혁신하고 있다. TV·반도체·조선에서 한국과 중국의 부상에 밀려 절치부심하던 이들은 전혀 새로운 분야에 도전장을 내밀고 부활에 시동을 걸고 있는 것이다. 세계 최고 기술력을 갖춘 분야라도 미래 전망이 서지 않으면 과감히 매각하고 신성장 동력을 찾아 새 분야에 뛰어드는 기업들이 나오고 있다.

M&A에 돈 안 아낀다

소니·히타치와 함께 일본 전자 업계의 간판이었던 파나소닉은 알짜 수익원이자 90년 역사를 자랑하던 일회용 건전지 사업을 매각했다. 그리고 7조원을 들여 미 소프트웨어 업체 블루욘더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유통 매장과 물류 시설용 CCTV와 바코드 판독 단말기 분야의 세계 시장 점유율이 높은 파나소닉은 블루욘더의 인공지능(AI) 물류 분석 기술을 결합해 물류 서비스 시장에 진출하겠다는 전략이다. 이를 통해 가전 등 제조업에 편중된 사업 구조를 IT 서비스업 중심으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디지털 카메라의 최강자인 광학 기업 니콘은 지난 2일 미국 중소형 위성 개발 업체 모프3D를 인수했다. 스마트폰에 밀려 미래가 불투명해진 디지털 카메라 분야 대신 성장 산업으로 부상하고 있는 우주 사업을 강화한 것이다.

일본 산업계는 그동안 기업 M&A에 소극적이었다. 여유 자금이 생기면 기술 개발이나 부동산에 투자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이런 안정 추구형 투자 관행은 일본 경제의 체질을 약화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랬던 일본 기업들이 이제 해외 기업 인수로 새 업종에 뛰어들고 있는 것이다. 금융 정보 업체 리피니티브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 기업의 M&A 건수는 총 4305건으로 지난 2018년(3943건)을 넘어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M&A로 주력 사업을 바꾼 대표적인 사례가 소니다. 소니는 2000년대 들어 만년 적자이던 PDP TV, 노트북PC 사업을 과감하게 정리하고 게임·음원·영화 등 콘텐츠 기업이 됐다. 지난해 말 미국 애니메이션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업체 크런치롤(1조2000억원), 2019년 게임 개발사 인섬니악게임스(3000억원), 2018년 글로벌 음반사 EMI(2조원) 등 최근 3년간 콘텐츠 업체 인수에 5조원 넘게 썼다. 소니는 지난 2000년 전체 매출에서 전자 사업 비율이 70%에 육박했지만 현재는 게임·음악·영상이 50%, 전자 22%로 역전됐다.

코로나도 변화 촉진

코로나 위기는 일본 산업계의 체질 개선을 가속화했다. 대대로 가업을 잇는 전통에 따라 쉽게 사업을 바꾸지 않던 기업들이 코로나 위기를 계기로 발 빠르게 주력 사업을 전환하고 있는 것이다.

산업용 기계 대기업인 미크론정밀은 지난해부터 3D(입체) 프린터를 이용해 페이스실드(얼굴 가리개)를 대량 생산하고 있다. 코로나 사태 직후 도요타 등 주요 고객사들이 주문을 줄이자 의료 사업으로 사실상 업종 전환한 것이다. 미크론정밀은 최근 의료 기기 부서를 신설하고 전동식 뼈 수술 기기를 출시했다. 나고야의 타카라택시 그룹은 지난해 일본 택시 업계가 승객 감소로 줄도산하는 가운데 쇼핑 대행 서비스를 시작했다. 외출을 꺼려하는 고객을 대신해 마트, 약국에서 물건을 구입해 택시로 집까지 배달하는 서비스다.

IT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로 위기에 몰린 일본 업체들이 사업 전환뿐 아니라 종신고용제·연공서열제 등 일본 경제 발목을 잡는 요소를 빠르게 걷어내고 있다”며 “과거 일본 산업계에선 보기 힘든 발 빠른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최인준 기자 pe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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