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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남의 광장은 불법 정치자금을 전달하기에 적당한 접선 장소였다.
ⓒ 오마이뉴스 조호진
LG그룹에 이어 현대자동차그룹이 불법 대선자금을 한나라당에 전달하기 위해 접선장소로 사용한 곳이 두 번 모두 경부고속도로 '만남의 광장'으로 드러나 세인들의 관심을 끌고있다.

차량과 사람들이 만나고 쉬어가는 '만남의 광장'이 검은돈을 주고받은 장소로 악용된 셈이다. <오마이뉴스>는 문제의 현장인 '만남의 광장' 현장을 급히 찾아가 보았다.

12일 오후 1시께 경부고속도로 입구의 '만남의 광장'은 쉴 새 없이 오고 가는 차량들로 분주했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약속된 만남을 가진 뒤 휴식을 취하거나 간단한 요기를 한 후 다시 목적지로 출발한다. 하루에 수천여대의 차량이 이곳에 머물다 간다.

주5일 근무의 마지막 날인 금요일인 탓인지 '만남의 광장' 주차장에는 평소보다 많은 차량이 몰려들었다. 이곳 경비원들은 쉴새 없이 드나드는 승용차와 화물차를 정리하기에 바빴다. 100여대의 주차된 차량 가운데는 현대자동차그룹이 2차례에 걸쳐 100억원을 전달한 현대 '스타렉스' 4대 가량이 눈에 띄었다.

▲ 서정우 변호사
ⓒ 오마이뉴스 권우성
SK가 정치자금을 전달한 지하 주차장이 은밀한 공간이었다면 LG그룹과 현대자동차그룹이 정치자금을 전달한 '만남의 광장'은 의표를 찌를 수 있는 평범한 공간이었다. 붐비는 차량과 북적대는 사람들 그리고, 회차(回車)가 가능한 굴다리….

마치 서울을 벗어나 지방으로 여행을 가듯이 '만남의 광장'에서 잠시 주차한 뒤 '검은 돈'이 가득 실린 차량을 '차떼기'로 건네받는 데는 이곳이 그 어떤 장소보다도 용이했을지 모른다.

'만남의 광장' 좌측에는 주유소가 있고 주유소 바로 밑으로는 굴다리가 있다. 이회창 후보의 최측근이자 대선자금 모집책으로 드러난 서정우(60·구속) 변호사는 이곳에서 LG그룹 150억원, 현대자동차그룹 100억원 등 모두 250억 원의 거액이 실린 차량을 통째로 전달받은 뒤 주유소와 굴다리를 유유히 빠져나간 뒤 불법자금을 은폐할 모처로 이동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깡패 같은 정당은 수백억 뜯고, 썩어빠진 재벌은 정치자금 바치고"

▲ 화물운전사 배씨는 100억을 차에 싣기만 해도 심장마비로 쓰러질 것이라며 황당해 했다.
ⓒ 오마이뉴스 조호진
"깡패같은 정당은 수백억 원의 정치자금을 뜯어내고 재벌그룹은 이권을 보장받기 위해 불법자금을 제공하고…. 서민들로서는 분통이 터지는 일이다. 그렇게 갖다 바칠 돈이 넘쳐나면 근로자들의 복리후생에 써야지 썩어빠진 정치자금으로 바치는 게 말이 되느냐"

택시기사 황효정(45)씨는 전철역 양재에서 만남의 광장까지 가는 도중 한나라당과 재벌그룹의 불법 대선자금을 주고받은 사건에 분통을 터트렸다. 황씨는 "만남의 광장이 차와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이라 의심받지 않을 것 같아 택한 것 같다"고 말했다.

'만남의 광장'에서 만난 서민들은 이 곳이 수 백 억 원의 정치자금을 건넨 접선 장소였다는 사실에 허탈해하면서 분노와 무기력 감을 동시에 터트렸다. 이들에게 돈을 뜯어내는 정당과 정치인들은 깡패 이상의 깡패에 불과했으며 존경은커녕 욕설을 토해내도 시원치 않은 부패세력이었다.

지방출장 동행을 위해 이 곳에서 회사동료를 기다리던 나흥균(39·회사원)씨는 "한나라당과 이회창씨는 그 동안 정치자금을 받지 않았다. 전혀 모른다는 거짓말로 국민을 속였는데 이제는 할 말이 없을 것이다"면서 "1억 원을 받았다는 이광재씨는 구속되고 수백억 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뜯어낸 한나라당 의원들은 큰소리치는 게 우스꽝스러운 현실이다. 부패정당을 심판하고 불법자금 관련된 정치인은 법대로 처벌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정치자금 운반차량으로 이용된 현대 스타렉스 운전자인 황재용(35)씨는 "이 차에 라면상자 30박스 정도를 실어본 적이 있다"면서 "화물차와 달리 적재물이 외부에 드러나지 않은 장점을 이용해 정치자금을 운반한 것 아니냐"고 나름대로 해석했다.

소규모 사업을 하고 있다는 황씨는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높은 한나라당이 대선자금을 요구하는데 어떻게 재벌기업이 거절할 수 있겠느냐"며 기업을 심정적으로 이해하면서도 "재벌기업과 한나라당이 책임져야 할 문제이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도 캐면 액수 차이가 있겠지만 정치자금이 드러날 것이다"고 검찰의 엄정한 대선자금 수사를 요구했다.

2.5톤 개인화물 운전사인 배종수(55·경기도 성남)씨는 서민의 아픔을 토로했다. 배씨는 "5시간 거리인 대구까지의 운임비가 10만원이라면서 이중 기름값 6만원과 식사비와 톨게이트비를 빼면 3만원 정도밖에 남지 않는다"고 했다. 배씨는 "운이 좋으면 짐을 싣고 돌아오기도 하지만 경제불황으로 물량이 줄면서 빈차로 돌아올 때가 많다"고 한숨을 토했다.

한달 수입이 100만 원 정도라고 밝힌 김씨는 "100억원을 차에 싣기만 해도 심장마비로 쓰러질 것"이라며 황당해 했다.

배씨는 "귀에 억억 소리가 들려오는데 도대체 감이 잡히지 않는다. 우리 같은 서민들은 감출 비자금은커녕 하루 벌어 먹고살기에 급급하다"면서 "정치보복을 하기 보다 깨끗하고 투명한 정치로 바꾸어야 한다. 국가가 선거비용을 준다면 썩은 정치가 바뀔 수 있지 않겠냐"면서 부패정치 청산을 희망했다.

▲ '만남의 광장'에 주차된 현대 '스타렉스'. 차량 멀리 현대자동차그룹 건물이 보인다.
ⓒ 오마이뉴스 조호진
손채호(59·경기도 성남시)씨는 불법 대선자금 접선장소인 '만남의 광장' 경비원이다. 식당 종업원으로 일하는 아내와 맞벌이하면서 자녀 4명을 키웠다는 손씨는 12시간 교대근무로 월 100만원의 월급을 받는다고 밝혔다. 1년 넘게 근무했다는 손씨는 이 곳이 수백 억대의 정치자금 전달장소가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말했다.

손씨는 "수백억 원의 돈을 이곳에서 전달한다는 것을 상상하지도 못했고 무엇보다 수 천대의 차들이 정신없이 왔다갔다 해 신경을 쓸 겨를도 없다"면서 "피곤하게 일하고 약주 한 잔 하는 게 낙인데 감도 잡히지 않는 수백억 원을 덜컹 주고받았다고 하니 어이가 없다"면서 내년 선거가 돼도 투표할 마음이 없다고 말했다.

기자는 서 변호사가 '차떼기'로 정치자금을 건네받은 뒤 서울의 모처로 돌아가려고 지나갔을 주유소와 굴다리를 거쳐 서울로 향했다. 차 속에서 60대의 택시운전사는 불법정치자금 사건을 이렇게 진단했다.

"불법 대선자금을 모금한 정치인들은 깡패 중에서도 상 깡패다. 정주영씨가 청문회에서 '속 편하기 위해 돈을(정치자금) 주었다'고 했는데 맞는 말이다. 작년 대선에서 이회창씨가 대통령이 되는 게 대세였는데 선거자금을 요구하지 않아도 기업이 알아서 갖다 바쳤을 것이다. 정치권과 기업 모두 도둑의 소굴이나 마찬가지다"

LG는 트럭, 현대자동차는 스타렉스, 삼성은 '월간지'...
기상천외한 불법정치자금 전달 방식

'LG는 2.5톤 트럭 차떼기' '현대자동차는 스타렉스 차떼기' '삼성은 월간지로 위장'

4대 재벌이 한나라당에 거액의 불법 정치자금을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전달한 것에 대한 네티즌들의 분노가 폭발하고 있다.

우선 불법 정치자금 전달 방식에 있어서의 공통점은 '과감한 접선'방식을 택했다는 점이다. 즉, 고속도로 '만남의 광장'이라는 공개된 장소에서 누구도 눈치채지 못할 방식을 통해 전달됐다.

위장 방식도 스파이영화를 보는 듯하다. 각각 밀폐된 트럭과 승합차에 싣고, 사과박스 등에 돈을 나눠담아 전달했고, 삼성의 경우 채권을 포개 월간지 정도의 크기인 책 한 권의 부피로 만들어 은밀히 건넸다.

불법정치자금의 규모가 너무 커 한번에 전달하지 못했다는 것도 비슷하다. LG는 63개의 박스를 LG상사 안양물류센터에 지입된 2.5톤짜리 탑차에 담아 전달했고, 현대자동차 역시 현대캐피탈 지하 4층 창고에 보관 중인 현금 100억원을 50억씩 나눠서 스타렉스 승합차에 싣고 이틀에 나눠 전달했다.

이를 위해 사전에 치밀하게 공모했다는 점도 공통점이다. 다시말해 이같은 행위가 '범죄'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검찰이 밝힌 3개 대기업의 불법정치자금 전달방식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현대자동차-스타렉스 차떼기
"지난해 11월 중순경 서정우 변호사는 경기고 10년 후배인 최한영 현대차 부사장을 만나 대선자금 지원 요청을 했다. 이를 최 부사장이 김 부회장에게 보고했고, 김 부회장은 현대캐피탈 이상기 사장에게 100억원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이 사장은 현대캐피탈 지하 4층 창고에 보관 중인 현금 100억원을 50억씩 나눠서 스타렉스 승합차에 싣고 이틀에 나눠, 청계산 주차장에서 최 부사장에게 건넸다. 최 부사장은 이 차를 경부고속도로 '만남의 광장'에서 서 변호사에게 전달했다. 이틀동안 두 차례 '차떼기'로 돈이 전달됐다.

승합차를 운전한 사람은 현대캐피탈 직원이다. 최한영씨에게 청계산 주차장에서 승합차를 줬다.

차량에는 1만원권 현금 2억원 돈을 사과상자 10개에 담았다. 또 1만원권 1억원 돈을 상자 30개에 나눠서 담았다. 두 번 전달한 이유는 박스가 80개 정도로 한꺼번에 스타렉스 승합차에 실을 수 없어 40개씩 실었다고 한다.

서정우 변호사에게 돈을 건넬 때 차 열쇠와 함께 차체를 통째로 전달했다. 다음날에도 같은 방법으로 했다. 저녁 7시경으로 처음에 차를 주고, 다음날은 차를 돌려받고 현금 50억원이 실린 다른 스타렉스를 건네주었다."

LG-2.5톤 트럭 차떼기
"서 변호사는 2002년 11월 22일 LG그룹으로부터 불법자금 150억을 수수했다. 11월초에 한나라당 최돈웅 의원이 강유식 당시 LG그룹 구조조정 본부장에게 합법자금과 별도로 추가 대선자금 지원을 요청했다.

요청을 받은 강 본부장이 자신의 전임 구조조정본부장인 이문호 본부장과 이 문제에 대해 상의했다. 이 본부장은 자신의 절친한 대학후배였던 서 변호사를 전달창구로 지목해 강 본부장과 서 변호사가 구체적인 액수와 전달방법에 대해 논의했다.

그 뒤 강 본부장은 구조본의 이아무개 상무에게 자금마련을 지시했다. 이 상무는 평소 대주주들로부터 갹출해 조성해 놓은 자금 중에서 현금 150억원을 찾아 2억4000만원을 담은 박스 62개와 1억2000만원을 담은 박스 1개 등 총 63개의 박스에 담았다.

이 63개의 박스를 LG상사 안양물류센터에 지입된 2.5톤짜리 탑차에 담아 11월 22일 저녁 8시40분쯤 경부고속도로 양재동 만남의 광장 휴게소로 이동해 주차장에 주차시킨 뒤 이 상무가 서 변호사에게 차와 화물간 열쇠를 전달했다. 서 변호사는 다음날 탑차를 같은 장소에 갖다놓자 LG측이 이 차를 가져갔다."

삼성-포장지로 '월간지 위장'
"대선자금 관련해서 삼성이 152억원을 (한나라당에) 건네줬다. 그 중에 112억원을 서정원 변호사에게 국민주택채권으로 줬으며, 40억원은 현금으로 (또 다른 루트로) 보냈다.

서정우 변호사가 건네 받은 112억원은 (서 변호사가) 지난해 11월 삼성 구조조정본부의 윤아무개 전무에게 '다른 기업과 비교해서 추가지원해 달라'고 했다. (삼성) 내부적으로는 재무팀장에게 말했고, 재무팀장은 본부장의 지시를 받아 조달방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거쳐간 것이다. 서 변호사가 삼성중공업의 사외이사였던 것으로 안다. 김아무개 재무팀장이 추가지원 자금 규모와 전달방법 등을 정하고 두차례에 걸쳐 전달했다.

첫 번째는 2002년 11월 중순 김아무개 재무팀장이 법무법인 광장을 직접 찾아가서 국민주택채권 55억원을 전달했다. 두 번째는 11월 하순경 57억원을 김 재무팀장이 직접 서 변호사의 사무실을 찾아가 건네줬다. (국민주책채권의) 액면가는 1000만원권과 500만원권 두 종류로 나눠졌으며, 책한권 정도로 보이게 포장했다.

1000만원권과 500만원권 채권 두 개를 합쳐 월간지 정도의 크기로 책 한 권 부피로 포장했다. 국민주택채권의 크기는 자기앞수표 2개 크기로 두 채권을 2열로 포개서 포장지에 싸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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