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1997>의 주인공들

<응답하라 1997>의 주인공들 ⓒ tvN


<응답하라 1997>의 인기가 뜨거운 것은 그들의 이야기에 '공감'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잊지 못할 한때이기도, 또 누군가에게는 그저 뉴스에서만 보던 일이기도 하지만 이 시대의 2030들은 저마다 '성시원' 혹은 '윤윤제'에 빙의해 자신의 학창시절을 되새기고 추억한다.

1998년 12월 5일, 하얀 물결과 노란 물결이 넘실대던 서울 국립극장. H.O.T와 젝스키스를 제치고 제 13회 대한민국 영상음반대상 골든디스크 대상을 받은 이가 있었으니 바로 '사랑을 위하여'의 김종환이다. <오마이스타>는 당시 H.O.T와 젝스키스의 매니지먼트를 맡았던 이들을 만나 치열하면서도 아름다웠던 우리들의 1997년을 떠올려봤다. 이름하여 '기억하라, 1997!'

- 정해익: 1999년까지 SM엔터테인먼트에 몸담으며 H.O.T를 담당했다. 22년째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종사한 그는 현재 해피트라이브 엔터테인먼트 대표로, 또 다른 음반을 준비하고 있다.
- 김기영: 2010년까지 DSP미디어(당시 대성기획)에 몸담으며 젝스키스를 매니지먼트했다. 최근 새 둥지에서 새로운 그룹을 준비하고 있다.

"1998년 골든디스크, 우리가 받을줄 알았는데!"


 tvN드라마 <응답하라 1997>이 인기를 끌고 있는 가운데 29일 밤 서울 구수동의 한 주점에서 1990년대 후반 H.O.T를 담당했던 정해익씨와 젝스키스를 담당했던 김기영씨(왼쪽부터)가 당시의 흥미진진했던 뒷이야기들을 전해주고 있다.

29일 오후 서울 마포구 구수동 기똥차에서 1990년대 후반 H.O.T를 담당했던 정해익씨와 젝스키스를 담당했던 김기영씨(왼쪽부터)가 당시의 흥미진진했던 뒷이야기들을 전해주고 있다. ⓒ 이정민


"1998년이 치열했던 이유는 H.O.T와 젝스키스가 처음으로 맞대결을 펼친 해였기 때문이다.(기자 주-H.O.T는 1996년에 데뷔했으며, 젝스키스는 1997년 첫 등장했다.) 젝스키스의 데뷔 앨범이 170~180만 장쯤 팔렸고, H.O.T가 '늑대와 양'으로 150~160만 장을 판매했다. 1998년 골든디스크에서 대상 수상자로 김종환씨의 이름이 불렸고, 모두 깜짝 놀랐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그분이 280만 장을 팔았더라. 시상식이 끝난 뒤 모든 수상자가 만나서 단체 촬영을 하는데 젝키, H.O.T 모두 맛이 갔더라." (김기영, 이하 김)

"당연히 H.O.T가 받을 줄 알았는데 음반 판매량이 더 나왔다고 하니까 뭐. <응답하라 1997>에 보면 팬들이 '매니저 000가 회식 장소를 잡아뒀다'면서 대상 수상을 확신하는데 사실 H.O.T는 활동하면서 단 한 번도 술집에 간 적이 없다. 토니는 집이 미국이고, 장우혁은 지방이니까 처음부터 나와 셋이 살았는데 당시에는 숙소에서 헤어와 메이크업, 의상 준비까지 모든 것을 했다. 회식은 주로 이 숙소에서 했고, 시상식 등 특별한 날은 한 호텔 빌라를 잡아 놀았다." (정해익, 이하 정)

1998년 골든디스크 대상을 놓쳤던 H.O.T와 젝스키스는 그해 서울가요대상에서 공동대상을 받았다.

"팬클럽 분포도는 '계란 노른자'였다. 흰자(H.O.T 팬)가 고루 퍼져 있으면 노른자(젝스키스 팬)가 그 사이에 있고. 난 젝스키스에게 '불우한 2인자'라고 했다. 활발히 활동했지만 대상을 받진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그 다음 해에는 핑클이 전 국민적인 사랑을 받으면서 또 넘어가고. 사실 젝스키스가 데뷔하기 전 별명이 '용암'이었다. H.O.T가 '핫'이지 않나. 그것보다 더 뜨겁다고, 더 강한 애들이 나올 거라는 뜻이었다." (김)

넘쳐나는 선물, 팬레터는 어떻게 하나요? "소각하려다가..."

활동 시기가 엇갈렸던 두 팀은 1998년 여름, 맞짱을 떴다. 팬들의 기 싸움도 이때부터 심해졌다. 하얀 우비를 입은 이들과 노란 풍선을 든 이들이 본격적인 '전쟁'을 하게 된 것도 이때부터다.

"H.O.T가 잘 되니까 한 명 더 붙여서 나왔다" "비주얼은 젝스키스가 최고다"며 싸웠지만, 두 팀이 맞붙자 시너지 효과도 엄청났다. 음악 순위 프로그램의 ARS 투표수가 100만 건을 훌쩍 넘었고, 이후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한 방송사는 중복 투표 등에 제동을 걸었다.

1997년, IMF의 구제금융을 받으며 전 국민이 '금 모으기 운동' 등에 나섰지만 H.O.T와 젝스키스의 기획사는 불황을 겪지 않았다. 멤버들의 사진 한 장에 3~400원씩 하던 시절, 이들은 1주일에 5~6천만 원씩 현금을 벌어들였기 때문이다. 지금의 MD 상품인 셈이다. H.O.T는 향수와 음료수를, 젝스키스는 로션 등을 내놓기도 했다.

 tvN드라마 <응답하라 1997>이 인기를 끌고 있는 가운데 29일 밤 서울 구수동의 한 주점에서 1990년대 후반 H.O.T를 담당했던 정해익씨가 흥미진진했던 옛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1999년까지 SM엔터테인먼트에 몸담으며 H.O.T를 담당했던 정해익 해피트라이브 엔터테인먼트 대표 ⓒ 이정민


"H.O.T DNA 카드 속의 DNA가 진짜냐고? 진짜 맞다." (정)

"음반 외 부가적인 머천다이징 상품이 처음 시작될 때였는데, 그것을 활성화시킨 것이 H.O.T였다. SM엔터테인먼트는 팬들과 소통을 잘한 축에 속한다. 과거에도 가수와 팬클럽의 연결고리가 있었지만, SM은 회사와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지금도 SM타운이 사랑받는 노하우는 그때부터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벤치마킹해서 따라가는 입장이었고." (김)

"밸런타인데이 때는 초콜릿이, 생일에는 인형이 트럭으로 왔다. 행사가 있는 날이면 용달차가 따라가야만 했다. 매일 들어오는 게 엄청 많은데 다 짊어지고 살 순 없지 않으냐. 개인적으로 소중하게 가질 것 말고는 평소 교류하는 고아원으로 (선물을) 보냈다. 콘서트 때 고아원 아이들을 초대하기도 했고. 팬레터는 우체국에서 안 가져다준다. 사서함을 개설해서 받아뒀다가 실어가야 한다. 뒤처리는 어떻게 했느냐고? 전 직원이 읽은 뒤 소각했는데 운반하던 중 하나 떨어뜨렸다가 팬들에게 된통 당한 적이 있다." (정)

"김대중 전 대통령 손녀, '내게 맞았다'는데 아뿔싸!"

요즘에야 클릭 한 번만으로 오빠들이 어디 있는지 알고, 직캠(캠코더로 직접 찍은 영상)을 통해 평소 모습 또한 생생하게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전화 오면 끊기길 반복했던 PC 통신 시대에는 하루 꼬박 걸려야 동영상 하나 다운로드 받을 수 있었다. 음악 프로그램 현장을 찾아가야 스타를 볼 수 있었고, 숙소 앞에서 밤을 지새우기도 일쑤였다.

SM엔터테인먼트와 대성기획(현 DSP미디어) 사무실이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방배동 서래마을에 있었던 시절. 문을 닫을 뻔했던 편의점 하나가 팬들 덕분에 높은 매출을 기록하기도 했다. 어디 그뿐인가. "00 오빠가 비 오는 날 숙소 앞에 있던 팬을 집까지 데려다 줬다더라" "팬들에게 '집에 가라'며 차비를 줬다"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들렸다.

"숙소 앞에 팬들이 항상 있는데 기분이 좋은 날이면 (숙소 앞에) 가서 '집에 가라'고 1만 원 씩 교통비를 주기도 했다. 하지만 말은 정말 안 들었다. 그 돈으로 편의점 가서 라면 사 먹고 또 와서 죽치고 있더라. (웃음)" (정)

 tvN드라마 <응답하라 1997>이 인기를 끌고 있는 가운데 29일 밤 서울 구수동의 한 주점에서 1990년대 후반 젝스키스를 담당했던 김기영씨가 당시의 야사를 비롯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2010년까지 DSP미디어(당시 대성기획)에 몸담으며 젝스키스를 매니지먼트했던 김기영 이사 ⓒ 이정민


"김대중 전 대통령 재임 시절, 청와대에 갔는데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꼬맹이가 사인받고, 사진 찍으며 왔다갔다하더라. 경호팀에 누구냐고 물었더니 '어르신 손녀딸'이라고 하더라. 김 전 대통령의 손녀였다. 순간 날 보더니 '할아버지, 저 사람 아는 사람이다'고 하더라. 알고 보니 영화 <세븐틴>이 개봉했을 때, 대한극장에서 저지선이 무너져 내게 맞았던 학생이었다. 순간 대통령과 영부인이 쳐다보는데 어쩔줄 몰랐다." (김)

"방배동은 민원 천국이었다. 아이들 찾는 게 일이었지. 아이들이 쪽지 하나 남기고 사라지는 게 다반사니까. 방송국 관계자 중에서도 자녀 사진을 주면서 '찾아달라'고 하는 경우가 많았다. '네가 이러면 우리가 힘들어진다'고 어르고 달래서 보내곤 했다."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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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라 1997①] 우리들의 맹세, 기억해 줄래?
[기억하라 1997②]스타...지금은 '소모품', 그땐 '우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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