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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로부터 신태영, 김일환, 이선근, 최경록 전 재향군인회장
재향군인회 역대 회장의 면면은 '오욕의 한국 근현대사' 집약판이라 할 만하다.

1952년 2월 1일 창립돼 반세기 동안 매머드급 친목조직으로 성장하기까지 재향군인회를 거쳐간 향군 회장은 총 17명. 이들 가운데는 친일경력자 또는 군사독재에 협력한 인물이 상당수 포함돼 있다.

초창기 향군 회장 가운데는 일본육사 출신, 또는 일본군에서 복무한 사람들이 상당수 포함돼 있다. 백홍석(육군 준장 예편) 초대 회장은 일본육사 27기생, 국방부 장관을 지낸 신태영(육군 준장 예편) 3대 회장은 26기생, 또 합참의장 출신의 이형근(육군 대장 예편) 8대 회장은 일본 육사 56기생이다.

특히 신태영 3대 회장의 경우 아들(신응균)도 일본육사를 졸업해 부자가 일본육사 동문인 셈이다. 아버지는 국방부 장관에 향군 회장을 지냈고, 아들은 국방부 차관에 향군 부회장을 역임하는 등 이들 부자는 군과 향군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

최경록(육군 중장 예편) 24대 회장은 1944년 일본 도요하시 예비사관학교 출신으로, 1952년 육군사관학교 교장, 1960년 제13대 육군참모총장을 거쳐 80년에는 주일대사를 역임했다. 주일대사 시절 그는 친일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적도 있다.

만주 지역 친일단체에서 활동한 전력자도 눈에 띈다. 6대 향군 회장을 역임한 이선근(육군 준장 예편)은 만주 독립운동 세력 탄압조직인 만주국협화회 협의원를 지냈다. 해방 후 그는 문교부장관,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을 지냈으며, 박정희 군사독재 정권 하에서 초대 정신문화연구원장을 지내기도 했다.

5대, 13∼17대까지 향군 역사의 1/5 가량 동안 수장역을 맡아온 김일환(육군 중장 예편) 회장은 만주군 경리장교 출신으로 이승만 정권에서 상공부 장관, 국방부 장관을 역임했다. 또 박정희 정권 시절 국방부장관을 지낸 김성은 10대 회장도 만주 하얼빈농대 출신으로 친일권 인사로 분류되는 사람이다.

10대 이후 향군 회장들은 주로 박정희 군사독재에 협력하거나 5·18 광주항쟁 진압을 주도한 혐의를 받아온 인물들로 채워졌다.

육사 4기 출신인 김종환 22대 향군 회장은 1962년 5.16 군사쿠데타 이후 진급에 진급을 거듭하며 합참의장까지 지낸 인물로, 육사 11기인 전두환이 12·12쿠데타로 정권 장악에 성공한 뒤 육군 대장으로 예편했다.

백석주 23대 향군 회장은 1979년 10·26사건 뒤인 1980년 5월 31일 전국비상계엄 하에서 전두환 등 신군부가 설치한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의 임명직 멤버 출신으로, 국보위에 참여한 공로로 회장에 선출된 경우라고 볼 수 있다.

또 25∼26 회장을 역임한 소준렬(육군 대장 예편) 회장은 백 전 회장보다 더 깊숙이 5·18 광주항쟁에 개입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소 회장은 5·18 광주항쟁 당시 진압부대 지휘부에 해당하는 전투교육사령부 사령관이었다.

반면 27∼28대 회장을 지낸 장태완(육군 소장 예편) 회장은 12·12사태 당시 수도경비사령관으로 정병주 특전사령관과 함께 신군부 세력에 저항하다 80년 1월 20일자로 강제예편 당했다.

역대 회장 가운데 그나마 사회적 존경을 받을만한 인물로는 9대 회장을 지낸 김홍일(육군 중장 예편) 회장 정도다. 김 회장은 일제하 광복군에서 활동했으며, 해방 후 광복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다만 김 회장도 5·16 쿠데타 직후 혁명내각의 각료를 지내 한 점 오점을 남겼다는 지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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