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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되는 경기침체 여파로 미국의 무료 공교육 시스템이 위협을 받고 있다. 그동안 미국의 초중고 공립학교들은 연방정부와 주정부에서 지원하는 지원금과 지역 주민들이 납부하는 교육세를 기반으로 무료로 교육 서비스를 제공해 왔다.

그런데 경기침체가 오래 지속되면서 연방정부와 주정부가 공립학교에 지원하던 지원금을 대폭 삭감하고, 정부의 세금 감면정책으로 지역 주민들이 내는 교육세마저 줄어들자 공립학교들의 학교 운영예산이 급격히 감소했다. 이러한 교육 예산 감소는 미 전역에서 교사들의 대량 해고로 이어졌고, 나아가 최근에는 학생들에게 학교운영 경비의 일부를 부담하도록 하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어 미국의 무료 공교육 시스템이 붕괴 위기를 맞고 있다.   

무료로 제공하던 학교 프로그램에 수수료 부과

입시와 시험 위주의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과 달리 미국의 교육 시스템은 전인교육을 목표로 학교에서 공부뿐만 아니라 음악, 연극, 육상, 농구, 댄스 등 다양한 예체능 활동 기회를 학생들에게 무료로 제공해 왔다. 이 뿐만 아니라,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을 위한 선행학습 프로그램과 특별반 운영을 통해 다양한 교육 서비스를 해왔다.

그런데, 최근 경기침체로 인한 교육 예산 감소로 미국내 학교들이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하게 되자, 미 연방 정부에서 의무로 가르치도록 하는 기본 교육과목 외에 그동안 학생들에게 무료로 제공하던 선행학습 프로그램이나 특별반 운영, 그리고 예체능 활동에 대해 수수료를 받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운영하는 밴드부에 들어가려면 1년에 200달러, 크로스 컨트리 운동부 가입비는 660달러, 체스 클럽에 들어가는데 350 달러, 학교에서 발행하는 매거진에 글을 실으려면 85달러를 내야하고, 심지어 학교 환경보호클럽에서 하는 해안가 청소 활동에 참여하는데도 50달러를 내야 한다.

이 뿐만 아니라, 과학 실험실에서 학생들이 과학실험을 하는 동안 안전을 위해 착용하는 과학 실험용 보호안경을 비롯해 수학 연습 문제집, 학교에서 사용하는 프린터의 잉크까지 학생들이 부담하도록 하는 공립 학교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이처럼 예전에는 학생들에게 무료로 제공되던 학교 교육 서비스나 용품들이 학생들에게 수수료로 전가되면서 초중고 학생들을 자녀로 둔 학부모들의 경제 부담이 증가하고 있다. 미국의 공립학교들은 교육 서비스와 용품들의 유료화 외에 예전에는 없던 다양한 입학 수수료 신설을 통해서도 부족한 교육예산을 충당하고 있다.

미국 공립고등학교 신입생의 경우 입학과 함께 학교 등록비와 테크놀로지 이용비, 그리고 세부 명목을 밝히지 않은 교육비 등으로 평균 약 200~300달러를 학교에 지불해야 한다. 미국 공립학교에서 학부모들에게 부과하는 이러한 수수료는 매년 증가하고 있는데, 실제로 미국 오하이오주에 있는 한 교육구의 경우 학생들이 학교에 지불하는 수수료가 작년에 비해 올해 약 52%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1년 수수료가 4000달러... 재능 수업 포기하기도

이러한 공립학교의 수수료 부과로 경제 부담을 느낀 일부 가정에서 자녀들의 재능을 키울 수 있는 분야의 수업 수강을 포기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오하이오(Ohio)주 메디나(Medina)시에 살고 있는 돔비(Dombi)씨 가족의 경우, 4명의 자녀가 공립학교에 다니고 있는데, 이들 네 자녀가 1년 동안 학교에 내는 수수료가 약 4000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많은 수수료를 학교에 내야 되는 상황이다 보니, 큰 딸인 테사(Tessa)가 좋아하는 노래를 배울 수 있는 과목인 합창반에 보내지 못하고 있다. 합창반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200달러의 수수료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초중고 과정은 학생들이 다양한 경험을 통해 자신들의 재능을 발견하고 이러한 재능을 기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어야 하는데, 현재 미국의 공립학교는 예산 부족에 따른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모든 학생들에게 이러한 기회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 공립학교들의 수수료 신설과 교육 서비스와 용품의 유료화 전환으로 인한 경제적 부담 증가, 그리고 교육 서비스의 유료화로 인한 학생의 경제적 수준에 의한 교육의 차별화 현상이 초래되면서 일부 학부모들로부터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그러자 미국의 일부 공립 학교들은 기본과목 이외에 선행학습반이나 예체능 활동 등을 교육과정에서 아예 폐지하는 사례까지 생겨나고 있다. 주로 고급 수학, 고급 과학, 음악, 예술, 외국어, 연극, 스포츠 과목 등을 폐지하는 학교들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문제는 이러한 과목들의 폐지가 늘어나면서 미국 내 초중고 학생들이 학교에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전인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점차 놓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일부 학부모들은 수수료를 지불하는 한이 있더라도 선행 학습반이나 예체능 과목을 없애서는 안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공립학교가 다양한 과목을 유지하면서 수수료를 학생들에게 요구할 경우 가정형편으로 인해 학교에 수수료를 지불할 능력이 없는 학생들은 다양한 과목을 수강할 기회를 박탈당해 공교육에서도 차별을 받게 된다. 결국, 현재 미국의 공교육은 진퇴양난의 처지에 놓이게 되고 말았다. 미국 연방정부와 주정부의 특단의 조치가 필요해 보인다.

덧붙이는 글 | 최진봉 기자는 텍사스 주립대, 저널리즘 스쿨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이기사는 한국 교육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최진봉 , #미국 공립학교, #경기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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