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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봉 미 텍사스주립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사진은 6일 미디어공공성연구소가 주최한 위키리크스 토론회에서 발제하는 모습.
 최진봉 미 텍사스주립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사진은 6일 미디어공공성연구소가 주최한 위키리크스 토론회에서 발제하는 모습.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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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자가 사회자 맘에 안 들면 대놓고 '입 다물어!' 막말하고 면박을 줘요. 토론자도 보수 2명, 진보 1명을 불러 진보 쪽을 묵사발로 만들어버리죠. 그런 모습에 시청자들은 희열을 느끼고 노골적인 편향 방송을 즐겨요. 결국 시청률을 끌어올리려고 뉴스를 오락성 강한 싸움판으로 만든 거죠."

미국 뉴스 채널 가운데 CNN을 제치고 시청률 1위를 달리고 있는 <폭스뉴스>의 현실이다. 최진봉 미국 텍사스주립대학 저널리즘스쿨 교수는 지난 5일 국회에서 열린 종편(종합편성채널) 규탄 토론회에서 이른바 '조중동 방송'의 미래로 꼽히는 '폭스뉴스'의 폐해를 신랄하게 꼬집어 눈길을 끌었다.

'보수 편향-막말 방송' <폭스뉴스>는 '조중동 방송'의 미래

최진봉 교수는 이미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이전부터 미국 미디어 현실에 빗대 신문-방송 겸영이 부를 보수 획일화와 여론 독과점 폐해를 계속 경고해왔다. 최 교수를 6일 오후 서울 서대문에 있는 한 커피전문점에서 다시 만났다. 마침 이날 공공미디어연구소에서 주최한 '위키리크스' 관련 토론회를 마치고 나오는 길이었다.   

"지난달 25만 건에 달하는 미 국무부 기밀문서를 폭로한 위키리크스에 대한 한 설문조사에서 미 국민 60%가 공익을 저해한다고 응답했어요. 저는 이런 결과도 보수 언론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비교적 중립적인 <뉴욕타임즈>는 위키리크스 폭로가 공공 이익에 부합하고 국민의 알권리 충족에 필요한 조치라고 지지한 반면 <폭스뉴스>는 미국의 외교 활동에 큰 상처를 입혀 국익을 해쳤다고 맹비난했거든요.

보수 진영은 국익보다는 당장 자기들 이익만 따지는데도 보수 언론들은 시청자가 이를 제대로 판단할 수 있는 공정한 보도를 안 해요. 특히 노골적으로 보수 편향적인 <폭스뉴스>는 방송 시작할 때마다 '페어(공정), 밸런스(균형)'라는 로고가 뜨는데 사실은 '언페어 언밸런스'한 거죠."

폭스뉴스 인터넷 홈페이지(foxnews.com) 폭스뉴스 로고 아래에는 'fair and balanced(공정과 균형)'이라는 모토가 달려있다.
 폭스뉴스 인터넷 홈페이지(foxnews.com) 폭스뉴스 로고 아래에는 'fair and balanced(공정과 균형)'이라는 모토가 달려있다.
ⓒ 폭스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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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편은 상업방송... 살아남으려면 선정적으로 갈 수밖에" 

과연 '조중동 방송' 역시 <폭스뉴스>의 전철을 밟게 될까? 방통위 종편 심사 항목에도 방송의 공정성, 공익성, 공적 책임이 배점이 높았고, <조선일보>는 가장 높은 점수를 받기도 했다. 

"종편은 상업 방송이에요. 공영 방송과 달리 방송이 상업화될수록 선정적, 폭력적, 자극적이 될 수밖에 없어요. 초기에는 그렇지 않더라도 치열한 광고 경쟁이 시작되면 살아남기 위해서로도 그렇게 할 거예요. <폭스뉴스>가 오락적 방송으로 충성스런 시청자를 확보해 살아남은 것처럼 말이죠. 시청률 경쟁이 벌어지면 후발 주자 입장에선 일본과 미국 방송의 선정적 모델을 가져올 수밖에 없어요. SBS가 초기 선정성과 오락성을 강조하니까 KBS, MBC도 따라간 것처럼 말이죠. 종편은 케이블 방송임을 내세워 더 선정적으로 갈 거예요."

<조선> <중앙> <동아> <매경> 등 보수 언론 일색인 종편 방송의 미래는 상업성에 그치지 않는다. 최 교수는 <폭스뉴스>를 실제 경험하지 못한 기자에게 지난 대선 등에서 조중동이 보여준 편향 보도를 일깨웠다.  

"선거 때 조중동이 보여준 한나라당 편파 보도를 떠올리면 돼요. 연평도 사태 때도 진보-보수 언론 보도에 큰 차이가 있었죠. 그런 상황에서 종편 방송들이 공익성 생각 안하고 편향 보도를 하게 되면 국가를 위험 상황으로 만들 수도 있어요. 제대로 된 비판 세력이 없으면 결국 정부가 원하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죠."

 
"종편이 대기업-외국 자본 방송 침투 길 열어"

최진봉 미 텍사스주립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사진은 6일 미디어공공성연구소가 주최한 위키리크스 토론회에서 발제하는 모습.
 최진봉 미 텍사스주립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사진은 6일 미디어공공성연구소가 주최한 위키리크스 토론회에서 발제하는 모습.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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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교수는 미국에 <폭스뉴스> 같은 선정적이고 편향적인 방송이 등장한 건 15년 전 방송 규제 완화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에선 1996년에 언론사 소유 구조 규제를 풀어준 게 언론사 소유 집중의 계기가 됐죠. 또 일부 도시에서 신문-방송 겸영 허용을 하면서 루퍼트 머독 같은 큰손들이 크고 작은 방송사 지분을 조금씩 사들여 지금은 6개 거대 미디어 기업이 전체 미디어 시장 90%를 장악하고 있어요. 이명박 대통령도 2년 전 지금 상황을 그렸을 거예요."

미국의 방통위격인 FCC(연방통신위원회)가 96년 '텔레커뮤니케이션법'을 통과시켜 언론사 소유 규제를 풀면서 미국 언론 시장은 산업자본인 GE(제너럴일렉트릭)를 비롯해 디즈니, 바이어컴, AOL타임워너, 뉴스코퍼레이션 등 6개 거대 미디어 그룹 중심으로 재편됐다.

특히 세계적 '언론 재벌' 루퍼트 머독이 소유한 뉴스코퍼레이션은 <폭스뉴스>와 <월스트리트저널>을 비롯해 20여 개의 언론사를 소유하며 '보수 획일화'에 앞장서고 있다.  

"우리나라 광고시장도 포화 상태여서 시청률 경쟁이 심해지면 M&A(기업 인수합병)로 갈 수밖에 없어요. 결국 돈 있는 사람이 언론사들을 사들여 독과점이 이뤄질 거예요. 우리나라도 거대 언론사 중심으로 재편될 거예요. 미국 대기업인 GE가 자본력으로 거대 미디어그룹이 된 것처럼 삼성, 현대 같은 대기업이 지분 투자 형태로 언론사를 소유하게 될 수 있는 거죠."

아울러 글로벌 자본의 한국 침투 가능성도 경고했다. 이미 <중앙일보> 종편에 텔레비 아사히, 매경 종편에 일본경제신문사 등 일본 언론사가 직접 참여했고 <조선일보> 종편 등에도 외국계 자본이 투자한 상태다.  

"글로벌 자본은 기회만 있으면 한국에 들어오고 싶어 해요. 아직 지상파 방송은 제한돼 있고 종편도 지금은 국민 눈치를 봐야해 조심스러워 하고 있지만 경쟁이 치열해지면 외국 자본이 들어오는 계기가 될 수도 있어요. 문화제국주의 관점에서 일종의 문화 침탈이죠. 미, 일 문화를 닮아가면서 우리 고유 사상이 말살되는 거죠. 방송은 무의식적으로 이데올로기를 전달하기 때문에 더 위험해요."

"MB가 종편 다시 꺼내든 건 진보매체 죽이자는 것"

'종합편성채널'은 2000년 방송법에 만들어진 개념이지만 10년 가까이 묶여 있었다. 이를 다시 신문-방송 겸영을 허용하도록 미디어법을 날치기 처리하면서까지 이명박 정부가 꺼내든 이유는 무엇일까?

"진보와 보수언론 균형이 필요한 상황에서 돈 가진 건 보수 언론뿐인데 지금에 와 종편 사업자를 선정하는 건 눈 가리고 아웅이죠. 투자 재원을 마련할 수 있는 신문사는 보수 언론밖에 없는데 종편하자는 건 결국 진보매체 죽이겠다는 거죠. 방송사가 더 늘어나면 기업들은 영향력이 큰 방송에 더 광고를 몰아주기 때문에 힘 없는 신문은 광고가 더 줄어들 수밖에 없어요. 결국 신문도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죠."

과연 언론계에서 우려하는 것처럼 종편이 기존 지상파 방송과 맞먹을 만큼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까?

"미국은 케이블을 달지 않으면 TV를 못 보기 때문에 사람들이 지상파 방송과 케이블 방송 차이를 못 느껴요. 지상파인 CBS나 케이블인 CNN이나 동급으로 보는 거죠. 우리나라도 케이블 가구가 80% 이상이어서 프로그램 품질만 지상파에 맞추면 경쟁이 가능해요. 더구나 지상파와 가까운 채널로 들어가면 시청자도 잘 몰라요. 그래서 초기 품질 따라가려고 투자 자금 확보에 적극 나서고 기업들에게도 노골적으로 구애할 거예요."

"공영방송 제 역할 못하는 게 종편 문제보다 더 심각"

최문순 의원실과 미디어행동 주최로 5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언론 4대강, 종편 규탄' 토론회에서 김성균 언론소비자주권국민캠페인 대표 등 참석자들이 방통위의 종편 사업자 선정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최문순 의원실과 미디어행동 주최로 5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언론 4대강, 종편 규탄' 토론회에서 김성균 언론소비자주권국민캠페인 대표 등 참석자들이 방통위의 종편 사업자 선정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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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조선> <중앙> <동아> <매경> 등 4개 종편 사업자가 선정된 뒤 언론계와 시민사회단체에선 '되돌리기엔 너무 늦은 건 아니냐'는 위기 의식이 팽배하다. 하지만 최 교수는 오히려 공영방송에서 희망을 찾고 있다.

"공영방송을 확실하게 공영화해야 해요. 공영방송만 제대로 해도 (보수-진보간에) 서로 균형을 맞출 수 있어요.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KBS2, MBC 등 공영 방송마저 상업화시키려 하고 있어요. 상업방송 체계로 가면 정부 규제가 줄고 사주 이익에 더 충실할 수밖에 없어요. 또 상업화할수록 돈 많은 집단이 가져갈 수밖에 없어 보수 세력에 유리한 여론 조성을 할 수 있다고 보는 거죠."

한편으로 최 교수는 '황금채널(현재 케이블 채널에서 지상파와 홈쇼핑이 차지하고 있는 10번대 전후)', '의무 송신', '광고 규제 완화' 등 종편 특혜를 철저히 막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특히 '황금 채널'이 중요해요. 뒷 번호로 가면 시청자가 일부러 찾아봐야 하기 때문에 지상파만큼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어요. 그래서 '조중동'은 사활을 거는 거예요. 종편 특혜를 반기지 않는 지상파 방송과 연대해 맞서는 것도 한 방법인데 지금처럼 공영방송 사장을 대통령이 임명하는 상황에서 그마저 쉽지 않죠. 한번 특혜를 주면 다시 뺐기도 힘들어 지금 못하게 하는 게 중요해요."

99년 미국에 건너간 최 교수는 미네소타 대학을 거쳐 지난 2008년부터 텍사스주립대 매스커뮤니케이션 & 저널리즘 스쿨에서 강의하고 있다. 학생들에게 MBC를 한국의 대표적 공영방송으로 가르쳤다는 최 교수는 앞으로 모델이 사라질까 우려했다. 

"미국은 그래도 <뉴욕타임즈> 같은 중립적 언론이 있어 균형이 잡혀 있는데 우린 이미 보수에 편중돼 있는 데다 더 힘을 실어 진보는 더 힘을 잃을 수밖에 없어요. 여론 독과점이 심한 영국도 그나마 BBC가 있어 '공영방송=공정한 방송'으로 인정받고 있는데 우리 공영방송은 정치적 논리가 좌지우지하고 있어요. 공영방송이 제 역할 못하는 게 종편 문제보다 더 심각해요. 결국 남은 건 '촛불'처럼 국민이 직접 여론화하는 것밖에 없는 거죠."  


태그:#종편, #조중동 방송, #최진봉, #폭스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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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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