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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김용철(49) 변호사. 그동안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던 삼성비자금의 실체를 공개하겠다던 그였다. 29일 오전 10시 서울 동대문구 서울천주교 제기동 성당 1층 기자회견장. 함세웅 신부를 비롯해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소속 신부 등 9명이 회견장에 들어섰다.

 

각종 비자금 조성 과정에 대한 생생한 증언과 자료에 대한 설명은 김 변호사의 몫이었다. 하지만 제대로 된 답을 들을 수 없었다. '비자금 조성 내역' 등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검찰과 언론의 몫"이라는 사제단의 답이 돌아올 뿐이었다.

 

'왜?'라는 물음이 섰다. 80년대말 민주화 요구가 절정이던 시절, 검사복을 입었던 김 변호사였다. 90년대 중반엔 서울 중앙지검 특수부에서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의 '검은 돈' 비자금 파헤치던 그 였다. 그런 그가 거대 기업 삼성으로 자리를 옮겼다.

 

수십억원의 연봉과 권력을 행사하던 그였지만, 다시 박차고 나왔다. 2004년이다. 그리고 3년후 삼성의 조직적인 비자금 관리 내용을 폭로했다. 이건희 회장을 비롯해 삼성 수뇌부를 정조준하고 있다. 그는 "구속될 각오가 돼 있다"고 했다.

 

또 다시 왜?. 그 주요 인생곡점에 붙는 물음표다. 87년 이후 그의 20년은 분명 순탄치 않았다. 그의 20년을 밟아보지 않고서는 그의 이야기가 쉽게 와닿지 않았다. 이날 오후에 발간된 시사주간지 <한겨레21>과 <시사IN>에 실린 그의 이야기속에서 완벽하진 않지만, 물음의 답을 찾아봤다.

 

강직한 검사→삼성맨→내부고발자... 그의 인생역정

 

김용철 변호사. 올해 나이로 49살이다. 광주일고와 고려대 법대를 나왔다. 83년에 25회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2년의 수료를 마친다. 86년 1월 사법연수원을 나온 후, 그는 검사가 된다. 89년부터 92년까지 인천지검 검사를 지내다, 부산지검을 거쳐 서울에 입성한다. 94년 7월이다. 이후 97년 3월까지 서울 중앙지검에서 일하게 된다.

 

검사 시절 상당시간을 특수부에서 보냈다. '검은 돈'을 추적하고, 파헤치고, 까발리고 처벌하는 것이 그의 임무였다. 전두환, 노태우 전직 대통령 비자금 수사도 그의 몫이었다. 검찰 주변에선 강직하고 수사를 잘하는 검사라는 평가도 있었다. 97년 8월 그는 인천지검 부천지청 검사를 끝으로 옷을 벗는다.

 

왜? 그의 말이다.

 

"전두환 비자금 수사를 하다가 쌍용 김석원 회장이 관리하고 있는 비자금을 찾아냈다. 그런데 (당시 대통령이던)YS가 (수사를) 하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굽히지 않았더니, 바로 부천지청으로 좌천성 발령이 났다. 일 그만하고, 덕을 쌓으라고 했다. 검사에게 수사를 하지 말라니, 나가라는 소리 아닌가?"(시사IN)

 

잘나가던 특수부 검사가 삼성을 택한 이유

 

그리곤 곧장 변호사로 가지도 않았다. 다시 왜? 이는 삼성으로 간 이유와 맞닿는다. 다시 김 변호사의 말이다.

 

"초임 검사 시절 변호사를 수사한 적이 있는데, 수주과정이 너무 지저분했다. 부하들에게 뇌물주고, 사건 수임하고, 판검사에게 인사해야 하는데 난 그런 짓 못하겠더라. 그래서 삼성으로 가게된 것이다. 내가 지원했다."(시사IN)

 

그는 삼성에 지원했다고 했다. 국가 다음으로 망하지 않고 월급 나올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과 자식 대학 등록금 걱정하지 않으려는 가난한 검사의 바람도 있었다고 고백했다. 그가 삼성에 발을 들인 것은 97년 8월 1일이다. 당시만 해도 한보와 기아자동차 부도 등으로 국내 경제 위기설이 나돌때였다.

 

입사하자마자 김 변호사는 삼성중공업 유령노조 사건을 맡았다고 했다. 상대쪽 변호사를 회유하라는 부탁도 받았다.(한겨레21) 그는 삼성이 약속을 어겼다고 주장했다. 입사조건이 '변호사 업무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는데, 법무쪽 일을 맡겼다는 것이다.(시사IN)

 

2004년 퇴직 때까지 그의 7년간 삼성 생활은 어땠을까. 97년이후 국내 재벌들은 빅딜과 강도높은 구조조정이 진행됐다. 대우그룹을 비롯해 기아, 해태 등 상당수 재벌들이 사라졌고, 현대그룹은 해체길로 들어섰다. 삼성도 자동차 사업을 떼어내긴 했지만, 2000년 초 삼성 독주체제를 만드는 발판이 됐다.

 

특히 이건희-이재용으로 이어지는 삼성지배권의 핵심 고리인 에버랜드 전환사채(CB) 편법 증여사건도 김 변호사의 일이었다. 그는 검찰이 이 사건을 기소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임무였다고 회고했다. 검찰 출신이어서 검찰내 인사들의 리스트를 작성해 관리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삼성의 무리한 경영으로 인한 각종 소송에 대한 조언도 그의 일이었다.(시사IN)

 

돈과 권력 맛볼만큼 봤던 그가 삼성을 떠난 이유

 

'7년동안 삼성에서 잘먹고 잘 산것 아닌가'라는 질문의 답은, "아무것도 모르고 용궁갔다가 몸 버리고 나왔다"는 것이다. 그리곤 10억이 넘는 연봉에 사치도 했고, 재산도 모았다.(시사IN) 스톡옵션을 받아, 그것을 팔아 20억원정도로 만들기도 했다. 삼성에서 타워팰리스 계약하라는 거 안했다고 했다. 그는 스스로 호의호식한 것은 맞다고 했다.(한겨레21)

 

그러던 그가 2004년 9월 삼성을 떠난다.  스스로 대우도 잘 받았고, 사치도 했고, 권력도 누렸다고 했던 그 였다. 그 말대로 구조본에서 팀장까지 지낸 전무급 인사가 스스로 회사를 떠난 일이 거의 없었다.

 

대부분 계열사로 승진하곤 한다. 물론 그에게도 삼성화재 부사장 자리 제의가 왔다. 하지만 거절했다고 했다. 김 변호사는 "그 사람들은 내가 나간 것 자체를 배신이라고 봤을 수 있다"고 말했다.(한겨레21)

 

왜 떠나기로 했을까. 그는 "죽겠더라"고 했다. 다시 왜? 계기가 된 사건이 있었다. 지난 2003년말 불법 대선자금 수사할 때 그는 대검 중수부와 접촉했다. 검찰 수사에 협조할테니, 첫번째로만 맞지 않게 해달라는 것. 결국 검찰은 삼성 조사를 늦추면서, 약속을 지켰지만 그 사이 관련 참고인들이 다 도망가버렸다고 그는 회고했다.

 

그의 말을 좀 들어보자.

 

"내가 앞으로 검사출신 변호사로 살아야 하는데 후배, 선배들에게 사기꾼이 됐다. 이후 대선자금 수사가 진행되는 6개월동안 나는 업무에서 배제됐다. 나와 의논도 하지 않았고, 부하들도 보고를 안했고, 어디서 뭐하는지도 몰랐다"(한겨레21)

 

그는 자신이 삼성안에서 나쁜 짓도 많이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삼성 내부에서 대선자금 같은 것은 이제 털고가자고 했지만, 먹히질 않았다고 했다. 업무에서 배제되면서, 자신의 역할이 끝난 것을 직감한 김 변호사는 2004년 9월 사표를 던졌다.

 

3년 후, 이건희 회장과 이학수를 정조준하다

 

2004년 9월 그는 법무법인 서정에 새로운 둥지를 틀었다. 하지만 지난 5월 문제가 생겼다. 이곳으로부터 사직을 권고 받은 것이다. 두달 휴직을 권고 받았는데, 이후 복직할 수 없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서정쪽에서 삼성과의 관계를 정상화하지 않으면 근무할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5월 삼성 한 인사가 한겨레 기사를 트집잡아 내가 일군 로펌에서 날 내쫓았다. 로펌에 복귀하려면 삼성에 가서 각서를 받아 오라고 한다. 내 회사, 내가 다니는데 삼성에서 각서를 받아 오라고?"(시사IN)

 

물론 삼성과 서정쪽에선 김 변호사의 주장을 부인하고 있다. 그는 현재 서정을 상대로 10억원의 민사소송을 제기해 놓은 상태다. 이쯤 되면 그의 사적 이해관계와 이번 비자금 폭로가 연결될수도 있다 싶었다. 이에 대한 김 변호사의 구체적인 언급은 아직 없다.

 

대신 그가 이번 비자금 등을 폭로하면서 분명하게 말한 것은 있다.

 

"모든 사회가 일정정도 부정과 범죄를 안고 있다.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이제 삼성 문제는 비등점에 왔다는 느낌이다. 그 조직은 자기가 털고 갈 자정능력이 없다. 여론이 움직여야 한다"(한겨레21)

 

"내가 이 사회에서 마지막으로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공범이다. 깊이 뉘우친다. 구속될 각오가 돼 있다"(시사IN)

 

비장함을 느끼기 충분하다. 하지만 잡지속에 나타난 그의 표정은 잔뜩 흐려있다. 찌푸리기도 했고, 고민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비자금 폭로에 맞춰 김 변호사 개인을 둘러싼 유쾌하지 않은 가정사도 나돌고 있다. 구속까지 각오한 김 변호사의 삼성 정조준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두고볼 일이다.


태그:#삼성 비자금, #김용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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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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