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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세훈 서울시장
ⓒ 서울시 제공
서울 은평뉴타운 고분양가 논란과 관련, 오세훈 서울시장이 '후분양제 전면 도입'이라는 칼을 빼들었다. 지난 18일 SH공사가 발표한 분양원가가 주변시세보다 터무니없이 높다는 네티즌 여론을 감안해 투명성 논란에 종지부를 찍겠다는 각오로 고강도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오세훈 시장은 25일 서울시청 기자회견장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은평뉴타운을 포함해 서울시가 건설·공급하는 모든 아파트에 대해 건설 공정이 80% 이상 진행된 이후에 분양하는 '아파트 후분양제'를 전면 도입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9월말 분양 예정된 은평뉴타운 사업은 1년 뒤인 내년 9월로 연기됐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이 "소비자 중심의 주택정책인 후분양제를 실시하겠다"며 2007년부터 단계적으로 도입하기로 한 가운데 오세훈 시장의 후분양제가 순탄하게 진행된다면 한국 주택정책의 대전환이 예고된다고 볼 수 있다. 사실상 대한민국 최초로 주택정책의 터닝포인트를 오 시장이 쥐게 됐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오세훈 시장은 이날 "SH공사가 발표한 은평뉴타운 1지구에 대한 분양계획과 예정가격을 전면 재검토하기로 했다"며 "발산·내곡·장지지구 등 공공택지개발과 주택건설사업은 공익적 목적에 맞게 이윤을 적정규모 이내로 최소화 할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오 시장은 "서울시가 조성해 매각한 택지를 분양 받아 시공하는 민간건설 아파트의 경우에도 후분양제가 적용될 수 있도록 제도 정비에 나설 것"이라며 ▲입찰제도 개선 ▲분양가 상한제 도입 ▲원가절감을 위한 장기 제도개선 추진 등을 주요 과제로 꼽았다.

은평뉴타운을 비롯 서울시가 지정한 33개 뉴타운 지역의 민간조합에게도 후분양을 제도적으로 권장하겠다는 뜻도 담겨 있다.

특히 오 시장은 "서울시가 공급하는 모든 공공 아파트의 분양가격 산정에 전문가와 시민단체 등이 참여하는 '분양가 심의위원회'를 구성해 공개 검증과정을 거치겠다"며 "분양원가 공개검증은 향후 서울시가 공급하게 될 모든 아파트에 동일하게 적용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오 시장이 나름대로 파격적인 제안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날 기자회견장에서는 은평뉴타운 아파트 분양원가 세부내역 공개에 대한 의혹과 객관적 증거 불충분에 대한 기자들의 문제제기가 줄을 이었다.

"SH공사의 분양원가 공개는 추정치였다"

상세 설명에 나선 최창식 서울시 행정2부시장은 "후분양제를 통해 기존에 알려진 분양가인 1500만원보다 분양가를 낮출 방침"이라며 "원가계산에서 금융비용이 평당 15만원선 정도 증가하는 것 이외에는 늘어날 비용이 없기 때문에 가급적 분양가를 절감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지난번 SH공사가 발표한 분양원가 책정은 거짓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최 부시장은 "비난여론 이후 서울시 자체 점검 결과 정부 관행과 통계에 따라 산정된 분양가는 적정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며 "100% 완공하지 않은 아파트의 분양원가를 명백하게 밝혀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털어놓았다.

최 부시장은 "서울시의 분석결과, 아파트 분양원가에 대한 객관적 설명의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다"며 "대부분 추정치로 가격산정을 하기 때문에 세부항목별로 공개하는 것이 정확한 계산이라고도 할 수 없다"고 반론했다.

또한 "분양가 항목이 무지 복잡하고 어려워서 대국민 설득이 어려울 것 같았다"며 "80% 공정률을 보이는 아파트의 경우에도 정확한 분양가를 항목별로 따지기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최 부시장은 "후분양제가 분양가의 불법거래를 막을 수 있는 방안이 될 수 있다"며 "현행 7개 항목으로 나눠 공개되는 아파트 분양가를 필요하다면 항목을 늘려서라도 공개할 수도 있지만 그게 실효적인 것인지는 의문"이라고 피력했다.

100% 완공되기 전까지는 정확한 분양가 모른다?

▲ 서울 은평뉴타운 개발계획 평면도와 조감도.
ⓒ SH공사 은평뉴타운 전자카탈로그

최 부시장은 이번 고분양가 논란과 관련 "서울시 간부들이 분양가 세부 항목별 공개 여부를 두고 1시간 30분간 20∼30쪽 분량의 자료를 놓고 고민해봤으나 결론은 이 자료 자체를 공개하는 것은 불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며 "전문가들로 구성된 심의위를 통해 내실을 갖춰 알리는 편이 훨씬 더 구체적이고 적절성을 따지는 데도 합리적일 것이라고 봤다"고 논의과정의 일단을 공개하기도 했다.

이날 서울시는 SH공사가 지난 18일 발표한 은평뉴타운 분양원가와 관련해 "분양원가가 아니라 추정치였다"고 인정했다. 서울시가 네티즌들의 분양원가 공개 논란에 대해 공식적으로 SH공사의 분양원가 공개가 잘못됐다는 점을 처음으로 시인한 것이다.

최 부시장은 "분양가 세부항목별 추정치를 객관화하기는 어렵다"며 "공사 집행 금액과 토지 보상이 완료된 시점일지라도 분양원가를 완벽하게 계산할 수는 없다"며 "분양가 산정은 상업용지와 학교부지 매매여부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100% 완공되기 전까지는 분양가가 정확하게 얼마라고 산출되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아파트 건설의 80% 공정 단계에서 후분양제를 실시한다는 것은 골조 완성과 내장이 도입돼 적어도 소비자가 '내가 살 집'이라고 인식할 수 있는 단계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며 내년 후분양 시점에 다시 분양공고를 내고 분양가를 다시 산정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에 따라 당초 9월말 주택공급을 목표로 은평뉴타운 1지구에 대한 공급물량 및 분양 예정가 발표는 사실상 무위로 돌아간 꼴이다. 이와 관련 서울시는 이번 주중으로 신문광고 등을 통해 대시민 사과에 나설 방침이다.

김헌동 "거짓말만 아니라면 주택정책 대전환 예고"

이와 관련 김헌동 경실련 아파트값거품빼기 운동본부장은 "노무현 대통령보다 오세훈 시장이 훨씬 월등한 정책을 쓰고 있다"고 평가했다.

김 본부장은 "공급자 중심의 선분양 정책에서 소비자 중심의 후분양 정책으로 바뀐다는 것 자체가 의미있는 일"이지만 "정치인들은 워낙 거짓말을 잘하기 때문에 이 약속을 끝까지 지켜갈지 의문"이라고 불안 섞인 기대를 드러냈다.

그는 "경실련은 그동안 아파트 분양원가를 공개하기 싫다면 후분양제를 실시해 소비자들이 아파트를 보고 선택할 수 있도록 했어야 했다"며 "뒤늦은 감이 있지만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어 "주택정책과 관련해 노무현 대통령한테 많이 속았는데 오세훈 시장은 과연 어떻게 풀어갈지 기대가 된다"며 "은평뉴타운을 비롯해 앞으로 주택정책이 소비자 중심으로 바뀐다는 것은 주택정책의 대전환"이라고 조망했다.

"은평뉴타운에 벌써 딱지장사들 출현"
서울시 분양가 낮춘다고 말 못하는 까닭

▲ 오세훈 시장이 은평뉴타운에 대해 전면 후분양제를 실시하겠다고 발표한 뒤 상세 설명에 나선 최창식 서울시 행정2부시장.
ⓒ 서울시 제공

"은평뉴타운 분양가가 불광동보다 더 비싸다는 게 문제 아니겠어요?"

최창식 서울시 행정2부시장은 끊이지 않는 은평뉴타운 분양가 논란의 핵심을 이같이 찍었다. 분양가가 주변시세보다 비싸다는 게 시민들의 의구심을 자극했다는 것이고, 이를 통해 끊임없는 투명성 논란이 야기됐다고 보고 있다.

실제 지난 18일 서울시와 SH공사가 은평뉴타운 고분양가 논란을 종식시킬 요량으로 분양원가를 공개했지만 곧이곧대로 믿는 이는 없었다. 네티즌들은 "분양가 말고 분양원가를 공개하라"고 목청을 높이는 등 서울시 비난여론이 비등했다.

서울시는 판교나 상암지구 아파트 분양과 같이 '관례대로' 했을 뿐인데, 유독 은평뉴타운의 분양가가 문제로 지목된 것은 '주변시세보다 비쌌기 때문'이라고 내부적으로 진단했다. 은평뉴타운 분양가가 주변시세보다 낮거나 같았다면 아무런 문제가 될 게 없었다는 것이다.

서울시는 지난주 내내 날로 확장되는 은평뉴타운 고분양가 논란을 어떻게 잠재울 것인가 궁리했다. A4 20∼30쪽에 달하는 자료를 놓고 이것을 그대로 보도자료로 만들어 기자들에게 나눠줄 것인가, 아니면 전문가들로 구성된 '아파트 분양가 심의위원회'를 통해 발표할 것인가를 두고 고민한 것이다.

서울시는 대국민 신뢰성을 발휘할 수 있는 전문가집단과 시민단체 관계자들의 참여를 통해 '아파트 분양가 심의위원회'를 만들기로 하고 이들을 통해 '아파트 분양가'에 대한 공신력을 극대화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특히 최 부시장은 "현재까지 알려진 분양가보다 값을 낮추는 데 힘을 쏟아야겠지만 시장 상황이라는 게 있기 때문에 섣불리 가격을 내릴 것이라고 큰소리로 말하지 못하겠다"며 "벌써 시장엔 딱지장사가 왔다갔다한다고 들었다"고 걱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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