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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꾸자! 학교는 신문지국, 교사는 신문배달부.” 소년신문 학교 안 집단 구독을 놓고 터진 몇몇 교사들과 학부모들의 외침이었다. 2002년 교원단체와 학부모단체들이 소년신문 강제구독 거부운동을 펼쳤지만 폐습은 여전한 상태다. 언론권력이 ‘코흘리개 초등학생’들의 전당인 학교 안에까지 뻗쳐 있기 때문이다. 최근엔 서울교육청 새 교육감 취임 직후 학교장 명의의 ‘가정통신문’이 일제히 발송되는 등 문제가 점점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소년신문 학교 안 강제 구독의 폐해를 네 차례에 걸쳐 싣는다... 필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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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냅시다! 소년신문 강제구독1] “초등 1학년 아침자습에 활용, 가급적 구독하라”

▲ 서울 어느 초등학교장이 보낸 가정통신문.
ⓒ 윤근혁
<소년조선일보> <소년한국일보> <어린이동아> 등 소년신문 3사가 자사 신문을 집단 구독시키는 서울지역 공립초등학교에 건넨 기부금 총액이 2003년 한해만 25억원이나 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소년신문사 기부금 대행창구인 '서울어린이후원회'를 통해서다.

서울시교육청은 서울시교육위원회 이건 위원에게 보고한 자료에서 "2003년 3월 1일부터 2004년 4월 30일까지 초등학교가 소년신문사로부터 받은 기부금 수령액은 31억9984만7000원이며 지난 한 해 기부금 수령액은 25억2857만7000원"이라고 밝혔다.

소문만 무성하던 소년신문사 기부금 총액이 교육청 조사자료를 통해 공식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자료에 따르면 올 4월 현재 이 지역 전체 공립초등학교 512개교 가운데 90.4%인 463개 학교가 소년신문을 학교 안에서 집단 구독시키고 있었다. 구독 규모는 전체 2만311개 학급 중 73.5%인 1만4931 학급, 38만4903명의 학생이다. 이 가운데 초등 1, 2학년 학생도 6만8698명이나 됐다.

서울지역 초등학교 소년신문 집단구독 관련 기부금 내역

구분 

3월

4월

5월

6월

7월

9월

10월

11월

12월

3월

4월

합계

구독학생수

370.788 415.581 404.790 396.607 359.161 409.614 415.395 409.178 405.939 350.403 357.856 4.295.312

금액

189.464 208.661 478.558 181.500 457.220 176.564 432.998 222.878 528.701 186.267 137.036

3.199.847

ⓒ (서울시교육청 자료, 대상기간 2003.3.1~2004.4.30, 금액단위 : 천원)

아침자습 시간에 신문을 활용하는 학급수도 1만1884 학급으로 서울지역 전체 학급의 과반수 이상을 차지했다.

현재 소년신문을 집단 구독하는 초등학교는 학교장 명의의 구독 종용 가정통신문 발송, 학생 동원 신문 배달, 교사를 통한 아침자습 활용 등으로 '사실상 강제구독'이라는 빈축을 사왔다.

'대가성 기부금' 위법 논란, 서울시교육청은 '나 몰라라'

한편, 서울지역만 따져도 한 해 수십억원 대의 소년신문 관련 기부금 규모가 확인됨에 따라 위법 논란도 일고 있다. 현행 초중등교육법 33조, 교육법시행령 64조, 기부금품모집규제법 제2조 등 법규정은 '공공기관이 여러 명목으로 외부 인사나 기관으로부터 수령하는 금원은 반대급부 없이 취득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민석 전교조 서울초등위원장은 "소년신문을 보는 학교에만 구독 부수에 따라 돈을 제공한 것으로 비추어 볼 때 명백한 대가성 기부금이며 법규위반"이라고 말했다. 전교조 서울지부는 이와 관련해 지난 8월 말 감사원에 감사청구서를 낸 상태다.

이에 대해 '서울어린이후원회' 관계자는 “소년신문 한 부 구독료 3500원 가운데 700원보다도 작은 액수의 돈을 학교에 돌려주고 있다”면서 “이는 신문사 배달체제를 대행해 주는 것에 대한 보상이기 때문에 대가성이 있는 기부금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이런 논란 속에 서울시교육청은 대가성 기부금 여부에 대한 판단을 해당학교에 미뤘다. 초등교육과 소년신문 담당 류아무개 장학사는 "소년신문사 기부금이 학교발전기금의 성격이기 때문에 해당 학교 학교운영위원회에서 위법 여부를 판단해 시행해야 한다"면서 "감사기관이 아닌 교육청이 섣불리 판단한다면 소년신문 학교 내 구독 자체를 부정하는 일이 되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서울시교육청은 올해 5월 '소년신문 관련 대가성 기부금 금지'를 못박은 단체협약을 교원노조와 맺은 바 있다.

교육청과 초등학교에 웬 '소년신문' 담당?
상당수 초등학교 관리자, '업무분장'으로 교사한테 떠맡겨

"홍보마케팅, 배달, 수금…".
일간 신문사 지국들이 하는 일이다. 그런데 소년신문 업무는 해당 신문사 지국이 아닌 국가 행정기관이 담당한다. 초등학교가 곧 신문지국 노릇을 한다는 얘기다.

신문지국엔 지국장과 총무가 있듯이 대개의 초등학교에도 이와 비슷한 일을 담당하는 사람이 있다. 자신의 명의로 구독 홍보마케팅 성격의 '가정통신문'을 보낸 학교장은 신문지국장이고 학교장이 '업무분장'으로 떠맡긴 '소년신문 담당' 교사는 신문지국 총무인 셈이다. 물론 배달부 일은 '코흘리개' 당번 학생이 아침마다 수행해야 할 몫이다.

한술 더 떠 서울시교육청은 초등교육과 안에 소년신문담당 장학사를 두고 있다. 이 장학사는 소년신문 관련 업무와 함께 '교실수업 개선 지원' 역할을 맡고 있다.

물론 국가행정기관이 모든 어린이신문의 지국 역할을 대행해 주는 것은 아니다. <굴렁쇠> <고래가 그랬어> <한국어린이신문> <달팽이신문> <송알송알신문>과 같은 군소업체에서 내는 신문과 잡지는 해당되지 않는다.

오로지 <소년조선일보><소년한국일보><어린이동아> 등 주요 언론사에서 낸 소년신문 일만 맡게 된다. 그렇다고 이 거대 신문사에서 소년신문 담당 교사나 교장에게 봉급을 주고 있지는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유인종 전 교육감 "어린이신문은 감사원도 손 못 댄다"

사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은 해방 이후 수십년 동안 관행처럼 진행돼 왔다. 다만 몇 해전부터 문제를 느낀 몇몇 교사들과 학부모들이 산발적으로 항의했을 뿐이다. 그러던 것이 2002년 전교조와 참교육학부모회가 조직적으로 나서 '집단구독 반대운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성과는 이번 서울시교육청 자료가 보여주듯이 크지 않다.

특정업체에서 만든 책이라는 이유로 '방학생활', '탐구생활'이란 이름의 방학책까지 없앤 바 있는 유인종 전 서울시교육감의 다음과 같은 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소년신문 거부 운동이 불붙은 2002년 4월 9일 교원노조와 진행한 본 교섭에서 다음처럼 말했다.

"솔직히 깨놓고 말해야겠다. 어린이신문을 학교 안에서 배달하지 못하게 하는 일은 감사원도 힘들고 정부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비판 기사가) 난데없이 신문에 나오면 걷잡을 수 없는 게 한국의 현실이다. 초등학교 방학책 없애려고 4년 동안이나 고생했는데 어린이신문은 더 더욱 어려운 입장이다." <유인종 전 교육감 발언, 오마이뉴스 2002년 4월 10일치 기사 참조> / 윤근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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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교육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살아움직이며실천하는진짜기자'가 꿈입니다. 제보는 bul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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