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나 승무원에서 서울시의원으로…정의당 권수정 “임금격차 해소 조례 만들겠다”

박송이 기자
지난 11일 110명의 서울시의원 중 유일하게 진보정당 소속인 권수정 정의당 의원이 서울시의회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지난 11일 110명의 서울시의원 중 유일하게 진보정당 소속인 권수정 정의당 의원이 서울시의회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지난 11일 제10대 서울시의회가 공식 출범한 개원식. 2년 임기의 의장과 부의장을 선출하는 자리였다. 8년 만에 나온 진보정당 소속 서울시의원이자 110명의 제10대 서울시의원 중 유일한 진보정당 소속인 권수정 의원(44)이 의사진행발언을 신청했다.

“의장, 부의장 선거가 치러졌습니다. 이 자리에서 과거 방식에 따라 의장과 부의장이 선출됐습니다. 민주당 내에서 동의했고 선출됐지만 소수정당이 있습니다. 서울시민들과 의원들에게 어떤 내용이라도 짧게 정견발표가 있는 투표방식이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서울시의회 110개 의석 중 102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은 이미 내부 경선을 통해 신원철 의원을 의장으로 결정해둔 상태였다. 신 의원은 이날 103표를 얻어 의장에 선출됐다. 권 의원의 의사진행발언은 이러한 의장단 선출 방식에 대한 문제제기였다. 권 의원은 “오후에 치러질 상임위 선출에서 다양한 정당을 배려해주길 바란다”며 “소수당이라는 이유로 논의 테이블에서 사라지면 안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오후에 치러진 상임위원장 투표에서도 소수정당은 논의에서 배제됐다. 10개 상임위원장 모두 미리 민주당에서 결정한 대로 선출됐다. “작은 학교에서 학급 내 반장을 뽑을 때도 후보자가 나와서 정견발표를 하잖아요. 누가 뽑힐지 뻔하더라도 말이죠. 어찌 보면 당연한 건데 저희 소수정당은 누가 의장을 할지, 상임위원장을 할지, 후보군에는 누가 있는지조차 몰라요. 뒤에서 다 정리해오고 공개된 장에서는 논의조차 되지 않는 관행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는데 묵살됐죠.” 민선 7기 서울시의회 첫 본회의가 열렸던 지난 11일 서울시의회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권수정 의원을 만났다.

■ 노동현장 찾아다니는 시의원

권 의원은 아시아나항공 24년차 승무원이다. 1995년 입사해 1999년 노조활동을 시작했고 전국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 아시아나 항공위원장,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여성위원장을 거쳤다. 서울시의회 기획경제위원회 상임위에서 활동하면서 서울시의 ‘노동’ ‘일자리’ 정책을 중심으로 목소리를 내겠다는 계획이다. 개원에 앞서 권 의원이 바쁘게 찾아다닌 곳도 노동현장이었다. 지난 9일 권 의원의 등원 첫 행보는 서울시청 청소노동자와의 만남으로 시작됐다. 권 의원은 이날 청소노동자들을 만나 “110명의 서울시 의원 중 한 명밖에 없는 정의당 의원이지만 그동안 정의당이 강조해온 노동의 가치를 지키고 넓혀 나가는데 시청 노동자들과 함께하겠다”고 말했다.

11일 개원을 앞두고는 서울 중구 상공회의소 앞에서 복직투쟁을 하고 있는 양경규 전 공공연맹노조위원장의 1인 시위를 함께 지켰다. 양 전 위원장은 2001년 대한항공조종사노조의 파업을 지도했다는 이유로 상공회의소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았다.

6일에는 기내식 대란으로 촉발된 아시아나항공 승무원들의 항의집회를 찾아 지지발언을 하기도 했다. 권 의원은 2010~2013년 자신이 노조위원장으로 활동할 당시 3년 내내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피켓 시위를 했던 것을 회고했다. “박삼구 회장이 투기성 자본으로 2006년 대우건설, 2008년 대한통운을 사들였습니다. 그룹경영이 위기에 처했고 그때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그러나 박 회장이 이쪽저쪽에서 빚을 끌어와 다시 회장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그때 안된다는 이야기를 3년간 내내 했습니다. 그때 우리가 뭉쳐서 싸우지 못하고 막아내지 못해서 결국 그다음에 어떤 상태가 됐습니까. 예약 영업직원들이 아웃소싱됐습니다. 지상직원들은 쪼개고 쪼개져서 외주위탁으로 넘어갔습니다. 정비현장 인력은 충원되지 못하고 식사 질은 점점 나빠지고 업무강도는 점점 높아졌습니다.”

승무원으로 입사…휴직 신청 상태
회사 성차별 느껴 노동운동 시작
정비인력 퇴사에 비행기 안전 걱정

청소노동자·해고자 만나 의정 첫발
의장·상임위장 투표 관행에 항의도
성차별 중 일자리·임금차별에 주목
비정규직·여성 문제 목소리 낼 것

권 의원은 이번 지방선거에 출마하면서 회사에 휴직을 신청해놓은 상태다. 아시아나항공 승무원으로 적극적으로 노조활동을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승무원들은 자신의 신원이 노출될까봐 항의집회에 가면, 장갑을 착용하고 나간다. 직원에 대한 사측의 감시와 통제가 비일비재함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지금 언론에 드러나는 것만 해도 경악스러운 사건이 많죠. 물론 기내식 문제만 놓고 보면 몇 개월이 지나면 해결되겠죠. 그러나 이걸로 끝이 아니에요. 그나마 이건 먹는 문제인데 다음엔 비행기 안전문제로 갈까봐 걱정이에요. 정비사들도 다 그만두고 있어요. 재벌개혁 문제이기 때문에 사실 너무 큰 산이에요.”

이러한 기업문화에서 노조의 목소리는 사측에 의해 가로막혀왔다. 1999년 노조가 처음 출범할 때만 해도 3000명이었던 조합원은 회사의 감시와 배제 속에서 150명으로 줄었다.

“진급에서 배제하고 교육 등에서 불이익을 주죠.” 입사 24년차임에도 여전히 대리를 벗어나지 못한 권 의원이 대표적인 사례다. “대리 진급 대상 첫해에 대리를 달고 20년 넘게 대리로 있어요. 근무평가를 보면 전 항상 상위권에 있는데도요. 회사에서 ‘노조를 해서 불이익이 있는지 궁금하면 권수정을 보라’는 말도 있었어요.”

2014년 아시아나 직원이던 권수정 서울시의원이 아시아나항공 본사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당시 아시아나는 임금피크제 도입, 상여금 지급 기준 변경 등의 내용을 담은 ‘취업규칙 변경 동의서’를 직원들에게 받아 반발을 샀다.

2014년 아시아나 직원이던 권수정 서울시의원이 아시아나항공 본사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당시 아시아나는 임금피크제 도입, 상여금 지급 기준 변경 등의 내용을 담은 ‘취업규칙 변경 동의서’를 직원들에게 받아 반발을 샀다.

■ 성별 임금격차 해소 조례

사회통념으로 볼 때 승무원과 노동운동은 거리가 멀어 보인다. 권 의원이 승무원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딜 때만 해도 20년 후 자신이 노동운동을 하고 노동의제를 맨 앞에 둔 정치인이 될지 상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입사 이후 겪은 부당한 대우와 성차별의 경험들이 권 의원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길로 이끌었다. “학교 다닐 때 학생운동하는 친구들에 대해 안 좋게 생각했어요. 왜 공부 안 하고 저러고 다닐까 하고요. 그런데 입사해 정당하지 않은 대우를 받다 보니 각성이 되더라고요. 힘들어서 코피 쏟아도 그대로 비행하러 가야 하고, 아픈데 기계 취급 당하고요.” 여성이 많은 사업장이었지만 성차별은 오히려 심했다. “임금부터 차별이 있었어요. 또 여성성을 드러내는 성차별적인 업무복장에 대한 규정도 있었고요. 민주노총에서 여성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더 많이 봤죠. 비정규 사업장부터 대규모 사업장까지 성차별이 없는 사업장이 없었죠.”

권 의원은 1명뿐인 진보정당 시의원으로서 또 얼마 안되는 여성 시의원 중 한명으로서 여성과 노동에 방점을 찍는 활동을 하겠다는 계획이다. 서울시민들의 삶을 좌우하는 정책을 결정하는 자리에 여성의 수는 여전히 적다. 여성 시의원은 전체의 25%인 28명이다. 지난 11일 서울시의회 개원식에 축사를 하러 온 박원순 서울시장은 서울시청의 주요 국·실장들을 소개했지만 여성 공무원의 모습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권 의원은 성별 임금격차 해소 조례를 첫 번째로 발의하겠다는 계획이다. “성차별 중에 일자리와 임금차별에 주목하고 있어요. 공공기관뿐만 아니라 위·수탁하는 기관끼리 포괄해 봤을 때 꽤 많은 영역에서 이 부분을 다룰 수 있다고 봅니다. 사업장별로 성별 임금격차가 어느 수준으로 일어나고 있는지를 파악하고 정기적으로 이를 평가해서 점수화해 인센티브나 페널티를 줄 수 있도록 조례를 만들려고 해요.” 물론 조례를 발의하고 통과시키는 과정에는 동료 의원들의 동의와 찬성이 필요하다. 권 의원은 함께 당선된 초선의원들에게 기대를 건다. “이번에 초선의원들만 80명이 넘게 들어왔어요. 시대적 요구 속에서 들어온 분들이 많아서 제가 고민하는 부분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고 기대합니다. 민주당 의원들 중에는 자유한국당 계시다 당적을 바꿔 민주당 타이틀로 들어오신 분도 있지만 민주당은 워낙 스펙트럼이 다양하니까 함께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 지지율 두 자릿수 정의당

최근 정의당 지지율이 두 자릿수로 상승하고 자유한국당을 턱밑까지 추격하면서 정의당은 ‘제1야당’의 목표를 내걸고 있다. 정부가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탄력근무제 실시 등으로 노동 정책이 후퇴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정의당은 정부를 견제하고 노동자들을 대변하겠다고 자처하고 나섰다. 그러나 정의당 내에서는 지방선거 결과를 두고 정의당이 노동을 대변해왔던 현실적인 기반이 무너졌다고 분석한다. 노동자 밀집지역인 경남·울산 등의 지역 또한 민주당이 잠식해버렸다는 지적이다. 권 의원은 “정의당이 민주당과 커다란 차이를 못 내오기도 했고, 민주노동당 해체 이후에 자기 지역 내의 지분 싸움으로 정신 못 차렸던 부분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권 의원은 박원순 시장이 ‘유니온시티서울’을 내세우며 ‘노조할 권리’ 등을 강조하지만 노동에 대한 구체성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서울시 산하 공공기관인 서울교통공사의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는 과정에서도 많은 정규직 청년들의 반발이 있었죠. 사실 비정규직 사용 자체가 너무 기형적이었고 오래된 것이어서 이를 정상화하는 과정이었던 건데 이 과정에서 ‘노사가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뒷짐을 지고 있었죠. 적극적인 자세로 갈등을 해결하고 조정할 수 있게 비정규직 문제에 더 목소리를 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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