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수리 집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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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미디어추천
빛, 축, 터, 방, 마당, 시선, 나무, 바람, 어둠을 수리해
낡고 허름한 집에 새 숨을 불어넣는 건축가 김재관
통념을 뒤집어, 집수리에 사람과 인문학을 담다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삶의 공간을 수리해가며 살아가는 일은 대한민국처럼 끊임없이 재개발이 이어지는 나라에서는 웬만해선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그러나 이것은 그대로 두어도 괜찮은 일일까. 건축가 김재관이 잘나가는 건축가에서 집수리업자로 전향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쉼 없이 신축 건물을 지어나가는 일이 아닌, 시공간의 역사를 보존하면서도 옛것의 새로운 쓸모를 찾아가는 집짓기. 즉, 김재관의 집수리는 집값과 유행에 따른 증축이나 리모델링과는 다른 개념을 갖는다. 건축가 김재관은 이를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집수리라 부른다.
수리는 집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라디오나 시계도 수리하며 옷, 가방, 자동차, 선박, 동네와 국가도 수리한다. 비가 새면 ‘지붕 수리’를 하고 둑이 무너지면 ‘밭둑 수리’를 하는 것처럼 대상이 집이면 ‘집수리’가 되는 것이다. 집도 다시 나누면 물, 길, 빛, 축軸, 터, 뼈, 방, 켜, 층, 마당, 시선, 나무, 바람, 허虛, 어둠, 태 등으로 세분되는데, 여기에 수리를 합하면 물의 수리, 길의 수리, 빛의 수리, 축의 수리, 터의 수리, 뼈의 수리, 방의 수리, 켜의 수리, 층의 수리, 마당의 수리, 시선의 수리, 나무의 수리, 바람의 수리, 허의 수리, 어둠의 수리, 태의 수리가 된다. 그렇다면 물, 길, 빛, 축, 터, 뼈, 방, 켜, 층, 마당, 시선, 나무, 바람, 허, 어둠, 태는 왜 수리를 해야만 하는 것일까. 그것의 궁극적인 목적은 집수리 자체라기보다는 수리된 집에서 살게 될 인간의 삶을 수리하려는 것이다.
_본문 15~16쪽
작가정보
저자(글) 김재관
충북 옥천에서 태어났다. 공인건축사로 1997년에 무회건축연구소를 설립하여 강정교회, 성만교회, 충신교회 등 열 개 남짓의 개신교회과 주거시설을 설계하여 한국건축문화대상, 경기도건축상을 수상했다. ‘서울 문화의 밤’ 행사 ‘일일 설계사무소’에서 만난 율리아의 집을 수리하면서 집수리업자로 전향했다. 이후 10년간 율리아네, 재훈이네, 철민이네 집 등을 수리했고 예진이네 집수리로 서울시건축상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근래에는 서울 구기동에 있는 두 채의 집을 수리하며 동네 수리의 가능성을 탐색했다. 집수리도 이웃과 함께하면 이로움을 공유하고 해로움을 피할 수 있기에 이것이 확장될 때 도시 수리 혹은 도시 재생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마음에 품은 이념은 격물치지格物致知다. 사물을 깊고 바르게 이해하면 할수록 궁극의 앎에 미칠 수 있다는 의미를 집수리에 투영해, 집의 낡음, 아름다움, 어둠, 작음, 좁음, 남루함을 유심히 살피고 해석하여 수리의 대상 속에 포함하려 한다.
목차
- 들어가며
_수리입문/수리지명/수리멸종/수리지향/수리소개
1부. 율리아네 집수리
○ 집수리, 사람들
우린 하루가 멀다 하고 만나 집에 대해 이야기했다
○ 수리수리 집수리
마당의 수리/어둠의 수리
2부. 김 교수네 집수리
○ 집수리, 사람들
건축은 문장과 같습니다
○ 수리수리 집수리
축의 수리
3부. 철민이네 집수리
○ 집수리, 사람들
삽시다, 여기 사야 해요
○ 수리수리 집수리
나무의 수리/방의 수리/평생수리
4부. 예진이네 집수리
○ 집수리, 사람들
센 땅 위에 지어진 집
○ 수리수리 집수리
시선의 수리/빛의 수리/시간의 수리/터의 수리/하자의 수리
5부. 이상집 집수리
○ 집수리, 사람들
뻔하되 허무하지 않던 이상과 닮은 집
○ 수리수리 집수리
태의 수리/수리본능
예고편_두꺼비집 집수리
책 속으로
◎ P.14 닦을 수修, 다스릴 리理…… 이처럼 멋지고 지성적이며 합목적적인 말을 우린 잊고 있었다.
◎ P.16 왜 수리를 해야만 하는 것일까. 그것의 궁극적인 목적은 집수리 자체라기보다는 수리된 집에서 살게 될 인간의 삶을 수리하는 것이다.
◎ P.30 남쪽에 버티고 있는 5층짜리 다세대주택은 볕 잘 들던 남향집을 과거로 만들었다. 오전 열시부터 열한시경 동남쪽을 지나는 햇볕이 고시원의 지붕을 비끼며 잠시 동안 볕을 선사하곤 오후 세시까지는 앞집 뒤로 숨었다가 오른쪽 길과 집 사이의 틈으로 한두 시간 남짓 나타난 후 곧 사라졌다. 햇볕도 그랬지만 마당과 방들이 온통 내려다보이는 것도 심각해서 두꺼운 커튼으로 창문의 절반쯤을 가려야 했다. 보여지는 것도 불안했지만 그렇다고 스스로를 가둘 수도 없기 때문이었다.
◎ P.67 집수리업자가 된 이후 설계사무실 시절의 설계도면과 달라진 점은 시공할 수 없는 도면은 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을 해결할 사람이 우리 자신이기 때문이다.
◎ P.86 ‘삼대가 공덕을 쌓아야 남향집에서 살 수 있다’는 남향집에 대한 신뢰는 옳을까? 거실, 안방이 남쪽을 차지하면 나머지 공간들은 다른 곳에 배치될 수밖에 없으므로 결국 어두운 계단실, 어두운 건넌방, 어두운 부엌, 어두운 창고가 만들어진다. 그것은 선택이라기보다 밝음으로부터 소외된 결과일 뿐이다. (「율리아네 집수리」 중 ‘어둠의 수리’에서)
◎ P.110 “건축은 문장과 같습니다. 문장을 이루는 품사들은 저마다 용처가 다릅니다. 당신이 지적한 곳은 계단의 시작이자 욕실의 입구이며 마루를 오르는 첫 단이기도 합니다. 이 세 가지 기능을 동일한 높이로 맞추라는 것은 문장을 해체하고 단어만 한 줄로 나열하자는 것과 같습니다.”
◎ PP.149~150 이튿날 새벽, 약속대로 여러 명의 목수들이 현장에 도착했다. 그들이 시작한 일은 바닥에 마루를 까는 일이었는데 이 일의 큰 어려움은 마루를 놓을 방의 네 귀가 직각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소위 ‘가네’가 나(직각이 틀어져) 사방이 찌그러진 공간이었다. 네 변의 길이가 모두 다른 공간에서는 그 편차를 미리 감안하지 않으면 작업이 진행될수록 오차가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 사실을 미리 예견했던 목수들은 급하게 마루를 깔기보다는, 적용된 치수들을 나무 개수마다 대입하여 일정한 순서로 시공이 될 경우 맨 마지막의 마룻널이 어떤 모양이 될지를 미리 계산한 후 마지막 장의 마룻널이 그것과 만나는 벽면과 수평이 되도록 마루의 간격마다에서 그 편차를 미리 흡수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보기만 해도 든든했다. (「김 교수네 집수리」 중 ‘벌교 목수네 이야기’)
◎ P.221 옛날 집을 수리할 때 무서운 복병은 이미 수리되어 변형된 상태를 알 수 없을 때인데 그것을 발견하기 어려운 것은 설계도면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다. 그렇다고 이사를 가면서 언제 어디를 불법으로 수리했으니 조심하라고 인수하는 경우도 없다. 또다른 이유는 불법 변경의 흔적이 천장 속이나 미장된 표면 속에 감춰져 있기 때문이다. 그런 경우를 가정하지 않고 현재 보이는 공간이 최종이라고 판정하고 그것을 대상으로 건축적 지식을 동원하여 내력벽 비내력벽의 판정을 하면 정말 아찔한 경우가 생긴다(공무원이 이글을 보지 않기를 바라며). 이 집도 그런 부분이 있다. 준공이라고 부르는 절차를 통과할 경우를 미리 가정하여 공사한 부분들인데 대부분이 단열, 난방, 방수가 안 돼 있고 철근의 연결 없이 한몸처럼보인다는 것이다. 이걸 발견하는 것은 정말 어렵고도 중요하다.(「철민이네 집수리」 중 ‘방의 수리’에서)
◎ PP.258~259 말하자면 벽돌을 잘 쌓는다는 것은 한 장 한 장을 가지런하게 쌓는다는 것도 있지만, 전체 맥락을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런 감각만큼은 정 반장이 한 수 위다. 그런 의미에서 딱부리가 갑자기 똥을 누고 싶어진 것은 그것을 해결하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이 누군가에게 들켰을 것을 알고 한 행동일 가능성이 높다. 어쩌면 손녀 때문에 하루를 비운 날 정 반장이 그 부분을 모두 마무리한 것을 까맣게 모르고, 자신이 그 부분을 해결해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현장에서 누군가 출근하지 말라는 연락을 해왔다’는 거짓말을 지어냈을지도 모른다. 말하자면 영원히 똥을 싸고 싶었던 것이다. 그 반대의 경우라면, 자신이 해결하지 못한 것을 정 반장이 완성했음을 알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두 사람은 초등학교 때부터 앞뒷집에 살았던 친구이긴 했지만 기술자로서의 자부심은 별개여서 쌓는 방법을 가지고도 종종 다투는 라이벌이기도 했다.(「예진이네 집수리」 중 ‘딱부리’ 이야기)
◎ P.309 빛은 공간을 더 밝게도 하지만 더 깊은 어둠을 만든다.
◎ P.314 집수리에서 기존의 것을 유지한다는 것은 문화재나 유적을 보존하는 것과는 달리 ‘새로운 쓸모’를 찾는 실용적 행위이며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이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에 대한 문법적 해결이기도 하다. 단순히 미학적 필요에 따라 낡은 것과 새것의 물성을 대비시키려는 건축적 수법과 다르다.
출판사 서평
우리가 몰랐던 집수리 현장의 생생함과 이를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다
이 책에는, 건축에 관한 여타의 책들과 다르게 집수리 현장을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가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담겼다. 현장의 장인, 기술자들의 이야기와 함께 집을 둘러싼 동네 이웃들의 이야기가 교차되면서 집수리의 구체적인 현실을 유쾌하게 재현해 보여주는 이 책은, 그 어디서도 알 수 없었던 집에 관한 생생한 지식을 전달해주고 있다. 포복절도할 만큼 유쾌하지만 더러는 코끝 찡한 김재관식 스토리텔링은 건축이란 것이 결국 구체적인 사람의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다는 것을 절로 깨우치게 한다.
건축가의 미학적 욕망보다는 그 건물에 사는 사람의 삶을 먼저 바라보는 실용적인 정신, 시공할 수 없는 설계도면은 더이상 그리지 않는다는 현장성, 인력시장에서 일 잘하는 사람을 찾아내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집수리장이의 치열한 하루하루는 폐가나 다름없는 집을 말 그대로 ‘변신’시키고야 만다. 건축적 심폐소생술이라 부를 만하다.
나는 목수다. 나는 요즘 집수리에 재미를 붙였다. 이 말에서 무언가 촌스러움을 느끼거나 동네에서 흔히 보던 ‘집수리’ 간판을 떠올린다면 내가 말하는 의미와 다르지 않다. 내가 하는 일 역시 여느 집수리장이처럼 인부들의 숫자를 헤아려 점심밥을 시키고, 삼립빵과 컵라면의 가격 차이를 따져 새참을 준비하고, 내일 사용할 벽돌을 미리 주문하고, 새벽 인력시장에 기별해 젊은 사람이 아니면 되돌려 보내겠다며 눈을 부라리는 일이다.
_본문 10쪽
한 사람, 가족, 동네의 역사를 보존하고 오래도록 살아 숨 쉬게 하는 집수리
책에는 총 다섯 채의 집수리 과정이 담겼다. 제각각의 긴 사연을 품은 오래된 집들은 저마다의 문제들도 가지고 있다. 그 문제로 인해 그곳에서 더이상 살기를 꺼려하는 이들도 있지만, 문제를 해결해 그곳에서 계속해서 살아가려는 이들도 있다. 이런 때에 필요한 것이 집수리다. 이사만이 능사가 아닌 것이다.
건축가 김재관은 집이 지닌 문제들부터 살핀다. 주변의 높은 건물들로 볕이 들지 않게 된 어두운 집, 산 밑의 높은 지대에 지어진 낡은 집, 안방만 밝은 어두운 남향집, 잡동사니로 복잡해져 무용지물이 된 마당, 유행이 지난 눈썹지붕은 김재관의 날카로운 관찰 속에 하나하나 해결책을 찾아나간다. 그리고 이러한 관찰과 분석은 이전과 같은 집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몰라보게 집의 구조와 쓰임새를 바꿔놓는다.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봉착한 난관들을 살피기에 가능한 일이다. 집과 인간을 연결해 최대한의 아름다움과 실용을 구현하는 건축가 김재관의 집수리는, ‘도시 재생’이라는 화두에 의미 있는 시사점을 던진다.
‘삼대가 공덕을 쌓아야 남향집에서 살 수 있다’는 남향집에 대한 신뢰는 옳을까? 남향집은 겨울이면 태양의 고도가 낮아져 빛이 깊이 들어오고 여름이면 그 반대가 되어 실내공간을 쾌적하게 만드는 합리적인 방위각이다. 그렇다고 볕이 골고루 들어오는 것은 아니다. 거실, 안방이 남쪽을 차지하면 나머지 공간들은 다른 곳에 배치될 수밖에 없으므로 결국 어두운 계단실, 어두운 건넌방, 어두운 부엌, 어두운 창고가 만들어진다. 그것은 선택이라기보다 밝음으로부터 소외된 결과일 뿐이다. 남향의 미덕보다는 그로 인한 환경적 우열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_본문 86쪽
기본정보
ISBN | 9788954657457 |
---|---|
발행(출시)일자 | 2019년 08월 14일 |
쪽수 | 408쪽 |
크기 |
147 * 197
* 30
mm
/ 593 g
|
총권수 | 1권 |
Kl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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