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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로 또 같이 완벽했던 베이시스트, Gary Peacock을 기억하며

Special솔로와 사이드맨 양쪽에서 완벽했던 베이시스트, Gary Peacock을 기억하며

장면 #1

제 차에는 언제나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와 벤자민 브리튼이 함께 연주한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 CD가 있습니다. 운전을 하다가 흥분하면 과속을 하는 안 좋은 습관이 있어서 마음을 안정시키려는 목적으로 듣기도 하고, 워낙 뛰어난 연주이다 보니 그 연주 자체가 좋아서 늘 즐겨 듣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로스트로포비치는 이 앨범 녹음 이후 벤자민 브리튼과 함께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연주라고 할 정도로 벤자민 브리튼을 높이 평가했는데요. 저 역시 지금까지 인류가 만들어낸 첼로 녹음 중에서는 단연 으뜸으로 꼽는 앨범이 이 앨범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파블로 카잘스의 연주를 더 좋아하지만 첼로 연주 앨범 한 장을 꼽으라면 파블로 카잘스가 연주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보다 이 앨범의 손을 들어주고 싶은데요. 물론 로스트로포비치는 카잘스와 더불어 20세기를 대표하는, 아니 인류를 대표하는 첼로 연주자라는 말이 전혀 과장이 아닐 정도로 뛰어난 연주자였지만 과연 벤자민 브리튼의 피아노 반주가 없었다면 이런 연주가 가능했을까요?

장면 #2

"저도 사람 한 명 찾겠습니다. 이름은 박민수. 나이 마흔 여섯. 형, 민수형. 돌아와. 지금 장난치는 거지? 나 그냥 언더그라운드에서 친구랑 밴드 잘 하고 있는데 형이 꼬신 거잖아. 나 조용필 만들어 준다면서? 형이 조용필 저리가라로 만들어 준다고 그랬잖아. 근데 이게 뭐야? 천문대에서 별 볼 때 형이 그랬지? 자기 혼자 빛나는 별은 없다고. 와서 좀 비쳐주라, 응? 나도 반짝반짝 광 좀 내 보자. 형 내말 듣고 있어? 듣고 있으면 돌아와." 영화 [라디오 스타]의 클라이맥스 장면입니다.
ECM을 상징하는 피아니스트를 꼽으라고 한다면 100명 중 99명은 Keith Jarrett을 꼽을 겁니다. 재즈와 클래식을 넘나들며 전혀 다른 감성과 터치로 두 분야 모두에서 일가를 이룬 아티스트죠. 하지만 위의 영화 대사처럼 그를 비쳐주는 별 중에는 Jack DeJohnette과 Gary Peacock이라는 별이 있었죠.

물론 그 전에도 그를 비쳐주는 별은 있었습니다. 미국에서 쿼텟 활동을 할 때에는 Charlie Haden, Paul Motian, Dewey Redman이 그들이었고, 유럽에서 쿼텟 활동을 할 때에는 Jan Garbarek, Palle Danielsson, Jon Christensen인 그들이었죠. 하지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Keith Jarrett의 재즈 앨범을 이야기할 때에는 앞의 쿼텟 활동보다는 트리오 활동 시절의 앨범을 이야기합니다. 1983년 이후로 쭉 이어진 Keith Jarrett 트리오 시절의 앨범 중에 좋은 앨범이 많았기 때문이죠. 오늘은 Keith Jarrett을 비추던 별이었다가 진짜 별이 된 Gary Peacock의 이야기입니다.
Gary Peacock이라는 인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Keith Jarrett 트리오의 [Tribute] 앨범을 들으면서부터였습니다. 트리오 앨범이면서도 튀지 않으면서 피아노의 빈 부분을 채워주는, 그러면서도 재즈에서 베이스의 역할인 드럼과 멜로디 악기 사이의 가교역할을 완벽히 수행하는, 그것도 라이브 연주에서 그런 연주를 하는 걸 듣고 큰 충격을 받게 되었죠.

물론 베이스라고 메인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재즈 베이스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Jaco Pastorius는 베이스라는 파트도 메인 멜로디를 연주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고, 지금도 왕성한 활동 중인 Marcus Miller 같은 베이시스트는 그런 메인 멜로디 악기로서의 베이스의 역할을 확고히 한 인물이죠. 이런 베이스 기타뿐만이 아니라 콘트라베이스를 연주하는 이들 중에도 Charles Mingus나 Paul Chambers부터 시작해서 Stanley Clarke을 거쳐 Charlie Haden과 Gary Peacock까지 수많은 베이시스트가 이름을 남기고 있죠.
하지만 베이스라는 악기 자체의 역할이 리듬 파트와 멜로디 파트의 가교 역할이고, 태생적으로 음역대가 낮고 볼륨도 작아 두드러지기 힘든 파트 역시 베이스인데요. 그렇기에 베이스, 그중에서도 콘트라베이스는 자신의 앨범이 명반이 되기보다는 사이드맨으로 참여한 앨범이 명반이 되는 경우가 많았죠. 그 대표적인 예가 Paul Chambers인데요. [Bass On Top]이라는 명반을 내기도 했지만 그의 디스코그래피에는 Miles Davis의 [Kind Of Blue]나 John Coltrane의 [Blue Train] 같은 앨범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Gary Peacock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Ralph Towner와 함께 한 [Oracle] 같은 앨범을 들어보면 정말 완벽한 솔로이스트의 연주를 합니다. Charlie Haden과 Pat Metheny가 함께한 [Beyond The Missoury Sky]앨범처럼 콘트라베이스와 기타의 완벽한 조화라는 게 어떤 건지 들려주는 앨범이죠.

AlbumGary Peacock, Ralph Towner [Ora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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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ya Ga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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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utter Step Flutter St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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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Hat And Cane Hat And Cane
하지만 Gary Peacock이 빛날 때에는 역시 Keith Jarrett의 옆에서 연주를 할 때입니다. 사실 이 트리오에서의 콘트라베이스의 역할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멜로디 악기(트리오 구성에서 대부분은 피아노. 필자 주)가 홀로 멜로디를 담당해야 하기 때문에 중간중간 멜로디 파트를 연주해야 하지만 그 정도가 문제죠. 너무 파트가 적으면 존재감이 없어지고, 너무 많은 파트를 연주하려고 하면 음악이 부산해집니다. 게다가 리듬 파트와 멜로디 파트를 왔다 갔다 하는 악기이기 때문에 음악의 흐름이 깨질 수도 있고요. 그래서 그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그 지점을 찾는 게 트리오에서 베이시스트의 역할입니다.
제가 제작과 프로듀싱을 했던 유러피안 재즈 트리오의 [서촌] 앨범을 녹음할 때의 일이었습니다. 녹음 전에 리허설을 하는데 아무리 들어봐도 콘트라베이스에서 위화감이 느껴집니다. 좀 더 들어보니 튜닝이 안 맞는 것 같은 느낌이더군요. 그러니까 A음이 440㎐가 아니라 그보다 조금 낮은 느낌? 그러니까 디지털 튜너로는 크게 문제될 것 없게 나오지만 일렉 기타 튜닝하듯이 하모닉스 튜닝법으로 튜닝하면 소리가 약간 갈라지는 정도, 한 마디로 정리하면 굳이 따지자면 문제될 정도는 아니지만 정확한 소리는 아닌 그런 수준. 왜 그렇게 튜닝을 했냐고 물으니 그래야 콘트라베이스의 부드러운 타격음이 잘 표현된다면서 이게 자기네 사운드의 시그니처라고, 절대 정튜닝을 할 수 없다고 하더군요. 결국 현이 프렛에 닿을 때 나는 불필요한 울림을 없애기 위해 박상훈 엔지니어가 무척 고생을 했었습니다.

물론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아닙니다. 자기도 본국에서는 대학교수이고 프로페셔널 연주인이니 자신도 부각되고 싶었겠죠. 하지만 그 때 재즈에서, 그리고 트리오 구성에서 콘트라베이스의 역할과 그 범위를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가장 완벽하게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던 베이시스트가 바로 Gary Peacock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Changeless] 앨범이나 스탠더드 시리즈는 "재즈 트리오"와 "완벽"이라는 단어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Keith Jarrett 트리오를 스탠더드 트리오라고 부를 정도였으니까요.
솔로이스트로서도, 사이드맨으로서도 완벽했던, Keith Jarrett을 비추던 별은 하늘의 별이 되었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한지훈

오디오 칼럼니스트 한지훈이 소개하는 흥미진진한 Hi-Fi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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