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와 함께하는 바오로딸 책읽기 <은총>
2020-12-08 16:36:47 | 박종인 신부(예수회) | 서강대학교 인성교육센터 소장
“헨 hen 이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근본적인 마음을 가리키는 반면, 헤세드 hesed 는 그 사랑의 구체적인 행동들을 표현”한다. “헨이 하느님이 지니신 우리에 대한 근본적인 성향과 마음이라면, 헤세드는 근본적인 성향 때문에 나오는 구체적인 행위를 가리킨다.” “은총”이라는 신학적 개념을 그 어원 적인 설명에서 시작해서 쉽게 설명해 주는 책을 만났다. 신학대학원에서 수학 했던 형제 수사들이 최현순 선생을 좋아했던 이유가 이런 데 있었음을 확인했다. 어렵지 않은 단어와 저자의 경험과 성찰도 편안하다.
나의 부족함을 메워 구원에 이르려면 선행과 공덕을 쌓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믿고 지내왔는데 결국 그런 기특한 생각을 하고 실천을 하는 것도 모두 은총의 산물이란 것을 알았다.
내가 싫으면 구원을 사양할 수 있는 존재가 인간이라지만 자기 힘으로 구원에 이를 수 없는 존재도 인간이다. 신학... 어렵다고만 생각하는 이들에게 교리와 신학 입문서로도 좋겠다.
[인터뷰] 최현순 교수 "거저 주어지는 ‘은총’, 하느님 시선 놓치면 발견할 수 없어" [인터뷰] 최현순 교수 "거저 주어지는 ‘은총’, 하
2020-08-13 18:20:23 | 윤재선 기자(leoyun@cpbc.co.kr) | cpbc(가톨릭평화방송, 평화신문)
○ 방송 : cpbc 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 진행 : 윤재선 앵커
○ 출연 : 최현순 데레사 / 서강대 교수, 신간 <은총> 저자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와 세상을 돌보시는 하느님의 모든 활동이 ‘은총’
은총은 ‘하느님 당신 자신’이자 ‘늘 함께하시는 모습’ 자체
각자의 삶 안에서 하느님의 시선 놓치지 말아야
은총의 가장 근본은 ‘거저 줌’, 즉 선의, 호의, 총애, 사랑
은총의 결과로 주어지는 게 은사, ‘카리스마’
[인터뷰 전문]
많은 신앙인들이 하느님의 은총을 바라죠, 그런데 은총이란 뭘까요?
신앙인들의 눈높이에서 은총의 의미와 교회의 가르침을 쉽게 풀어준 책이 나왔습니다.
책 이름이 <은총>인데요.
저자인 서강대 전인교육원 최현순 데레사 교수 연결해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교수님,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신앙인이라면 누구나 저도 그렇고 하느님의 은총을 간구하지 않습니까? 신학자인 교수님도 마찬가지시죠?
▶그렇겠죠?
▷하느님은 모든 인간을 사랑하시니까 은총도 똑같이 이렇게 주시는데 어떤 분들에겐 왜 꽃길인생만 주는 거냐,
어떤 분들은 가시밭길 인생만 주는 거냐. 이렇게 생각하고 반문하는 신앙인들도 계실 것 같고. 처음부터 공평한 게 아닙니까?
아니면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게 달라서 그렇습니까?
▶글쎄요. 사실 공평이라는 말부터 생각해 볼 부분이기는 해요. 우리가 피자가 있을 때 그거를 N분의1로 나누는 게 공평한 건지 아니면
배고픈 사람에게 더 주고 덜 배고픈 사람에게는 덜 주고 이게 공평한 건지 이것도 사실 철학 안에서는 의견이 갈리기도 합니다.
저희가 생각해야 될 게 사실 사람들이 정말 많이 다르잖아요. 처한 환경이나 여건. 능력도 생각도다 다르고.
그런데 이렇게 달라지는 데는 물론 그 사람의 근본적인 성향이나 외모나 능력이나 이런 것도 작용을 하겠지만 상황도 작용을 하죠.
그래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을 만나는지 어떤 환경에 처해 있는지에 따라서 그 사람 인생길도 달라지는데 이러한 환경 중에는 좋은 것도 있지만
사실은 안 좋은 것도 있죠. 그래서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이 꼭 그 사람만의 잘못인 것만도 아니고 또 다른 사람들의 잘못만인 것도 아니고
이런 상황에서 저희는 은총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와서 질문을 하게 되는 거기도 한데요. 문제는 뭐냐 하면 결국 각 사람들의 인생길이 왜 그렇게 다른가.
이런 원인을 한마디로 규정하기는 어렵다는 거죠.
모든 것이 하느님 탓인 것은 아니거든요. 그래서 중요한 거는 우리가 은총이라는 걸 이야기할 때 보려고 하는 거는 하느님이 우리를 보고 계시고 또 붙들고 계시다는 거죠.
이렇게 하느님의 시선을 놓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바오로 사도가 말씀하신 것처럼 모든 일이 서로 작용해서 좋은 결과를 낸다는 말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교수님께서도 유학 시절 은총에 대해 잘못 알았던 게 풀리면서 해방감을 체험했다. 이런 말씀을 하신 거로 압니다.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건 뭡니까?
▶아마 저도 그때 신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전이었었기 때문인 것 같은데 보통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던 은총에 대한 생각을 저도 했던 거겠죠. 따뜻하고 좋고
사람들이 보통 ‘복’이라고 이야기하는 것, ‘축복’이라고 이야기하는 것, 이런 것을 은총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건데.
▷그런 게 오해가 좀 있는 겁니까?
▶그렇죠.
▷어떤 면에서요.
▶이런 개념 자체가 틀린 거는 아니에요. 문제는 뭐냐 하면 이것만이 은총인 건 아니거든요. 그리고 우리 삶이 이렇게 좋은 것만 있는 건 아니고 어둡고 힘든 부분이 분명히 있잖아요.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는 우리가 ‘은총이 어디 있는 거지.’ ‘하느님은 나한테 왜 은총을 안 주시지.’ 이렇게 생각을 하게 되잖아요. 이렇게 생각하게 되면 더 힘들어지는 거죠.
‘하느님은 왜 나를 사랑하지 않으실까.’ 이게 은총에 대해서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갖고 있는 생각을 저도 가졌고 그것 때문에 더 힘들어했던 건데 은총에 대한 것을 배우면서 그 부분이 풀렸던 거죠.
▷신자들의 눈높이에서 은총이 뭔지 또 신앙 안에서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알려주고 싶은 그런 취지에서 아마 <은총>이란 책을 쓰신 게 아닐까 싶은데 제 생각이 맞습니까? ,
교수님, 은총이란 한마디로 뭘까요.
▶은총은 한마디로 정의하는 건 쉽지가 않아요. 왜냐하면 제가 책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은총에 대한 이해가 성경에서 부터 시작해서 계속 발전돼 나아가거든요.
가장 근본적인 건 성경 안에 있지만 그래도 학문적으로 은총이 뭐냐고 질문하신다면 아마도 하느님 자신, 또는 우리와 세상을 돌보시는 하느님의 모든 활동이 바로 은총일 겁니다.
그런데 이걸 구체적으로 나에게 ‘은총이 뭐야.’라고 질문하셨을 때는 그거는 이제 각자의 삶 안에서 찾아야 하는 답일 겁니다. 구체적으로.
왜냐하면 각 사람 안에서 하느님이 각기 다르게 활동하실 것이기 때문에요.
▷우리가 신학의 한 부분으로서 은총론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이게 신학의 한 분야로 파고 들면 한없이 어렵다고들 하시던데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일반 신자들이 은총을 제대로 받아들이기 위해서 어느 정도까지 알고 이해하는 게 필요하다고 보세요.
▶어느 정도까지 라는 게 저는 가능한지 잘 모르겠어요. 왜냐하면 안다는 게 저희가 학문적으로 아는 게 아니라 저희가 은총을 안다는 건 사실 우리의 삶에서의 깨달음이잖아요.
이거는 사실우리가 계속해서 더 깊이 알아들어야 할 부분인 거죠. 왜냐하면 하느님은 어느 순간에만 나한테 말씀하시고 활동하시는 것이 아니라
내 삶 전체 안에서 활동하신다고 한다면 그 깊이를 아는 것은 사실은 계속해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일 겁니다.
다만 그런 것이 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가톨릭교회가 무엇을 은총이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인지 기본적인 전망을 갖는 것은 필요해 보이는 거죠.
그렇게 했을 때 잘 모르기 때문에 나를 억압하거나 나를 괴롭히거나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아요.
▷앞서 성경에도 은총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는 말씀 언급하셨는데 딱 떠오르는 게 ‘은총이 가득하신 이여’라는 성모 마리아님에 관한 건데요.
성경에서 말하는 은총, 자비의 은총도 있고 치유의 은총도 있고 하잖아요. 성경에서 말하는 은총이라는 게 뭡니까?
▶기본적으로 구약성경이나 신약성경에서 은총을 이야기할 때는 하느님의 자신 또는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마음, 우리를 바라보는
그 사랑 가득한 시선 그래서 우리와 세상을 위해서 일하신 하느님의 활동이 은총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 거예요. 조금 전에 여러 가지 은총 종류 말씀하셨잖아요.
사실 여러 가지 은총이 있는 게 아니거든요. 은총 슈퍼마켓에서 하느님이 그때그때 필요한 은총 골라주시는 게 아니라는 거죠.
하느님의 은총은 하느님 당신 자신이고 우리와 함께 하시는 그 모습일 텐데 다만 우리가 체험할 때 어느 한 측면이 부각돼서 체험될 수 있고
그러한 측면들을 표현하는 방법이 성화은총, 협력은총 이런 은총이라는 말일 거예요. 그래서 이런 은총에 대한 종류를 마치 여러 개의 은총이 있는 것처럼 보시면 그거는 안 될 것 같아요.
▷갑자기 드는 질문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뜻대로 살지 않는 분들에게도 하느님께서는 은총을 거저 주시는 것 같은데, 이게 은총의 본질적인 의미라고 봐야 합니까?
▶네, 은총의 가장 근본적인 의미는 아까 하느님의 자신이라고 이야기했잖아요. 그리고 은총의 가장 근본적인 것은 거저주신 거. 선의, 호의, 총애, 사랑이거든요.
삶의 고통마저도… 하느님 은총?
2020-08-10 15:18:18 | 이지혜 기자 | 가톨릭평화신문
“신자들은 은총을 좋은 것이라고 오해합니다. 부드럽고 따뜻하고 안락하고 나한테 좋은 것이라고 여기죠. 보호해주시고 위로해주시고, 그래서 사업이 잘되고 건강해지는 거요. 은총을 ‘복덩어리’라고 생각하면 고통 중에는 은총이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평신도 신학자 최현순(데레사, 서강대 전인교육원) 교수가 첫 책 「은총」(바오로딸)을 냈다. 하느님이 주신 은총과 인간의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과 행동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는지 고찰했다.
“은총을 하느님이 주시는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왜 하느님은 어떤 사람에게는 은총을 ‘가득히’ 주시고, 어떤 사람에게는 ‘인색하게’, 아니 때로는 ‘전혀’ 주시지 않을까요?”
최 교수는 신자들에게 은총이란 무엇이며, 삶의 여정 안에서 고통을 겪고 있더라도 여전히 하느님의 은총 안에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 책을 냈다. 그는 이탈리아 로마 교황청립 그레고리오대학교에서 교의신학으로 석사를, 제1, 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론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로마에서 은총론 수업을 듣고 시험공부를 하는데 심장이 터질 것 같아 옥상으로 올라가 뛰어다녔어요. 은총을 잘못 알았기 때문에 그걸로 내가 옥죄고 있었구나 했죠. 은총에 대해 잘못 알았던 것이 풀리면서 해방감을 체험했어요.”
그는 최근 몇 년간 예수회센터를 비롯한 여러 수도원에서 은총론 강의를 했다. 강의할 때마다 “은총에 대해 잘못 알고 있었다, 삶을 기쁘게 살게 됐다”는 피드백을 신자와 수도자들에게 받았다.
최 교수는 은총을 이해하는 신앙 여정에서 ‘나는 은총을 받을 자격이 있다’, ‘내가 열심히 기도했더니 하느님이 이런 은총을 주셨다’는 식의 사고를 버리라고 조언한다. 스스로 무엇인가를 해서 은총을 벌어들인다고 생각하는 것은 일상에서 정당한 보상을 받는 것에 익숙해 있기 때문이다. 부모 자녀와의 관계를 생각하면 하느님의 은총을 이해하기가 쉽다.
“엄마가 청소를 하는데, 아이가 자기도 하겠다고 나선다. 아이가 한다고 하는 것이 지극히 보잘것없지만 그래도 엄마는 빗자루를 들고 다니는 아이를 보면서 아이를 더욱 사랑스럽게 바라본다. 그렇지만 아이가 청소를 했기 때문에 엄마가 아이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물론 아이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45쪽)
최 교수는 성경에 나타난 은총을 살폈다. 역사적으로 은총의 이해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구약에 나오는 ‘헨’과 ‘헤세드’, 신약에 나오는 ‘카리스’의 의미를 소개했다. 하느님의 은총과 인간의 자유의지가 이루는 아름다운 여정이 하느님을 향한 우리의 여정이라고 끝을 맺었다.
“은총론을 공부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내 삶의 체험과 사건들을 하느님 안에서 보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제쳐놓고 보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상황에서 하느님이 무엇을 알려주려고 하시는지 보면 우리는 여전히 은총 안에 있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