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론화장 나온 '의사조력자살법'…찬반 입장차 재확인

기사등록 2022/08/24 14:47:43

24일 의사조력자살법 논의 토론회 열려

종교계·의료계·시민사회단체·정부 등 참석

"환자 자기결정권 존중"vs"생명경시 만연"

[서울=뉴시스] '조력존엄사 토론회'가 24일 종교계, 의료계, 시민사회단체, 정부 등이 모인 가운데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열렸다. (사진= 백영미 기자) 2022.08.24
[서울=뉴시스] '조력존엄사 토론회'가 24일 종교계, 의료계, 시민사회단체, 정부 등이 모인 가운데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열렸다. (사진= 백영미 기자) 2022.08.24
[서울=뉴시스] 백영미 기자 = 수용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는 말기 환자가 원하면 의사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삶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하는 '조력존엄사(의사조력자살)' 합법화를 두고 찬성 측과 반대 측이 한 자리에 모여 토론하는 장이 열렸지만 입장차만 재확인했다.

'조력존엄사 토론회'가 24일 종교계, 의료계, 시민사회단체, 정부 등이 모인 가운데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열렸다.

발제자로 나선 윤영호 서울대 의대 가정의학과 교수는 "조력존엄사 입법화 추진은 웰다잉(품위있는 죽음)을 위한 사회적 논의의 기회"라면서 "웰다잉을 위한 최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해결되지 않는 고통을 감당해야 하는 말기 환자의 남은 삶을 결정하고자 하는 자발적이고 합리적이며 진정성있는 선택(자기 결정권)을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김현섭 서울대 철학과 교수는 "말기 환자가 수용하기 어려운 고통은 주관적인데 명확한 기준을 마련할 수 있느냐"면서 "자기 결정권을 말기 환자에게 한정해야 하는 근거를 찾기도 쉽지 않다"고 반박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종교계는 의사조력자살 합법화를 강력히 반대한다는 입장을 재차 밝혔다. 생명은 개인적·사회적으로 가장 근본이 되는 가치인 만큼 국회와 정부가 말기 환자 돌봄 정책과 시스템을 정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은호 천주교 서울대교구 가톨릭생명윤리연구소장은 "조력 존엄사법과 관련해 강조되는 자기 결정권 역시 살아있는 사람의 권리라는 점에서 생명권은 2012년 헌법재판소가 밝힌 것처럼 '기본권 중의 기본권'"이라고 말했다. 이어 "견딜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리는 환자의 자기 결정권 존중이라는 표현도 모순적"이라면서 "견딜 수 없는 고통에 시달려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면 그 선택은 이미 자유로운 선택일 수 없다"고 덧붙였다.

박 소장은 생명경시 풍조 확산 등 부작용도 의사조력자살 합법화를 반대하는 근거로 제시했다. 그는 "조력존엄사법이라는 이름으로 의사조력자살을 합법화하는 것은 자살을 포장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의사조력자살이 합법화된 미국의 한 주에서 생애 말기 돌봄을 위한 의료보험이 거부된 사례를 예로 들면서 "의사조력자살이 합법화된 이후 의료보험 회사는 호스피스 완화의료와 같은 비용이 많이 드는 서비스보다 자살을 위한 약품 구입 비용 보장을 선호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의사조력자살법과 관련된 다양한 여론 조사 결과도 단순한 수치가 아닌 답변에 담긴 의미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최근 한국 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에서 시행한 설문조사에서 존엄한 죽음을 위한 정부와 국회의 정책 우선순위를 물었더니 가장 중요한 것으로 지적된 것은 ‘간병 부담을 줄일수 있는 지원체계 마련’이었다"면서 "국회와 정부는 말기 환자와 가족들이 시간을 의미있게 지낼 수 있도록 지지하는 정책과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료계는 회복 불가능한 환자가 임종 방식과 시기를 선택할 권리를 존중해야 하지만, 이런 환자의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우선 필요하고 의료현장도 준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대한의사협회 등은 의사조력자살법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부족한 데다 생명경시 풍조 등이 확산할 우려가 있다며 합법화를 반대하고 있다.

고윤석 서울아산병원 내과 교수(한국의료윤리학회 전 회장)는 "사망이 초래될 수 있는 의료 상황에서 내린 환자의 자율적인 결정은 가치관의 총체적 반영으로 당연히 존중돼야 한다"면서 "회복이 되지 않는 질병을 가진 환자의 감내할 수 없는 고통에 대한 해결 방안도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진정제 주입 등 '종말기 진정'만으로는 고통이 해결되지 않는 말기 환자들이 있는데, 이조차도 의료계에서 잘 수용되고 있지 않아 이런 말기 환자들을 위한 사회 제도나 의료 지원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고 교수는 다만 "절차에 대해 사회가 합의하려면 환자의 관점에서 본 자의임종(의사조력자살)에 대한 인식 및 욕구 조사와 감내할 수 없는 고통에 대한 사회적 인식 수준도 파악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2018년 2월부터 시행된 연명의료결정법과 별도로 의사조력자살 합법화 여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지속해 나가되, 아직 의료현장에 안착되지 못한 연명의료결정법부터 보완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그는 "연명의료결정법에 따른 임종 돌봄도 현장에서 아직 제대로 자리잡지 못한 가운데, 조력존엄사에 대한 교육이나 접근 방식에 대한 준비는 의료인들조차 매우 부족하다"면서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의료와 법을 준비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말기환자들의 자의임종 권리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위한 논의를 지속하되 현행 연명의료결정법 보완이 우선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반면 법조계를 대표해 참석한 판사 출신 남준희 법무법인 온고을 대표변호사는 의사조력자살 합법화 반대 의견으로 제시되고 있는 생명경시 풍조 만연, 악용 및 남용 우려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그는 "여성의 자기결정권의 발현으로 임신중지권에 의한 낙태도 허용하고 있다"면서 "또 고통스런 방법으로 자살하는 말기 환자의 경우는 개인의 문제이고 조력존엄사를 제도화하는 것은 생명을 경시하는 것이냐"며 반문했다. 이어 "미성년자나 무연고자의 경우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지만, 조력존엄사법은 말기환자로 엄격히 제한하고 있고 존엄사 시행을 기다리다 생을 마감하는 경우가 더 많을 정도로 절차가 엄격하다"고 주장했다.

의사조력자살법 도입을 찬성하는 환자들을 대변해 토론에 나선 고현종 노년 유니온 사무처장은 "다른 사람의 고통을 말로는 이해할 수 있지만, 체감하기는 쉽지 않다"면서 "안규백 의원의 조력존엄사 법안 발의를 계기로 우리 사회가 내 신념과 반대된다는 이유로 배척하기 보다는 소수가 원한다고 해도 꼭 필요하다면 존중하고 수용하는 사회로 진전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시민사회단체는 의사조력자살 법제화에 앞서 사회적 인식과 교육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최영숙 대한웰다잉협회 회장은 "안락사가 허용됐을 때 나타날 수 있는 남용의 문제, 사회적·경제적 약자 보호 문제 등을 신중히 고려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라면서 "조력존엄사가 악용돼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법적인 제도 마련과 사회적 인식, 체계적·실질적인 교육이 우선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의사조력자살 합법화 논의에 앞서 말기 환자에 대한 사회적 돌봄체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성재경 보건복지부 생명윤리정책과장은 "조력존엄사에 대한 찬반의견이 대립하는 상황에서 존엄한 죽음을 위한 환자의 자기결정권과 생명존중의 원칙이 조화를 이루는 정책적 방향성에 대한 충분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면서 "조력존엄사 도입 논의에 앞서 생애 말기 돌봄을 위한 사회적 돌봄체계와 사회망 확대에 대한 논의가 우선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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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등록 2022/08/24 14:47:43 최초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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