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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춘추] 5월엔 ‘차별금지법’ 통과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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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춘추] 5월엔 ‘차별금지법’ 통과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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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희 인권교육온다 활동가

“엄마, 나는 왜 슬픈 날에 태어났을까.”

지난 4월16일 아홉 번째 생일을 맞은 아이가 잠자리에 들기 전에 조용히 물었다. 아이가 언젠가 던질거라 예상했던 질문이다. 그럴 때마다 머릿속에 떠올린 답은 성실히 살자는 이상한 결론이었는데 정작 현실이 되니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홉 번째 5월5일을 맞으며 304명의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아마 지금쯤 청년일 그들은 얼마 남지 않은 어버이날에 엄마나 아빠에게 무슨 선물을 할까 고민하거나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친구들과 주고받을 수도 있겠다. 가족과 함께 갔던 놀이동산의 추억을 떠올리거나 홀로 외로웠던 기억을 되새기고 있을지 모른다. 보물과 웬수사이를 오가던 자녀의 어린시절을 추억하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어버이의 은혜는 여전히 하늘 같다.

세월호는 시민이라는 감각조차 없던 나에게 생명의 무거움을 알게 해줬다. 아픈 감각은 어느새 흐릿해졌지만 노란 리본은 선명하게 달랑거린다. 하루에 꼭 한번은 작은 리본을 만난다. 여전히 누군가 그 리본을 만든다. 누군가는 나누고, 누군가는 가방에 단다. 기억하기 위해 애를 쓴 보이지 않는 손길 덕에 이제 노란 리본을 보고 이게 무엇인지 묻는 사람을 만나기는 어렵다.

세월호 이후 삶에도 사각지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다양한 산재사고로 무고하게 생명을 잃은 사람들과 중대재해법 통과 이후에도 일터의 안전망에서 밀려난 사람들은 여전하다. 지난 4월7일에는 서울지하철 양천향교역에서 50대 장애인이 에스컬레이터에서 추락해 목숨을 잃었다. 청년 정치인으로 대표되는 국회의원은 장애인이 가지 말아야 할 곳을 가서 사고를 당했다고 입장을 표명했다. 그와 같은 정치적 입장을 가진 이들은 개인의 과실로 돌리며 사건을 덮어버리려고 하지만 진실은 감출 수 없다.

지난해 10월12일부터 인권활동가 미류와 이종걸은 ‘평등길1110’이란 이름으로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며 부산에서 여의도 국회까지 30일 동안 걸었다. 국회의 미온적인 반응에 4월11일부터 그 둘은 곡기를 끊으며 현재 20일 넘게 단식 투쟁 중이다. 삶의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한 이들의 저항은 이젠 생명을 담보로 내놓는다. 상식적인 세상을 이루는 게 이토록 더디고 힘겨운 이유가 뭘까. 바짝 마른 얼굴로 활짝 웃는 미류와 이종걸의 절절한 외침은 누군가에게는 숨겨진 희망이다. 모두가 안전한 세상이 될 수 있도록 이제 국회가 이들에게 응답할 일만 남았다.

정서희 인권교육온다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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