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금융기관 2021년 탈석탄 정책 성적표

2022-01-05 11:02:26 게재

100개사 중 97곳, 실효성 있는 정책 부재

67곳 탈석탄 선언만 … 30곳은 선언도 안해

연기금·정책금융기관, 민간보다 더 소극적

지난해 국내 금융기관이 앞다퉈 탈석탄 선언을 했지만 실효성 있는 정책을 수립한 곳은 단 3곳뿐이라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100개 금융기관 중 30곳은 아직 탈석탄 선언도 하지 않은 상황이며, 국민연금 등 연기금과 정책금융기관이 민간보다 더 소극적인 것으로 드러났다.

◆신규 투자 중단만 발표 = 기후솔루션은 4일 발표한 '국내 100대 금융기관 기후변화 정책 평가' 보고서에서 대다수 금융기관이 실효성 있는 기후변화 정책을 갖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분석 대상은 은행, 자산운용사, 증권사, 생명보험사, 손해보험사, 정책금융기관·연기금·공제회 등 6개 부문의 총 100개 금융기관이다. 자산 규모 등을 기준으로 부문별 주요 기관을 선정해, 해당 기관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 ESG보고서, 언론기사 등을 통합해 해당 기관의 공식적인 기후변화 정책을 취합했다.

분석 결과 지난해 탈석탄 선언을 한 기관은 70개사에 달한다. 하지만 이 중 67개 기관은 '신규 석탄발전 사업에 대한 투자 중단' 선언만 하고 실무적으로 투자 기조를 어떻게 바꿀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정책을 수립하거나 발표하지 않았다. 한수연 기후솔루션 연구원은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신규로 추진되는 석탄발전 사업은 한 곳도 없는 상황에 신규 석탄발전 사업 투자 중단 선언만으로는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며 "구체적인 탈석탄 기준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탈석탄 선언이 보여주기 식에 그치지 않으려면 △석탄 산업의 범위 △석탄 기업의 범위 △투자 배제 범위 등 3가지 기준에 따른 정책을 세워야 한다. 독일의 비영리 기관인 우르게발트가 마련한 리스트로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기준이다.

이에 따라 정책을 수립한 금융기관은 SC제일은행, 삼성화재, 미래에셋증권 등 3개 기관에 불과했다. 이들 기관은 매출·발전량 기준으로 석탄 기업을 정의하고 투자를 제한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2050년 탄소중립 정책 수립 16곳 = 자산 포트폴리오의 2050년 탄소중립 정책을 세운 기관 또한 100개 중 16개에 그쳤다. 이 중 구체적인 탄소 감축 계획을 제시한 곳은 스탠다드차타드 그룹(SC그룹)·신한금융지주·KB금융지주 산하 금융기관 11개로 조사됐다. 신한금융그룹은 2030년까지 자산 포트폴리오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9년 대비 38.6%, KB금융그룹은 33.3% 감축하겠다는 방침이다. SC그룹은 발전, 철강 등 특정 산업에 대한 탄소집약도 감축 목표만을 제시한 상태다.

국내 5대 금융지주 가운데 NH를 제외한 신한, KB, 우리, 하나는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목표로 설정했으나, 구체적인 2030년 자산 포트폴리오 감축목표를 세운 것은 신한금융그룹과 KB금융그룹뿐이었다. 신한금융그룹은 2030년까지 자산 포트폴리오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9년 대비 38.6%, KB금융그룹은 동년 대비 33.3% 감축하겠다는 방침이다. 하나금융그룹과 우리금융그룹은 구체적인 감축 목표를 수립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국민연금 기후변화 정책 유명무실 =정책금융기관과 연기금 등 공적 금융기관의 기후변화 정책은 민간 영역보다 소극적이다. 자산 포트폴리오상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하거나 구체적인 탄소 감축 계획을 수립한 기관은 한 곳도 없었다.

900조원이 넘는 기금 적립금으로 국내뿐 아니라 세계 금융시장에서도 큰 영향을 미치는 국민연금공단의 기후변화 정책 역시 유명무실한 상태다. 국민연금은 지난 5월 탈석탄 선언을 했지만, 신규 석탄발전 사업에 대한 프로젝트 파이낸싱(PF) 투자를 제한한다는 방침만 수립했을 뿐, 반년 넘게 구체적인 탈석탄 투자 기준을 발표하지 않고 있다.

한수연 연구원은 우"리나라 금융시장에서 공적 금융 탈석탄의 중요성은 매우 크다"며 "특히 국민연금기금의 압도적인 규모를 고려할 때 국민연금공단이 수립하는 탈석탄 및 기후변화 위험 관리 정책이 국내 금융시장에서 큰 영향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국민연금공단의 전향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영숙 기자 ky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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