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값 선결제 '미리내장부'
수원, 20여일 만에 7곳 운영
이웃·가게돕기 '일석이조'
응원 메시지도 이어져
▲ 익명의 기부자들이 미리 선결제 해둔 금액으로 취약계층이나 미취업 청년들이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음식기부가 늘고 있다. 수원시 북수동 성일칼국수집에 '미리내 장부'가 놓여 있다. /김철빈 기자 narodo@incheonilbo.com


“이웃이 돈 없어도 맘 편히 음식을 먹을 수 있고, 상인들은 장사할 수 있어서 좋죠.”


수원지역 마을을 중심으로 누군가 식당 등에 미리 금액을 달아놓으면, 아무나 와서 사용하는 신개념 '기부 문화'가 번져나가고 있다.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계층은 밥값 등 걱정을 덜 수 있고, 가게도 손님을 맞을 방법이 생겨 '일석이조'다. 코로나19로 위축된 지역에 훈훈함을 가져다준다.


22일 지역사회 공동체에 따르면 수원 매산동, 남창동, 남수동, 북수동, 지동, 광교동 등 일부 지역 소상공인들은 가게에 노란 색상의 장부를 두고 있다.


장부는 물건의 출납, 돈의 수지를 기록하는 책이지만 이 경우는 좀 다르다. 먼저 어느 독지가가 돈을 넣어뒀고, 아무나 쓸 수 있다. 미리 낸다는 의미의 일명 '미리내장부'다.


어려운 이웃이 언제든 무료로 식사 등을 할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다. 예로 밥 한 끼, 차 한 잔이 공짜다. 일반식당부터, 카페, 아이스크림, 문구점 등 다양한 업종이 있다.


방법은 주문 전 “미리내장부 쓰러 왔다”고 말한 뒤, 장부에 글만 적으면 끝이다. 응원 메시지를 담아도 되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홍보해도 된다.


지난 1일 한 곳을 시작으로 20여일 만에 7곳이 됐다. 5월1일부터는 수원지속가능발전협의회 차원으로 5곳이 추가 운영에 들어간다. 발상의 시작은 시 일부 공무원으로 알려졌다.


주영훈 시 시민소통기획관은 “민원을 응대하면서 소상공인들로부터 '너무 힘들다'는 이야기를 자주 접했다”며 “몇 명이 모여 일상 속 나눔을 실천하기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공무원들은 많게 100만원 사비를 털어 장부에 걸었다. 하지만 딱히 신분을 알리지는 않았다. 나중엔 “나도 장부에 적은 돈을 내놓겠다”는 일반인의 동참으로 이어졌다.


각 가게에 '행복 바이러스'가 퍼지고 있다. 장부를 둔 북수동 '성일칼국수'에는 최근까지 수십 명이 무료로 식사했다. 몇 천원도 내기 어려운 미취업 청년, 노인이 주였다.


사장 김도해(72)씨가 계산이 어려운 이웃에게 직접 권하기도 한다.


김씨는 “누군지 모를 기부자 덕에 손님이 찾아오고, 음식도 대접하니 좋다”며 “10년 동안 음식 봉사를 이어왔지만 이건 참 색다르다”고 덧붙였다.


인근 남수동 '설레다 아이스크림'에는 장부를 통한 '응원 메시지 릴레이'가 이어지고 있다. 각 페이지마다 “코로나로 어려운 소상공인들을 힘내세요” 등 글이 담겨있다.


직원 조예지(26·여)씨는 “코로나 때문에 자주 오던 청년 절반이 끊겼는데, 이 장부로 회복됐으면 한다”며 “작지만 큰 위로가 된다”고 말했다.


미리내장부 가게들은 공통으로 지역사회에 봉사를 실천해왔는데, 장부 내 금액이 전부 소진돼도 무료 제공은 멈추지 않겠다는 곳도 나타나고 있다.


수원지속가능발전협의회는 모금운동 등 확산 시도에 나섰다.


박종아 사무국장은 “이웃을 보살필 수 있고,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며 “5월1일~6월30일 간 시범 운영하면서 문화를 한층 강화할 방안을 찾고 있다”고 밝혔다.

 


/김현우 기자 kimhw@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