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바람 타고 다시 뜨는 비행선, 2025년엔 ‘친환경’ 하늘 유람

이정호 기자

영국 기업, 상용화 선언…힌덴부르크호 참사 80여년 만에 부활

수소보다 안전한 헬륨 가스로 동체 띄워 최장 5일간 비행 ‘거뜬’

‘수직이착륙’에 도심 인근서 승하차…CO2 배출량 적어 ‘친환경’

‘에어랜더10’ 시험비행 모습. 2025년 하이브리드 동력장치를 쓰는 좌석 100석 규모의 선체를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왼쪽 작은 사진은 ‘에어랜더10’의 객실 상상도.   HAV사 제공

‘에어랜더10’ 시험비행 모습. 2025년 하이브리드 동력장치를 쓰는 좌석 100석 규모의 선체를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왼쪽 작은 사진은 ‘에어랜더10’의 객실 상상도. HAV사 제공

1937년 5월6일, 한 대형 비행선이 미국 뉴저지주의 레이크허스트 비행장 상공에서 지상으로 천천히 접근한다. 프랑크푸르트를 출발해 대서양을 건너온 독일 비행선 힌덴부르크호였다. 그런데 일상적인 착륙으로만 보였던 이 순간은 지옥으로 변한다. 비행선에서 갑자기 화염이 치솟으며 순식간에 대형 폭발이 일어난 것이다. 힌덴부르크호는 불덩이가 된 채 지상으로 추락했고, 탑승자 97명 가운데 35명이 사망했다. 끔찍한 폭발 장면은 현지 언론에 그대로 촬영됐고, 지금도 동영상 공유 웹사이트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당시 화재가 커진 건 공중에 뜨기 위해 동체에 채운 가연성 기체인 수소에 불이 붙었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이 참사 이후 비행선을 통한 수송 시대는 막을 내렸다.

■ “탄소 배출 90% 감소”

그런데 힌덴부르크호 참사 80여년 만에 비행선이 부활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주 영국 기업 ‘하이브리드에어비히클스(HAV)’는 2025년 자사가 제작한 비행선 ‘에어랜더10’의 상용화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에어랜더10은 일단 엄청난 덩치로 시선을 빼앗는다. 길이가 92m로, 보잉747 제트기보다 약 20m 길다. 높이는 아파트 9층에 달하는 26m다. 하지만 에어랜더10이 진짜 주목받는 이유는 따로 있다. 이동 시 탄소를 적게 내뿜어서다. 제조사인 HAV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비슷한 수송 능력을 지닌 비행기보다 90% 적다”고 밝혔다.

탄소 배출량이 적은 이유는 간단하다. 에어랜더10은 공중에 떠 있기 위해 부력(浮力)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공기보다 가벼운 헬륨가스를 풍선처럼 생긴 동체에 채운다.

이창진 건국대 항공우주정보시스템공학과 교수는 “부력은 물리적인 의미에서 밀도 차이 때문에 생긴다”며 “헬륨은 가격은 비싸지만 폭발하지 않는 안전한 성질도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비행기는 공중에 머물기 위해 부력이 아닌 양력(揚力)을 쓴다. 양력을 얻으려면 엔진을 끊임없이 돌려 하늘에서 전방을 향해 날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비행기는 떨어진다. 엔진에는 화석연료인 석유가 들어간다. 태생적으로 비행선이 비행기보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적은 이유다.

■ 동력장치 절반 ‘전기모터’

에어랜더10이 이산화탄소를 적게 배출하는 이유는 또 있다. 에어랜더10에는 추진력과 방향전환 능력을 얻기 위한 프로펠러 4개가 장착되는데, 여기에 친환경 동력장치가 활용된다. 프로펠러 4개 가운데 절반은 내연기관으로, 나머지 절반은 전기모터로 돌린다. 2030년에는 아예 모든 동력장치를 전기모터로 바꿔 탄소 배출을 제로로 만든다는 계획이다.

국제항공 탄소상쇄감축제도(CORSIA)에 따르면 2018년 기준으로 비행기가 차지하는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 비율은 2.4%이다. 언뜻 적어 보이지만 2037년까지 항공기 이용객은 지금보다 두 배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비행기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 비율이 치솟을 가능성이 크다. 비행선의 가치가 재평가될 공산도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 속도 느려도 ‘즐거운 여행’

문제는 느린 속도다. 에어랜더10의 최고 속도는 시속 130㎞다. 반면 여객용 제트기는 시속 700~1000㎞다. 속도 차이가 크다. 하지만 에어랜더10은 수직에 가깝게 이착륙할 수 있어 대규모 활주로가 필요 없다. 도심 가까운 곳에서 승객을 태우거나 내려줄 수 있다. 반면 비행기를 이용하려면 도시 외곽에 있기 마련인 공항까지 가야 한다. 총 여행시간에서는 큰 손해가 아닐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에어랜더10은 창문 크기와 개수를 극대화해 객실을 설계했다. 한 번 뜨면 5일간 하늘에 머물 수도 있다. 중저속 이동 수단이면서, 공중 유람선 역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에어랜더10을 비롯한 비행선에는 또 다른 기회가 열릴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비행기의 단거리 운항을 제한하는 문제가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 하원의회는 열차로 2시간30분 안에 닿을 거리의 항공 노선을 금지하는 법안을 지난달 통과시켰다. 법안의 취지는 기차 등을 이용하도록 장려하는 것이지만, 비행선이 새 역할을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HAV는 지난주 공식 설명자료를 통해 “에어랜더10에는 좌석을 최대 100석 설치할 수 있다”며 “탈탄소를 향한 미래에 적합한 교통수단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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