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민주주의 기폭제였다” 일본 언론인의 3·1운동 및 임정수립 100주년 평가

정용인 기자
일본공산당 기관지 <신문 아카하타>의 고기소 요지 편집장이 주간경향과 인터뷰하고 있다. / 우철훈 선임기자

일본공산당 기관지 <신문 아카하타>의 고기소 요지 편집장이 주간경향과 인터뷰하고 있다. / 우철훈 선임기자

[인터뷰] 방한한 <신문 아카하타> 고기소 요지 편집국장

“3·1운동과 한국의 임시정부 수립은 20세기 전쟁과 억압에 맞서 민주주의를 앞서 이끄는 사건이었습니다.”

일본공산당 기관지 <신문 아카하타>의 고기소 요지(小木曾陽司) 편집국장(65)은 3·1운동과 임정 수립 100주년의 의미를 이렇게 짚었다. 그러면서 “당시 일본 내에서도 3·1 독립운동에 앞장서고 2·8 독립선언을 주재한 유학생, 지식인 등과 교류가 진행되는 등 (일제의) 조선 통치 관련 비판도 활발했다”고 말했다.

<전쟁의 진실: 증언으로 본 일본의 아시아 침략> 한글판 출간에 맞춰 한국을 찾은 고기소 국장과의 인터뷰는 지난 2월 27일 <경향신문사>에서 진행됐다. 마침 그날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화제에 오르자 고기소 국장은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는 (북·미회담뿐 아니라) 북·일 정상회담 실현을 포함,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신문 아카하타>는 일간 20만부, 일요판 93만부를 발행하는 유력지다. 일본 지식인 사회에서는 “사실이 정말 궁금하면 <신문 아카하타>를 읽어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객관적 진실’을 추구하는 정론지다. 한·일 간에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는 과거사 문제에 대해서도 객관적인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 예컨대 징용공 판결과 관련해 일본의 모든 매체가 ‘국제법상 있을 수 없는 판단’이라는 아베 신조 총리의 발언이나 ‘양국관계의 법적 기반을 근본적으로 뒤엎는 폭거’라는 고노 외상의 발언에 동조했지만, <아카하타>만이 “지금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피해자의 구제이며, 일본 기업과 정부는 피해사실을 성실하게 직시하며 해결에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터뷰는 현장에서 주고받은 대화와 함께 사전에 주고받은 서면 인터뷰를 토대로 작성했다.


-올해는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라는 역사적인 해다. 당시는 일본의 식민지배가 이뤄지던 시기다. 이 두 사건의 역사적 의미를 어떻게 보고 있나.

“개인적 소회를 말씀드려도 될지 모르겠다. 굉장히 여러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20세기는 전쟁과 억압의 시기였다. 그런 시기에 조선 민중이 선도적으로 식민지배를 벗어나 민주주의라는 흐름을 이뤄나가는 큰 의미가 있었다. 일본에서도 1919년 3·1운동이나 중국의 5·4운동의 정치적 영향으로 노동자 전국조직이나 농민조합, 지식인 조직 등이 결성돼 사회 진보를 목표로 하는 운동이 확산됐다. 3·1운동에 앞서 2·8 독립선언을 이끌어낸 유학생·지식인들과 교류가 진행되는 등 조선통치 관련 비판도 활발해졌다. 일본의 양심세력도 일제의 침략과 식민지배 아래의 조선 민중과 연대하려면 역시 침략 반대와 독립을 내세우고, 이를 위해 싸우는 조선 민중의 투쟁을 지원할 수밖에 없었다. 조선 독립 요구의 정당성을 정면으로 논하는 정당과 언론은 일본공산당의 탄생과 <적기>(<신문 아카하타>의 전신) 창간 전까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조선 문제를 일본에서 정면으로 다루게 된 것은 일본공산당 창립으로 이어지는 움직임이 시작된 192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다.”


-인터뷰를 하고 있는 오늘(2월 27일) 베트남 하노이에서는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고 있다. 평화를 바라는 한국의 여론과 달리 일본 아베 정권은 경계하는 입장을 취하는 것으로 보인다.

“과거에 미국과 북한이 대립하고 있을 때 일본도 압력 일변도의 태도에 편승하고 있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그런 태도를 취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외면적으로 미국과 북한의 대화를 환영한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원래대로라면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일본이 해야 할 역할이 크다. 일본이 이니셔티브를 발휘해야 할 시기가 아닌가 생각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현재 한·일관계도 악화의 길을 걷고 있다. 당분간 양국관계의 경색이 계속될 것 같다. 향후 전망을 얘기해달라.

“일단 역사문제에 대한 정리가 한·일관계의 미래를 구축하는 토대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예를 들어 일제시대 징용공 문제와 관련해 한국 사법부가 일본 기업에 대해 개인청구권이 있다는 판결을 내렸는데, 이 역시 식민지배와 관련한 인권침해 문제다. 이와 관련해서는 피해자 명예를 어떻게 회복하게 할 수 있느냐를 최우선 과제로 생각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이런 문제를 전혀 다루지 않으면서 “이미 국가 간 합의로 다 해결되었는데 무슨 소리냐”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대부분 일본 언론도 이에 동조하면서 ‘한국이 괘씸하다’고 입을 모아 합창하고 있다. 일단 침략전쟁과 식민지배에 대한 반성이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생각한다. 배상과 관련해서 국가 간 이야기는 끝났더라도 개인의 청구권은 남아있으니 그 부분에 대한 해법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 일본공산당은 일본의 침략전쟁과 식민지 전쟁에 맞서 싸워온 단 하나의 정당으로, 역사 문제에 대해 성실한 태도를 취하는 것을 일본 외교의 방침으로 삼도록 거듭 촉구해왔다. 전후 70주년을 맞은 2015년에는 ‘화해와 우호’를 위해 일본 정부가 취할 기본자세로 다음 다섯 가지를 주장했다. 첫째, 무라야마·고노 담화의 핵심 내용을 계승하고 그 정신에 걸맞은 행동을 취한다. 둘째, 위안부 문제는 피해자에 대한 사죄와 배상 등 인간으로서의 존엄 회복을 도모한다. 셋째, 야스쿠니신사 참배는 하지 않는다. 넷째, 민족 차별을 부추기는 헤이트스피치를 근절한다. 다섯째 무라야마·고노 담화에서 표명한 과거 반성 입장을 교과서에 반영한다 등이다.”


-말씀하신 것에 개인적으로 동의한다. 문제는 그것이 일본에서 주류 여론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런 내용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노력이 필요할 것 같은데, 가능할까.

“결국 당위론이 아니냐, 실현 가능한 이야기냐는 지적인데 가능하다. 하나의 방안은 ‘시민야당연대’다. 올해 7월 참의원 선거가 있고 앞서 4월에는 지방선거가 치러진다. 자민당 등 여당은 이번 국회에서, 중의원은 물론 참의원에서도 헌법 개정 발의가 가능한 3분의 2 의석을 만들어 ‘폭정’을 하려 하고 있다. 시민야당연대로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이 ‘3분의 2체제’를 붕괴하고 더 나아가 과반을 무너뜨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실제 참의원 선거의 경우, 선거구당 1명을 뽑는 1인 선거구가 32곳 있는데 6년 전만 하더라도 자민당이 이 중 29곳을 차지해 압승했다. 하지만 3년 전에는 야당연대가 11석을 가져와 여당을 몰아붙인 적이 있다. 현재 일본 야당들은 당대표 회담을 통해 1인 선거구에서 후보단일화를 합의했고, 이를 위한 실무협의도 가속화하고 있다. 일본공산당은 이 연대가 ‘진정성 있는 연대’가 되도록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려되는 점은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본 사회가 우경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단순한 사회 분위기를 넘어 어떤 근본적인 정서와 연결된 것 같다. ‘언제까지 우리가 머리를 조아리고 사죄해야 하나’, ‘과거는 이제 그만 거론하고 미래의 친선을 이야기하자’와 같은 논리가 교묘하게 언론 기고나 논설을 통해 일반 시민의 시각에 흡수되는 것 같다. 재특회로 대표되는 헤이트스피치나 소위 ‘혐한 문제’도 심각해지고 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하나.

“말한 것처럼 일본에서는 재일교포 등을 배제하고 공격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시위나 집회가 열리기도 하고, 듣기에도 버거운 차별적인 표현, 욕설이 인터넷 등 일부 매스컴에 난무하고 있다. 헤이트스피치의 근절을 요구하는 당사자들과 우리를 비롯한 일본 양심세력들의 호소와 노력이 결실을 맺어 2016년 5월 헤이트스피치 해소법이 만들어졌다. 헤이트스피치의 근절을 위해서는 정부와 지자체, 일본 국민 모두가 힘을 합쳐 대응해야 한다. 특히 정부와 정치인의 책임이 중요하다. 헤이트스피치를 반복해온 단체나 ‘네오나치’ 등 극우세력이나 여당 간부의 ‘유착’이 과거 몇 차례 지적된 바 있고, 아베 정권의 각료를 맡은 적도 있다. 헤이트스피치나 ‘반한’, ‘혐한’ 정서가 국민들 사이에 축적되는 것은 식민지배에 대한 반성이 부족한 정권의 의도적인 발표, 보도 등이 큰 영향을 주고 있다. ‘반한 캠페인’으로 배외적 내셔널리즘을 부추기고, 자기들의 지지율을 높이려는 비열한 여론을 유도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대한(對韓) 강경자세에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많은 미디어가 동조해 ‘반(反)한국’에 가세하고 있다. 이러한 미디어의 존재 방식에 대해서도 한·일 양국의 화해와 우호, 동북아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 지금 어떤 태도가 필요한지, 엄중히 지적해나가는 일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번 방한의 계기가 <전쟁의 진실: 증언으로 본 일본의 아시아 침략> 한글판 출간으로 알고 있다. 지난해도 올해 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우리는 가해자입니다>를 한국에서 출간했다. 책 발간의 의의는 무엇인가.

“우리는 동북아시아에서 진정한 평화와 우호관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일본이 과거 침략전쟁과 식민지배라는 역사 문제에 성실한 태도를 취하는 것이 불가결한 토대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본의 침략전쟁과 식민지 지배’의 실태가 어떠한 것인지, 그에 따라 얼마나 조선 사람들을 비롯한 아시아인들을 괴롭혔는지, 일본 국민 자신이 가해까지 포함된 ‘전쟁의 진실’을 알고 계승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에 따라 <신문 아카하타> 차원에서도 역사의 진실, 증언의 발굴에 힘쓰면서 지면을 통한 캠페인을 실시해왔다. 그 최근 실적을 집대성한 것이 이 두 권의 책이다. 책이 한국에서 발간된 것은 특별한 의의가 있다. 이전 책(<우리는 가해자입니다>)에 대한 언론서평에서 “일본 정치인들의 망언에 분노하더라도 식민지배를 진심으로 반성하고 군국주의를 경계하는 양심적인 일본인이 적지 않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책을 통해 과거 일본에 침략전쟁과 식민지배에 반대한 정당이 있었고, 오늘날 일본 정계 내부에서 유력한 정당으로 성장해 있다는 것, 이 정당을 포함해 과거 역사를 성실히 직시하려는 조류가 확실한 존재감을 보이고 있다는 것을 한국의 여러분이 알아준다는 것 자체가 동북아, 한·일의 평화와 우호를 다지는 데 중요한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 몇 년간을 돌이켜보면 헌법개정에 반대하는 일본 평화세력 및 정당·시민들의 연대활동이 활발하게 벌어졌음에도 제도권에서는 자민당 우위가 더 굳건해졌다. 최근 노동통계 조작 논란이 벌어지고 있지만 아베노믹스 덕분에 취업활황이 가능해졌다는 평가도 있다. 아베가 개헌을 통해 군대를 보유할 수 있는 ‘보통국가’의 길을 가고 있다. 이를 어떻게 저지할 것인가.

“오늘날 일본 정치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은 아베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 정치가 강권과 거짓말, 은폐 등으로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어졌다는 점이다. 오키나와에서는 몇 번이나 미군 신기지 반대라는 민의가 표출되었지만, 매립건설공사를 강행했다. 이에 대한 분노가 일본을 넘어 세계로 확산되고 있지만 정부는 강경자세다. 아베 정권의 국정 사유화, 문서조작, 은폐가 일상다반사가 되면서 모럴헤저드 단계까지 이르렀다. 강권과 거짓말, 은폐로밖에 이 나라를 통치할 길이 없는 막다른 골목에 이른 것이다. 이 정권의 폭주를 허용하면 일본의 정치·사회, 나아가 아시아와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도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초래할 것이다. 아베 총리의 최대 야망은 헌법 9조를 개정해 일본을 ‘전쟁하는 나라=보통 국가’로 개조하는 데 있다. 이 야망을 용납할지 여부, 혹은 아베 정치에 결별을 고할지 여부가 올해 일본 정치의 최대 초점이 되고 있다. 앞서 거론한 올해 참의원 선거에 덧붙여 풀뿌리 운동을 거론하고 싶다. 우리는 풀뿌리로 아베 개헌을 반대하는 3000만 서명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이를 통해 압도적인 여론을 만들어 상대방이 감히 개헌 카드를 꺼내들지 못할 역학관계를 만들어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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