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신속 구제 ‘집단소송제’ 연내 통과될까

윤지원 기자

법 시행 땐 인보사 등 기업에 입증 책임 물어 공정성 확보

기업이 증거 훼손 땐 불이익…여권 내서는 “시간 걸릴 듯”

기업의 과실로 인해 피해를 입었더라도 민사소송을 거쳐 배상을 받는 길은 쉽지 않다. 소송이 무기한 연기되는 일이 빈번하다. 법무부가 지난달 입법예고한 집단소송제법 제정안에는 민사소송을 통해 피해자를 신속히 구제하는 장치가 담겼다. 올해 국회에서 이 법안이 통과될지 주목된다.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무릎 골관절염 치료제 인보사 피해자 900여명이 지난해 코오롱생명과학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은 1년여 동안 재판이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피해자 측이 변론기일 지정을 요구하는 기일신청서를 재판부에 거듭 제출했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300여명도 SK케미칼·애경 등을 상대로 2016년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뒤 4년째 기다리고 있다. 지난해 9월 두 번째 변론기일이 열린 뒤 추가 기일이 잡히지 않았다. 올초 라임펀드 판매사 대신증권을 상대로 불완전 판매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소송 등을 제기한 라임 피해자들도 검찰 수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이 사건들의 민사재판 진행이 더딘 것은 기업 측 책임을 가리기 위해서는 형사재판 결과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민사재판에서 손해 입증 책임은 전적으로 원고에 달려 있는데 원고가 손해를 입증해낼 방법은 많지 않다. 형사재판 결과가 나오기 전에 수사기록을 확보하는 일도 쉽지 않다. 인보사 피해자를 대리하는 엄태섭 변호사는 “코오롱그룹 임원에 대한 공소장이나 수사기록 열람 복사 신청 등이 거절되거나 보류됐다”고 말했다. 민사소송법에는 판사가 직접 피고 측 현장에 가서 입증 자료를 확인하는 ‘문서에 대한 현장검증 신청’ 제도가 있지만 잘 활용되지 않는다. 가습기살균제·세월호 참사 피해자 등을 대리하는 이정일 변호사는 “재판부가 검증에 소극적이거나 문서의 존재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에는 현장검증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지난달 법무부가 입법예고한 집단소송제법 제정안이 기업을 상대로 한 민사소송 판도를 바꿀 것으로 본다. 증권 분야에 한정된 집단소송제를 모든 분야로 넓히는 것이 골자인 이 법안에는 기업에 대한 자료 제출 명령 효력을 강화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소송 전 증거조사 절차’는 본 재판에 임하기 전 증거조사를 실시해 쌍방이 제출한 주요 증거를 토대로 쟁점을 파악할 수 있게 한다. 또 기업이 원고가 요구한 자료를 ‘없다’고 거짓말하거나 주요 증거를 훼손한 경우 기업에 불이익을 주는 내용도 담겼다.

라임 피해자를 대리하는 김정철 변호사는 “증거인멸 문제가 있는 라임 사건 등의 경우 현 제도에선 증거가 없으면 없다는 이유로 책임이 인정되지 않는다”며 “이 법이 도입되면 기업이 제출하지 않는 증거는 있는 것으로 간주하도록 해 유의미한 변화가 생긴다”고 말했다. 이정일 변호사는 “여러 증거가 초기에 파악되기 때문에 민사재판으로 검찰의 더딘 수사를 재촉할 수도 있게 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미 진행되는 민사재판에 이 법의 내용이 소급 적용되는 것은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집단소송제법 성안에 참여했던 명한석 전 법무부 상사법무과장은 “제정안은 이미 발생한 손해에 대한 구제 절차를 간단히 하는 내용의 절차법이기 때문에 소급 적용 금지 원칙이 적용될 수 없다”고 말했다.

여권 내에서는 집단소송제 제정안의 연내 처리가 어렵다는 관측이 나왔다. 참여연대는 지난 26일 기자회견을 통해 올해 처리를 촉구했다. 김주호 참여연대 사회경제팀장은 “대선 정국이 본격화하는 내년으로 넘어가면 법안 통과가 더 어렵다”며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개별 의원들이 발의한 집단소송제 법안이라도 먼저 통과돼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전국경제인연합회는 “30대 그룹을 기준으로 소송 비용이 최대 10조원 추가될 수 있다”며 집단소송제법 반대 의견을 지난 12일 정부에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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