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업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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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자일하게 일하자는 얘기가 유행을 넘어서 일 잘한다는 조직의 대세로 자리잡은지도 오래 됐다. 이제 어딜 가나 애자일을 말하고, 고관여 협업과 오버커뮤니케이션을 지향한다. (적어도 지향한다고 말은 한다.) 하지만 실제로 애자일하게 일하는 것과, 애자일하려고 애쓰는 것, 혹은 말로만 애자일을 지향하고 애자일하지 않는 것엔 큰 차이가 있다. 실제로 애자일한 조직과 애자일하다고 말만 하는 조직의 차이는 어디서 발생하는지, 즉, 협업이 잘 되는 조직이란 무엇인지 생각을 정리하고 내가 일하는 조직을 돌아볼 수 있는 작은 체크리스트를 정리해 봤다.

‘일 잘하는 조직’을 만들기 위해
내가 일하는 조직이 협업이 잘 되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정보의 흐름

말로만 애자일, 실제론 워터폴은 곤란

업무용 메신저를 사용 시 구성원들이 최대한 투명하게 정보를 공유받아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차이를 만들어내는 협업의 조건은 정보의 흐름이다. 조직의 구성원들이 최대한 투명하게 정보를 공유받고, 누가 어떤 일을 하는지, 내가 이 일을 해결하기 위해선 어떤 사람와 어떤 형태로 논의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는가? 조직에 정보가 잘 흐르도록 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물론 정보 병목은 회사가 급격하게 성장하면서 인원이 늘어나면 겪는 당연한 어려움 중 하나긴 하지만, 조직 문화와 시스템, 툴로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말로만 애자일하게 일하는 조직에서는 정보가 쉽게 돌지 않는다. 이 말인즉슨,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선 특정한 사람에게 의존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당연히 업무 효율성이 바닥을 친다. 정보가 쉽게 돌지 않는 현상은 업무 플로우가 워터폴에 가까울수록 쉽게 관찰할 수 있다.

특히 기획은 기획끼리, 개발은 개발끼리, 디자인은 디자인끼리… 와 같은 식으로 직군별로만 이야기하는 경우가 잦을수록, 혹은 리드는 리드끼리, 리드 위의 C레벨은 또 C레벨끼리… 처럼 직책별로 이야기하는 경우가 잦을수록 정보는 돌지 않는다. 애자일의 핵심은 다양한 능력치를 가진 사람들이 동일한 정보를 가지고 통일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한데 뭉쳐서 달려나가는 것이다. 정보의 흐름을 직군별로, 직책별로, 업무별로 통제하는 조직에서는 원론적인 수준에서 애자일이 불가능하다고 보는 게 맞다.

정보 병목의 징조는 업무용 메신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잔디을 예로 들어 생각해보자.

  • 비밀 대화방이 많을수록
  • 1:1 메시지(DM)가 많이 오갈수록
  • 공개된 토픽에서의 커뮤니케이션이 적을수록
  • 토픽에서 논의가 이뤄지기보단 누군가를 태그하고 이야기가 뚝 끊길수록

모두에게 공유되는 정보는 적다는 뜻이고, 이는 곧 정보 병목이 여기저기 자리하고 있음을 뜻한다. 일단 어떤 정보든 공유하고,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허들을 낮춰야만 서로가 서로의 일에 쉽게 관여할 수 있다.


 

상호 신뢰

그 사람은 최선을 다 하고 있다고 가정할 것

원격 및 유연 근무 시 구성원 간 ‘상호 신뢰’가 필요하다.

최근 재택이 일상화되면서 가장 중요해진 조건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원격근무와 유연근무를 도입하는 것만큼이나 원격근무 및 유연근무를 하는 시간에 동료가 최선을 다해 일하고 있다고 믿는 것은 협업의 핵심 중 핵심이다. 무조건적인 신뢰를 서로 가정해야만 원활하게 일할 수 있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리소스 낭비가 심하다. 재택근무를 하면서 근무시간 내내 화면공유를 시키거나, 카메라를 켜고 화상회의에 들어와 있도록 하는 등 (가상의 사례가 아니다. 실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감시를 당연시하는 관리 전략은 관리자의 리소스를 큼직하게 잡아먹는다. 둘째. 동료의 업무 의욕을 지대하게 꺾는다. 빡센 감시는 빡센 업무라는 결과로 이어질 것 같지만, 사실은 전혀 아니다. 빡센 감시는 최소한의 업무와 감시를 피해갈 방법을 궁리하는 시간으로 이어진다. 우리가 일을 왜 하는지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져 있다면 감시는 필요 없다. 최선의 결과를 내는 것. 이를 위해 내가 가진 시간을 적절히 분배해 쓰는 것. 이에 대한 동료의 자율성을 보장해야만 원격근무가 원격근무답게 돌아간다.

상호 불신의 징조 역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멀리 볼 것도 없이, 회사의 원격근무 자유도와 정책을 확인하면 된다.

  • 원격 및 유연근무가 존재하는가?
  • 원격 및 유연근무의 횟수가 제한되어 있는가?
  • 원격 및 유연근무시, 화면공유나 화상공유 등으로 근태를 공유해야 하는가?

등으로 조직이 구성원을 얼마나 신뢰하는지 짚어볼 수 있을 것이다.


 

오버커뮤니케이션

고요한 조직은 죽어가는 조직일 뿐

각자의 전문성을 존중하되 전문 분야가 아니어도 쉽게 의견을 낼 수 있는 분위기가 중요하다.

협업은 결국 토론의 연속이다. 꼬리에 꼬리를 문 의사결정을 어떻게든 해내야 하는데, 당연히 견해는 부딪힐 수밖에 없다. 이 부딪힘이 얼마나 자주, 어떻게, 왜 일어나는지는 조직의 건강함을 쉽게 판단할 수 있는 지표 중 하나다. 이 항목은 첫번째 항목인 정보의 흐름과도 긴밀하게 맞닿아있지만, 조금 다른 중점을 가진다. 정보가 완전에 가깝게 공유된다고 전제했을 때, 얼마나 편히 동료에게 말을 걸 수 있는지가 핵심이다. 다른 직군이라거나, 본인이 깊게 관여하고 있지 않은 프로젝트라는 이유만으로 아닌 것 같은 부분을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면 조기에 차단할 수 있는 이슈가 크게 번질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됐을 때, 아무도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다.

각자의 전문성을 존중하되 전문 분야가 아닌 일이라도 쉽게 대화를 시작하거나 끼어들 수 있어야 한다. ‘잘 모르는 동료’가 내가 잘 아는 분야에 끼어들어 대화를 전개하는 것은 얼핏 보면 업무 방해같겠지만 사실 잃을 것보다 얻을 것이 훨씬 많다. 첫째. 사안을 설명하고 공유하며 재점검할 수 있다. 둘째. 너무 해당 업무에 몰입해 있어 놓칠 수 있는 기본적인 사항을 재확인받을 수 있다. 셋째. 내가 하는 일을 동료가 더 잘 이해하게 되어, 다음 번에 비슷한 주제의 커뮤니케이션이 발생했을 때 드는 리소스를 줄일 수 있다. 이를 반복하다보면 서로의 일을 잘 이해하는 상태에서 원활히 소통할 수 있다. 협업의 이상적인 조건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이란 뜻이다. 우리 조직에서 오버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얼마나 활발한지는 다음과 같은 항목을 점검해 보면 알 수 있다.

  • 내가 업무를 담당하지 않은 잔디 토픽과 미팅에 참석할 수 있는가?
  • 논의에 끼어들어 의견을 냈을 때 달갑지 않다는 눈치를 받지는 않는가?
  • 내 업무가 아닌 도메인의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 제시할 수 있는가?
  • 내 업무가 아닌 도메인의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 어디/누구에게 제시해야 하는지 알고 있는가?

 

하나의 목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왜 하는지 알고 있나

구성원들이 동일한 목표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오버커뮤니케이션과 정보의 흐름이 상호 보완적인 조건인 것처럼, 상호 신뢰와 하나의 목표도 상호 보완적이다. 동료가 어떤 일을 잘 하고 있다고 믿으려면, 그 어떤 일이 우리의 목표와 어떻게 얽혀 있는지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구성원들이 동일한 목표를 가지고 있으면 훨씬 쉬워지는 일이다. 그래서 애자일과 OKR은 묶여 얘기될 수밖에 없다. 애자일하게 일하면서 OKR이 없으면 오가는 수많은 커뮤니케이션 사이에서 목표를 잊고 방향이 틀어져버릴 우려가 크고, OKR은 있으면서 애자일하게 일하지 않으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워크플로우를 실천할 수 없다.

권장하는 것은 OKR의 수립과 이에 따른 조직의 정렬이지만, 그것이 어렵다면 조직 구성원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비전을 수립하고 이것이 너무 동떨어져 있거나 너무 만만해 보이지 않도록 꾸준히 업데이트를 해야 한다.

  • 내가 속한 조직(스쿼드, 팀, 전체 조직 등 단위는 다양)의 OKR이 존재하는가?
  • 내가 속한 조직의 비전이 명확하게 제시되어 있는가?
  • OKR과 비전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가?
  • 내가 하는 일이 OKR/비전과 어떻게 연관되는지 설명할 수 있는가?

 

세상에 (일부러) 나쁜 동료는 없다!

종종 일이 안 풀리거나 뜻한 대로 커뮤니케이션이 되지 않으면 외우는 만트라가 하나 있다. 세상에 (일부러) 나쁜 동료는 없다인데, 함께 일하는 모두는 맡은 일을 성공시키고 싶어서 애를 쓰고 있다는 현실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호의에 기반해 엉긴 실타래를 하나씩 풀어가다보면 되지 않는 팀이나, 되지 않는 일은 사실 없다. 소소한 체크리스트가 내가 속한 조직과 내가 일하는 방식을 회고하는 데에 작은 도움이 되길 바란다.

 

 

협업 정도 확인 체크리스트(체크가 많을 록 협업이 잘 되고 있지 않을 가능성이 높음)

본 글은 왓챠(Watcha)에서 PM으로 일하고 있는 정세윤 님이 작성한 ‘협업의 조건’ 글을 옮겨온 것입니다. ‘일’과 ‘미디어’에 대해 풍부한 인사이트가 담겨있지만,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글이 읽고 싶으신 분은 정세윤 님의 블로그 <보통의 언어>에 방문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