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에서 희망의 빛이 보이지 않는다. 불평등과 기후위기 그리고 심각해지는 사회적 혐오와 각자도생의 개인화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비전과 정책이 겨뤄지는 것이 아니라 의석을 확보하기 위한 정당 간의 이합집산이 총선 국면의 이슈를 잠식하고 있다. 무능한 정치의 결과이자 정치의 무책임이 아닐 수 없다.
민주당은 병립형과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두고 한참 손익계산을 하다 비례위성정당을 창당했다. 지난 총선에 이어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통한 정치개혁이 좌절되고 위성정당이 ‘사태’를 넘어 ‘관행’으로 공고히 자리잡으려 하고 있다. 시민들의 의사가 의석에 정확하게 반영될 수 있도록 비례대표제 정치개혁을 외쳐온 시민사회는 이러한 사태에 감시와 비판의 목소리를 높여야 마땅하나, 이런 상황에서 도리어 소위 시민사회단체 원로 집단 일부는 민주당 비례위성정당 참여를 종용하고 있다.
지난 2월 7일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한국진보연대, 전국비상시국회의 등이 참여하는 ‘정치개혁과 연합정치 실현을 위한 시민회의(연합정치시민회의)’는 ‘민주, 개혁, 진보 선거대연합의 원칙과 방향에 관한 시민사회의 제안’을 발표했다. 이 오만한 제안은 민주, 개혁, 진보’의 범위를 자의적으로 선별하여 기존 정당 중에서 노동당은 배제하는 반면, 정당이라 보기 힘든 새진보연합은 포함한다. 또한 다양한 후보자들 중에 선택하는 것은 유권자의 고유한 권한임에도, 지역선거구에서의 후보단일화를 종용한다. 2월 13일에는 더불어민주당, 진보당, 새진보연합들과 함께 특정한 정당에 대해 참여를 요구하는 발표문을 내놓았다. 이는 정당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해치며, 해당 정당의 당원들을 모욕하는 일이다.
이들의 주장은 1987년부터 선거 때마다 등장한 ‘비판적 지지’의 반복이다. 그런데 비판적 지지로 탄생한 권력은 그 값을 했던가. 한미 FTA와 비정규직 노동법 개악에 정치적 사활을 걸었던 노무현 정부와 촛불 항쟁의 개혁 요구에 무능했던 문재인 정부는 권력의 재생산조차 실패했다. 경험적으로 실패한 전략을 반복하는 것은 정치적 게으름이거나, 아니면 다른 이익이 있기 때문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소위 시민사회의 원로나 대표 같은 경력으로 중앙정부나 지방정부에서 민주당 권력에 의존하여 공공기관의 대표나 위원회의 위원장이나 위원직을, 그리고 산하기관의 위탁운영을 해왔던 것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이러한 주장이 ‘시민사회’의 이름을 걸고 나오는 동안,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한국진보연대, 전국비상시국회의라는 단체에 참여하고 있는 어떤 구성원들도 이의제기를 하지 않았다는 점은 문제적이다. 이렇게 말도 안되는 행태에 대해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소속 368개 단체 중 어디에서도, 한국진보연대 소속 22개 단체 중 어디에서도, 전국비상시국회의 35개 지역 및 부문 단체 중 어디에서도 입장이 나오지 않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우리는 침묵이 무관심이나 부정을 의미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침묵은 말도 안되는 행태를 가능하게 만들고 반복하게 만드는 사실상의 동조에 가깝다고 본다. 이제는 목소리를 내야 할 때다. 적어도 각자의 현장을 어렵게 지켜온 시민사회 운동의 활동가들은 더 이상 정치적 결정을 강요받는 상태를 용인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첫째, 우리는 신자유주의 정치세력과의 선거대연합에 동의하지 않으며, 이를 즉각 중단할 것을 요구한다.
둘째, 새로운 정치는 구체적인 현장 실천의 결과를 통해서 만들어진 과제와 가치들을 바탕으로 만들어져 한다. 정당과 정치세력들은 구도 짜기와 선거구 야합에 골몰할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고민해온 과제에 주목하여 새로운 정책과 가치를 제시해야 한다.
2024년 2월 15일
민주당 비례위성정당과 신자유주의 정치 야합에 반대하는 시민사회 활동가 및 시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