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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르네상스]"나의 종교는 건설이다" 불도저 김현옥, 윤중제를 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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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어느 날 밤 김현옥 서울시장은 여의도 공사 현장 옆에 차려진 철제침대에 누웠다. 불현듯 시상이 떠올랐다. 제목 ‘여의도’.


여기 한강 여의도는 400만

우리의 기운이다.

여기 한강 여의도는 억백의

모래로 뭉쳐 있다.

여기 한강 여의도에 우리의 지혜, 정열, 의욕, 희망

그리하여 우리의 혼마저

들어 뭉쳐 있다.


여기 한강 여의도의 내일을

우리는 지켜야 한다.


◆여의도에 미친 ‘불도저’ 김현옥…110일 만에 둑을 쌓다
김현옥 제14대 서울특별시장

김현옥 제14대 서울특별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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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시장은 신들린 무당처럼 ‘여의도’에 미쳐 있었다. 일어나면 바로 여의도 윤중제 건설 현장으로 나갔다. 하도 여의도 출타가 잦으니 아예 이동식 시장실을 차렸다. 침대에 누우면 여의도 시상이 떠오를 정도였으니, 주변 사람들도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그를 가까이서 지켜본 손정목 서울시립대 명예교수는 이렇게 회고했다. "무당은 굿판을 벌이면 완전히 초인간적인 동작을 개시한다. 윤중제 공사 기간 김현옥 시장이 바로 그런 상태였다. 신이 들었으니 아프지도 쓰러지지도 않았다."

생전에 김 시장은 종종 "나에게 종교는 건설이다"라고 말했다. 이 신념은 윤중제 건설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는 윤중제 공사를 ‘초돌관공사’라고 했다. 돌관이란 일본 군인들이 썼던 말이다. 총에 칼을 꽂고 적진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뜻한다. 거기다가 ‘초’자를 더 붙여 표현한 것이다. 그는 결국 110일 만에 모래섬 여의도에 둑을 완공했다. 그는 곧바로 도시계획을 건축가 김수근에게 맡겼다. 다만 김현옥과 김수근의 여의도 계획은 실현되지 못했다. 김 시장이 1970년 와우아파트 붕괴사고로 물러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윤중제를 새로운 도시계획을 펼칠 수 있는 대지를 초단기에 완공해낸 성과만으로도 그의 업적은 여의도 열전에서 제일 먼저 기록될 만하다.


◆양택식과 손정목, ‘꿈의 여의도’를 ‘현실의 여의도’로 재설계한 이들
양택식 제15대 서울특별시장

양택식 제15대 서울특별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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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지사로 있던 양택식이 김현옥의 뒤를 이어 서울시를 이끌었다. 가장 먼저 맞닥뜨린 시정의 문제는 재정난이었다. 전임시장의 무리한 공사 추진으로 부채가 쌓여, 공무원 월급도 제대로 못 줄 판이었다. 그가 주목한 것은 ‘여의도’였다. 여의도에 조성한 택지를 민간에 매각하고, 고급아파트도 지어 민간에 팔겠다는 계획이었다. 와우아파트 붕괴로 무너진 서울시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고, 인구를 빨아들여 여의도의 발전을 추동하겠다는 두 마리 토끼 잡기 전략이었다.


양택식은 당시 중앙공무원교육원 차장으로 있던 손정목을 불러들인다. 그러나 허허벌판 여의도의 택지를 팔기는 쉽지 않았다. 여의도를 직접 찾은 손정목의 입에서 가장 먼저 나온 소리는 "아이고!"라는 탄식이었다. "높낮이도 없는 80만평의 광활한 모래땅을 어떻게 해야 하나"하며 발을 동동 굴렀다. 시민·투자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선 여의도의 가치를 입증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는 박병주 홍익대 교수에게 직접 새로운 여의도계획을 요청했다. 요구는 간단했다. "여의도 택지가 쉽게 팔릴 수 있도록 할 것." 그렇게 김수근의 입체계획은 평면계획으로 바뀌었다.


손정목 전 서울시립대 명예교수

손정목 전 서울시립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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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는 동시에 시범아파트 매각에 들어갔다. 분양 초기 어려움을 겪었으나, 시설·교통·학군 특화를 내세우면서 이내 프리미엄이 붙었다. 여의도 시범아파트 공사가 진행되면서 여의도 택지도 덩달아 팔리기 시작한다. 1971년 기준으로 서울시가 여의도에 투자한 직접경비는 54억1900원이었는데, 그해 말 15억8700만원의 순수익을 올렸다. 이 중 10억원은 지하철 건설비로 전용했다. 파산 위기의 서울시 재정이 극적으로 회생한 것이다. 양택식과 손정목의 현실적 결단으로 애물단지 여의도는 보물단지로 변신할 수 있었다.


◆동서로 나뉜 여의도를 만든 박정희의 한마디
박정희 전 대통령

박정희 전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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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시장 이마처럼 훤한 광장을 만들어봐."


양택식 시장은 머리숱이 없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여의도 한복판에 대광장을 만들 것을 지시했다. 친히 붉은 색연필로 선을 그었다. 길이 1350m, 넓이 280~315m. 12만평에 달하는 면적. 녹지도 화단도 없는 아스팔트 포장의 광장이었다. 여의도는 지금도 동서가 여의도 광장으로 인해 완전히 단절돼 있다. 이 모습을 만든 것이 바로 박 대통령의 저 한마디였다.


현재 여의도 광장의 모습을 두고는 ‘지역의 유기적 연결을 방해하는 광장 아닌 광장’이라는 비판이 적지 않다. 다만 이는 광장 조성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는 반론도 있다. 박 대통령이 스산한 모습의 대광장을 한복판에 지은 건 ‘안보’ 때문이었다. 북한의 도발이 거세지던 시절이었던 만큼, 수도방위를 위한 비행장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글로벌 금융·문화의 중심으로" 오세훈의 여의도 리디자인
오세훈 서울시장

오세훈 서울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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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는 한국 금융·문화의 중심을 넘어, 글로벌 중심으로 도약을 꿈꾸고 있다. 키를 잡은 건 오세훈 서울시장이다. 지난 3월 서울시는 여의도 금융특정개발진흥지구 진흥계획을 승인했다. ▲디지털금융지원센터 설립 ▲핀테크 기업 육성 ▲금융 중심지 브랜딩 홍보 강화 ▲금융 교육 활성화 ▲영어 친화 환경 조성 등이 추진된다. 사업비는 총 593억5700만원으로 올해부터 2027년까지 5년간 투입된다. 오 시장은 여의도를 세계 5위 안에 드는 국제 금융 중심지로 조성할 계획이다.


아울러 오 시장은 여의도에 문화 인프라를 더해 확장성을 높일 계획이다. 서울시는 여의도 한강변에 제2세종문화회관을 짓고 여의도공원과 한강공원을 통합하고 이곳을 대중문화 콘텐츠 중심의 복합문화공간으로 조성할 계획이다. 2026년 상반기 여의도에 국제여객터미널인 ‘서울항’을 조성하는 것도 관광·문화 인프라를 대거 보강하겠다는 계획의 일환이다.


오 시장의 청사진을 실무로 구현하는 책임은 조남준 서울시 도시계획국장이 맡고 있다. 조 국장은 "여의도는 금융중심 지구단위계획, 아파트지구 지구단위계획, 제2세종문화회관 등 다양한 프로젝트가 동시에 추진되고 있다"며 "규제를 대폭 완화해 여의도를 국제 디지털 금융 중심지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김동표 기자 letme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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