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수목드라마 SBS <그 겨울, 바람이 분다>(왼쪽)와 KBS 2TV <아이리스2>가 지난 2월 13일 동시에 첫 방송을 시작했다.

새 수목드라마 SBS <그 겨울, 바람이 분다>(왼쪽)와 KBS 2TV <아이리스2>가 지난 2월 13일 동시에 첫 방송을 시작했다. ⓒ SBS, KBS


수목 드라마 시장이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KBS <아이리스2>, MBC <7급 공무원>, SBS <그 겨울, 바람이 분다>가 시청률 3% 안팎의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과연 누가 최후의 승자가 될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특히 '17년 우정'을 자랑하고 있는 <아이리스2>의 표민수 PD와 <그 겨울, 바람이 분다>의 노희경 작가의 라이벌전은 색다른 재미를 선사하고 있다.

1996년 5월 당시 입봉을 준비하고 있던 새내기 PD 표민수는 KBS 일일극 <바람은 불어도> 조연출 시절 인연을 맺은 배우 나문희의 소개로 드라마작가 노희경과 첫 만남을 가졌다. 나문희는 그에게 노희경을 "독특한 친군데 작품이 좋다"고 소개했다. 노희경 역시 처녀작 <세리와 수지>와 <엄마의 치자꽃>을 막 끝낸 신인작가였다. 그야말로 이제 막 발걸음을 떼기 시작한 '초짜'들의 만남이었던 셈이다.

직설적이고 당당했던 노희경과 섬세하고 사려 깊은 표민수는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 커피숍에서 처음 만난 그들은 장장 6시간 동안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며 그 자리에서 단막극 <아직은 사랑할 시간>의 스토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에이즈 환자의 사랑과 상처를 그린 이 작품은 유호정, 최수종이 주연을 맡아 1997년 KBS 베스트 극장에서 방송됐다. 표민수와 노희경이 의기투합해 만든 의미 있는 첫 작품이었다.

그로부터 1년 뒤, 노희경-표민수 콤비의 첫 장편 드라마 <거짓말>이 전파를 탔다. 한국 최초의 '마니아 드라마'로 기록된 <거짓말>은 사랑과 삶을 깊이 있게 반추하며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노희경과 표민수는 이 드라마 한 편으로 방송가에서 가장 주목받는 파트너로 떠오르게 된다. 그러나 표민수는 "사람들의 평판이 제법 좋았지만, 남들의 칭찬을 '청산가리'로 생각하기로 한 우리들은 그 날도 반성해야 할 것들에 대해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그만큼 무한한 열정을 갖고 드라마를 만든 것이다.

1999년 이들이 발표한 KBS 단막극 <슬픈 유혹>은 당시로선 파격적 시도의 작품이었다. 지상파 드라마에서 동성애자의 삶을 소재로 드라마를 만든다는 건 예나 지금이나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희경은 '마음껏 썼고', 표민수는 '마음껏 찍었다'. 놀라운 것은 KBS 역시 이 작품의 방송을 흔쾌히 허락했다는 것이다. 압박도 삭제장면도 없었다. 김갑수와 주진모의 키스 장면까지 여과 없이 방송됐다. 이런 배려 덕에 <슬픈 유혹>은 인간 대 인간의 사랑을 온전히 그려낼 수 있었다.

2000년 방송 기자단이 뽑은 '올해의 드라마'였던 KBS <바보 같은 사랑>도 노희경-표민수 콤비의 작품이다.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시선, 폐부를 찌르는 대사, 모든 캐릭터를 어루만지는 연출력, 생동감 있게 살아 움직이는 배우들까지 어디 하나 부족한 것이 없었던 드라마였다. 다만 아쉬운 점은 MBC <허준>을 경쟁작으로 만나 시청률 면에서는 사상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들었다는 사실이다. 특히 첫 회 시청률 1.8%는 13년이 지난 지금까지 깨지지 않는 최저 시청률 기록이다. 이 참담한 시청률 표를 받아든 날을 표민수는 이렇게 회고한다.

"어떻게 잊을 수 있겠습니까. <바보 같은 사랑> 첫 회가 드라마 사상 최악의 시청률을 기록했던 날을 말입니다. '방송되기 전에 이미 완제품을 세상에 내놓은 상태이고, 시사회 반응도 너무 좋았다. 이건 우리 잘못이 아니다' 당신(노희경)이 했던 말입니다. 그 때 당신의 그 씩씩함이 겉으론 의연한 척하면서 속으론 몹시 당황했던 내게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모릅니다…(중략)…결국 드라마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의 치유력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좋은 기회를 준 채 종영됐고, 우린 성공과 실패의 책임을 두 어깨에 나눠졌지요. 늘 그렇듯 아주 공평하게요." (KBS 저널 10월호 "콤비&시너지 작가 노희경과 연출가 표민수-하나보다 더 하나 같은 둘" 중)

2002년 KBS의 품을 떠나 프리랜서로 독립한 표민수는 이 후에도 노희경과 이미숙-류승범 주연의 <고독>을 만들었고, 2008년에는 <그들이 사는 세상>으로 다시 한 번 재회했다. 1996년에 첫 만남을 가진 이래 장장 12년 동안 여섯 편의 작품을 함께 했을 만큼 돈독한 관계를 자랑한 것이다. 지금까지도 노희경-표민수 콤비가 방송가의 유명한 '전설적 파트너'로 남아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노희경 Vs. 표민수, 양보 없는 '수목극 대전'

  7일 오후 서울 소공동의 한 호텔에서 열린 KBS2TV 수목드라마 <아이리스2> 제작발표회에서 표민수 감독이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오른쪽은 김태훈 감독.

지난 2월 7일 오후 서울 소공동의 한 호텔에서 열린 KBS2TV 수목드라마 <아이리스2> 제작발표회에서 표민수 감독이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오른쪽은 김태훈 감독. ⓒ 이정민


이렇듯 찰떡궁합 파트너십을 자랑하던 그들이 재밌게도 2013년 2월, 양보 없는 '시청률 전쟁'을 벌이고 있다. 노희경 작가의 SBS <그 겨울, 바람이 분다>와 표민수 PD의 KBS <아이리스2>가 동시간대 격돌하면서 피 말리는 접전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두 작품 모두 각 방송사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작품이라는 점에서 당분간 쫓고 쫓기는 게임이 계속 될 것으로 보인다.

먼저 웃은 쪽은 표민수 PD다. 전작인 <아이리스1>의 기세를 이어 받아 출범하자마자 15%대 시청률에 안착하며 동시간대 1위를 기록했다. 처음으로 연출하는 액션물인 만큼 다소 허술한 점이 보이기는 했으나 장혁, 이다해, 이범수, 임수향 등 명연기자들의 호연과 긴장감 넘치는 스토리의 힘이 시청자들을 매료시켰다. 남성 시청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고 있는 만큼 기세를 계속 이어나가겠다는 전략이다.

시청자 층이 겹치는 MBC <7급 공무원>에 비해 완성도가 높다는 평을 받은 것도 고무적이다. 화려한 볼거리와 현란한 액션, 강화된 드라마를 바탕으로 시청자 층을 폭넓게 이끌어 낼 수 만 있다면 <아이리스2>의 흥행 질주는 생각보다 더욱 거세어 질 것이다. 프리랜서 데뷔 이후, <넌 내게 반했어>로 유례없는 슬럼프를 겪은 표민수로선 이번 <아이리스2>에 명예를 걸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31일 오후 서울 한남동의 한 극장에서 열린 SBS드라마스페셜 <그겨울 바람이 분다>제작발표회에서 노희경 작가가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지난 1월 31일 오후 서울 한남동의 한 극장에서 열린 SBS드라마스페셜 <그겨울 바람이 분다>제작발표회에서 노희경 작가가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 이정민


노희경 역시 물러설 수는 없다. 전작들 대부분이 흥행에 실패한 탓에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된 '한 방'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톱스타 조인성-송혜교를 필두로 배종옥, 김태우, 김범, 정은지 등 연기파 배우들을 포진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김규태 PD의 서정적이면서 섬세한 연출도 강점이다. 보조작가를 대거 충원하고 방송사와 소통에 나선 것 또한 대중성 확보를 위한 포석으로 볼 수 있다.

초반 시청률은 나쁘지 않다. 블록버스터급 경쟁작들에 맞서 12%대 시청률은 매우 준수한 성적표다. 여기에 나 홀로 멜로드라마를 표방하고 있다는 것 또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갈 데 없는 여성 시청자들을 붙들어 놓을 수 있다면 공고한 시청자 층을 보다 쉽게 형성할 수 있다. 노희경 스스로도 이를 노린 듯 1, 2회 스토리를 아주 촘촘하고 강렬하게 구성했다. 초반 시선 끌기 전략이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한 셈이다.

이제 문제는 다음 주 방송이다. 이번 주는 <아이리스2>와 <그 겨울, 바람이 분다> 모두 방송사의 막강한 홍보 덕분에 '개업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개업효과가 사라진 다음 주가 진정한 승부의 분기점이다. 시청률이 상승세를 타느냐, 아니면 하락세를 타느냐에 따라 양 진영의 희비가 엇갈릴 것이 분명하다. 두 작품 모두 대본-연출-배우 삼박자를 고루 갖춘 만큼 이제는 시청자들의 선택을 기다릴 수밖에 없게 됐다.

과연 행운의 여신은 노희경에게 웃음 지을까, 아니면 표민수에게 영광을 돌릴까. 당대 최고의 파트너이자 17년 지기인 노희경과 표민수가 맞닥뜨린 이 얄궂은 운명 덕분에 당분간 수목 드라마 대전은 한층 흥미진진해 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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