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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를 얻으려 하지 말고 역사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

김민웅 성공회대 교수가 정부여당에게 던진 신랄하지만 충정어린 한마디다.

한나라당의 싹쓸이가 예상되는 5·31 지방선거를 며칠 앞두고 만난 김민웅 교수의 현 정치현황에 대한 평가는 한마디로 매서웠다. 특히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에 대해서는 '눈물을 쏙 뽑을만치 따끔'했다. 그러나 민병두 열린우리당 의원의 말처럼 '채찍을 든' 김민웅 교수의 비판은 따끔했지만 '몸에 좋은 약은 입에는 쓰다'는 옛말과도 같았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피습사건을 단순한 국민의 일시적인 동정여론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고 진단한 김민웅 교수는 "이번 사건은 정치적으로 정서적 대안을 찾는 국민들에게 박근혜 대표를 대안으로서의 위상을 갖게 한 사건"으로 분석했다.

그리고 김 교수는 "이번 사건은 우리나라 정치 현실에서는 정책적 논리성과 함께 정서적 접근 또한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고 주장하며 열린우리당이 하루속히 국민의 진정한 마음을 깨달아 올바른 대책을 세울 것을 촉구했다.

또한 그는 현 정부여당은 국민들이 지난 투쟁 속에서 이룩한 정치적 열매를 상실한 역사적 책임감을 져야 한다고 강도 높게 비판하면서도 지금의 위기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만들 것'을 강조했다. 김민웅 교수는 그 대책으로 "민주당, 민주노동당을 비롯해 개혁, 시민사회단체, 한나라당 내 개혁적인 인물 등 최대한 결합할 수 있는 새로운 틀을 짜야 한다"면서 이와 함께 "진심으로 다가간다면 국민들은 이를 받아들일 것이라면서 국민들에게 귀를 열고 배워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번 지방선거 결과에 대해 '한나라당의 싹쓸이'는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한 김 교수는 "선거 이후 정국에 대해 '비관적으로 보지 않는다'"면서 "역사의 역동성을 잘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열린우리당을 향해 "이제부터 1년 동안 국민 대중에게 다가가는 정서적인 노력과 정치적으로 보다 선명하게 문제의 중심을 잡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문하며 "이 시기에 좋은 것을 빨리 학습하는 세력이 향후 역사의 주도권을 장악하는 유리한 입장에 서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김민웅 교수와의 인터뷰 전문이다.

ⓒ 이동원
- 지난 5월20일 있었던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피습사건이 향후 정치흐름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관심을 모은다 .
"이번 사건은 정치적 혼란 속에서 대안이 없는 상황이 지속되는 와중에 생긴 것으로 박근혜라는 인물이 갖고 있는 정치적 가치가 정서적으로 대안의 위상을 확보했다는 면에서 정치적 영향을 갖게 되었다고 본다.

박근혜 대표가 가진 내용들, 그것이 딛고 있는 세력의 문제 등을 넘어서는 정서적 대안의 차원이라는 게 있다. 한국정치에서는 그 부분이 중요하다. 진보개혁진영에서는 정책의 내용이나 역사의 방향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이는 옳다. 그런데 보통의 일반대중에게는 정책도 중요하지만 가슴을 치고 들어오는 정치적 정서라는 게 대단히 중요하다. 우리 민족은 가슴으로 이해하는 습성이 있다. '아, 그래'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가슴이 울리는 그런 느낌말이다. 울고 웃고 하면서 이루어지는 인식의 세계이다."

미국이나 서구는 논리가 더 중요하게 제기가 되서 태도는 2차적으로 문제 삼을 수 있겠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 우리는 내용이 뭐냐 이전에 태도의 문제가 상당히 중요하게 취급된다. '너 태도가 왜 그래' '왜 반말이야' '나이가 몇 살이야' 이렇게 싸움을 하는 게 우리나라다. 이게 한국사람들의 일정한 정서적, 문화적 특징이다. 문제 여부는 논외를 하고 이게 현실이라는 거다. 그런 면에서 정서적 대안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많이 지쳐있고 황폐해진 국민들의 마음 속에 박근혜 대표는 이번 사건으로 정서적 포용력이나 대중적 친화력을 가진 인물로 다가선 거다.

박근혜 대표가 피습 현상에서 취했던 태도가 만만치 않았다. 오버하지 마라, 범인 처벌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등 의연한 모습을 보였다고 평가받고 있다. 위기 앞에서 정서적으로 차분하게 수습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준 셈이다. 이번 사건으로 박근혜는 자신의 후광이기도 하고 그림자이기도 했던 '박정희의 딸'이라는 이미지, 사학법 관련해서 보여줬던 정치적 사고의 한계로 인한 부정적 평가를 딛고 넘어선 거다. 박정희의 딸 박근혜가 아니라 박근혜의 아버지 박정희로 국민들의 인식을 변화시켰다고 본다. 박근혜는 늘 그 경계선에 있었는데 이번 일로 자신의 독자적 가치를 보였고, 한나라당 내 문제도 일정하게 해결한 셈이다. 그 결과가 대선지지도 1위 아닌가.

그런 면에서 지금 여론은 단지 동정여론이 아니다. '여자가 당했다'는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경외의 대상'으로까지 바뀐 거다. 한마디로 내용을 따지기 이전의 문제가 된 셈이다."

박근혜 피습사건은 '정치적 정서'의 중요성 보여준 것

- 박근혜 대표가 정서적 대안의 위상을 갖게 됐다고 평가했는데, 그렇다면 노무현 대통령은 정서적 대안의 위치를 상실했다는 의미인가.
"노무현 대통령이 초기에 보였던 여러 가지 행태에 대해 국민여론이 반발했던 것도 정치적 정서 측면에서 문제가 촉발했다고 본다. 사실 민주노동당을 비롯한 진보세력이 대중에게 다가갈 때도 정서적 차원에서 고민이 부족하고 다소 일방적으로 윽박지르는 경향이 있고, 일상의 이야기를 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지속되어 왔다.

현 노무현 정부는 정책으로 다가가는 것도 실패했고, 올바른 자세를 가지고 다가가는 것도 실패한 셈이다. 정책의 성격을 놓고 볼 때 국민들은 열린 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차별성을 크게 느끼지 못한다. 그럼 자세가 좋은 쪽을 택하게 되어 있는 게 당연하다. 물론 한나라당의 자세가 훌륭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상대적으로 비교당하고 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지난 해 5.18 기념 때에 TV토론이 있어 광주를 간 적이 있어 그곳 사람들을 만났는데 '박근혜가 손을 잡아주고 끌어안으면 그 정서적 힘이 몇 년은 간다'는 거다. 박근혜에게 위로를 받은 거다. 오늘의 정세에서 역사를 변화시키려는 사람들이 깊이 생각해야 할 대목이 있다고 본다. 그게 정치적 정서의 힘이다. 그것이 환상일 수도 있고 이데올로기 작용의 측면도 분명히 있고 또한 의도된 조작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능력을 갖는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정치공학적 차원이 아니라, 인간 자체에서 품겨 나오는 힘 말이다.

여당은 그 능력을 가지고 있었는가, 진보정당은 가지고 있었는가라는 물음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정치적 정서를 가지고 있고 내용의 진보성도 가지고 있다면 물론 최고지만 과연 정치적 정서를 진보개혁진영이 가졌는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

- 열린우리당이 정책적 측면에서도 한나라당과 별 차이를 느낄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고 했다. 좀 더 구체적인 설명을 부탁한다.
"물론 어떤 면에서는 정치적 성과가 있겠지만 큰 그림으로 보면 누가 집권하느냐라는 측면에서 차이가 없는 상황까지 갔다는 거다. 지난 대선에서는 이회창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한 수구냉전세력이 역사를 거꾸로 돌릴 것이라는 정치적 공포가 있었고 이 두려움이 힘이 되어 밀고 나갔고 그 힘이 탄핵까지 막아냈다. 그 시기에는 그래도 현 정부를 지킬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맛을 잃어버린 소금'이 되어버렸다. 지켜줄 가치가 없다는 판단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 현 정부에 대한 비판은 거기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진보개혁진영 전반과 연계되는 것 같다.
"당연하다. 그것이 뼈아프게 안타까운 거다. 열린우리당이 잘한 것만큼 민주노동당을 비롯한 진보세력이 할 수 있는 영역이 좁아질 수도 있지만 동시에 잘하는 것만큼 진보개혁세력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좋아져서 향후를 꾀할 수 있다. 그런데 열린우리당이 못하니까 동반 하락하고 있는 거다. 열린우리당이 못하니 민주노동당이 대안세력이라고 해도 논리적으로는 맞으나 대중의 인식은 다 같은 진보개혁세력으로 보이게 마련이다.

이런 의미에서도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의 역사적 책임은 크다. 지난 15년간 이뤄왔던 성과들을 말아먹은 셈이다. 민주주의를 외치고 노동의 권리를 외쳤지만 '아니올시다'였고 미국에 대해 자주적 입지를 이야기했지만 종속화의 길로 빠르게 가고 있다. 노무현 정부가 '우향우'하면 할수록 그것이 뜻하는 것은 한나라당의 입지를 넓혀준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열린우리당의 '우향우', 한나라당의 입지만 넓혀줄 뿐"

ⓒ 이동원
- 얼마 전 열린우리당의 민병두 의원이 읍소하기도 했지만 '국민의 채찍은 달게 받겠지만 싹쓸이만은 막아달라'며 한국정치의 후퇴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많다.
"그 논리는 안타깝게도 4년전에 이미 이야기했던 거다. 지난 4년전 지방선거 때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들로 인한 '3홍사건'에 휩싸였다. 그때 나온 논리가 '이번에 깨지면 대선 깨지고 그로 인해 향후 파국이 된다'며 '미워도 다시 한번'을 외쳤다. 그땐 호응했다. 아무리 미워도 한나라당에게 주는 것은 문제가 있다면서…. 그런데 지금은 안 먹힌다. 한번 속지 두 번 속냐이다. 미워진 거다. 사랑하는 만큼 더욱 미워진 거다. 집권세력은 그 사랑의 무게를 깊이 받아들이지 않고 시간을 낭비했다."

- 그렇다면 현 정국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건가.
"이번 정국은 어떻게 해서든 뒤집을 수가 없다고 본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필연적으로 경험해야 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물론 일어나지 말아야 할 상황이 일어난 것은 너무나 안타깝다. 그러나 위에서 제기한 시각으로 보면 현 정국은 바람직스럽지는 않지만 겪어야 할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삼풍백화점이 무너지게 된 과정을 보여준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는데 무너지기 전부터 균열이 있었다. 하나하나 쌓여가면서 붕괴되었다. 노무현 정부도 국민의 지지 이탈이 계속 있었음에도 도덕적 확신만 가지고 균열을 방치해 왔다. 도덕적 확신도 모순투성이다. 그러나 민주세력의 힘이 무너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하기에 지금 빨리 배워서 이 시기를 지혜롭게 보내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 한마디로 전화위복의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는 건데 대책이 있다면.
"민주당, 민주노동당을 비롯해 개혁, 시민사회단체, 한나라당 내 개혁적인 인물 등 최대한 결합할 수 있는 새로운 틀을 짜야 한다. 그건 당을 하나 새로 차리자가 아니라, 서로 연대할 수 있는 것은 연대하는 그런 틀 말이다. 그리고 국민적 정서에 호소력 있게 다가간다면 우리 국민들은 알아듣는다. 절대 정치공작적으로 다가가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 국민들 절대 우습게보면 안 된다. 다 뛰어난 정치평론가다. 대중은 그 예견력이 대단히 무서우며 아주 지혜롭고 강한 통찰력을 가지고 있다. 대중으로부터 귀를 열고 마음을 열고 배우기를 바란다. 정부여당은 지금까지 이런 정치를 못해왔다.

지금 국민들은 정서적으로, 내용적으로 변할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뼈를 깎는 고통의 시간을 역사가 요구하고 있다. 국민들이 오랜 투쟁을 통해 마련한 정치적 열매를 따서 정부여당에 줬고 역사적 사명을 안겼다. 그럼 제대로 해야 한다."

"진보개혁세력의 통큰 통합으로 국민 정서에 다가가야"

- 아무래도 향후 정국흐름이 불안한 것은 사실이다.
"난 비관적으로 보지 않는다. 물론 언론, 교육 등에서 상당히 많은 문제가 발생할거다. 그러나 지방권력은 일정하게 넘어가겠지만 대선은 아니다. 대선에서는 국민들이 또 다르게 판단할 것이다. 사실 지방선거, 국민들은 관심없다. 그러나 대선은 아니다. 대선은 투표율도 높지 않은가. 그래서 가늠할 수 없는 거다. 지금은 이렇게 보이지만 실상 아닐 수도 있다. 역사가 되풀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박정희가 대통령이 될 줄 누가 알았으며 노무현이 대통령이 될 줄은 또 누가 알았나. 역사는 역동적이다. 미리 앞질러 비관할 이유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지방선거 이후 향후 1년 동안 각 세력들이 어떻게 변화하는가가 참 중요하다. 한나라당이 만약 이긴다면 과거 경험이 있기 때문에 결코 쉽게 자만하지 않을 거다. 열린우리당이 패배한다고 해도 오랫동안 싸워왔던 사람들이니까 완전히 위축되지는 않을 거라고 본다. 민주 노동당은 그야말로 대중 속에 뿌리를 깊이 내리는 노력이 필요하다. 민주당 역시 지역정당의 한계를 돌파할 수 있는 개혁성으로 승부를 걸어야 할 것이다.

이제부터 1년 동안 국민 대중에게 다가가는 정서적인 노력과 정치적으로 보다 선명하게 문제를 잡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향후 지도자는 정서적 차원과 정치적 수준에서 통합적 사고를 할 줄 아는 인물이어야 할 것이다. 이 시기에 좋은 것을 빨리 학습하는 세력이 향후 역사의 주도권을 장악하는 유리한 입장에 서게 될 것이다."

- 선거 결과를 미리 예상하고 자포자기 하는 사람들도 있다.
"선거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상관없이 이 나라의 진보적 변화를 원하는 사람들은 자기 양심을 걸고 자기 모습을 보여야 한다. 발언을 해야 한다. 역사의 기록이자 증언이다. 그리고 선거에서는 표를 얻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바로 역사의 마음을 얻는 거다. 그게 길게 간다.

적절한 비유가 아닐 수 있으나 연극을 할 때 처음에는 기대를 모았다가 점점 지루해져서 관객들이 하나둘 객석을 떠난다고 치자. 그래도 배우들은 끝까지 최선을 해야 한다. 그래야 작품이 완성이 된다. 그러면서 새로운 연극이 시작된다. 관객이 떠난다고 배우도 얼렁뚱땅 하면 그건 보이기 위한 연기일 뿐 진정성이 전혀 없는 거다.

지금 정부여당도 진정성을 가지고 대중에게 다가가야 한다. 국민들은 잘못하더라도 잘 하려고 노력하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면 박수를 친다. 진심을 가지고 노력하면 뭐라고 하지 않는다. 그것을 꼭 잊지 말았으면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자주민보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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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권자전국회의에서 파트로 힘을 보태고 있는 세 아이 엄마입니다. 북한산을 옆에, 도봉산을 뒤에 두고 사니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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