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봄이 한창인 때 자하재의 김은희 선생님께서 동네를 소요하시다가 저희집 정원에서 발길을 멈추었습니다. 갓 꽃봉오리를 연 영산홍을 보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영산홍이 가여워요. 이렇게 예쁜 꽃을 피우고도 웃자란 쑥들 틈에서 뽐낼 수가 없군요. 이 쑥들을 잘라주면 영산홍이 더 기뻐할 텐데…."
"사모님, 저는 영산홍을 더 돋보이도록 하기위해 쑥을 잘라낼 마음이 없습니다. 선택된 한 생명을 위해 다른 생명을 자르면, 이 쑥들은 얼마나 아파할까요?"

제 대답에 김 선생님께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모티프원에서 꽃을 피운 영산홍. 이 영산홍은 2년전 마을의 한 신축건물에서 조경을 하다가 어울리지않는다는 이유로 버려졌던 것을 주어다 심은 것입니다. 겨우 목숨을 건지긴 했지만 제 눈에 띄기 전에 이미 몇일간 뿌리가 햇볕에 노출되었던 탓에 작달막하고 가지들이 튼실하지못합니다. 서로 키 경쟁을 하느라 웃자란 쑥들에게 둘러싸인채 꽃을 피운 이 영산홍의 처량한 모습을 보고 자하재의 김은희선생님은 많이 애달아 하셨습니다.
 모티프원에서 꽃을 피운 영산홍. 이 영산홍은 2년전 마을의 한 신축건물에서 조경을 하다가 어울리지않는다는 이유로 버려졌던 것을 주어다 심은 것입니다. 겨우 목숨을 건지긴 했지만 제 눈에 띄기 전에 이미 몇일간 뿌리가 햇볕에 노출되었던 탓에 작달막하고 가지들이 튼실하지못합니다. 서로 키 경쟁을 하느라 웃자란 쑥들에게 둘러싸인채 꽃을 피운 이 영산홍의 처량한 모습을 보고 자하재의 김은희선생님은 많이 애달아 하셨습니다.
ⓒ 이안수

관련사진보기


저는 방치하는 방법으로 정원을 관리합니다. 그 관리라는 것은 곧 얼굴을 내미는 모든 생명들을 그대로 두는 방법입니다. 정원의 풀들을 뽑지 않고 그대로 두는 것도 상당한 인내를 필요로 함으로 저는 구태여 '관리'라는 저의 품이 들어간 듯한 어휘를 사용한 것입니다.

제가 인내해야 할 것은 주위 분들의 애정 어린 조언입니다.
'토끼풀을 그대로 두면 금방 잔디를 쫓아내고 그 자리를 점령해버릴 것입니다.'
'정원에 개망초가 벌써 한 길이네.'
'정원에 쑥 농사지으세요?'
'잔디가 불쌍해요.'
등 모티프원을 방문하시는 많은 분들이 대체적으로 안쓰러운 쪽의 마음이 더 실린 말씀을 하시곤 합니다. 하지만 저는 저의 처가 풀을 뽑는 것조차 말리곤 합니다.

저의 방치된 관리 탓에 기세가 등등한 모티프원 정원의 토끼풀
 저의 방치된 관리 탓에 기세가 등등한 모티프원 정원의 토끼풀
ⓒ 이안수

관련사진보기


모티프원의 정원에서 주인 노릇을 하고 있는 쑥의 무리
 모티프원의 정원에서 주인 노릇을 하고 있는 쑥의 무리
ⓒ 이안수

관련사진보기


쑥 냄새가 어떤 외래종 허브보다도 향기롭고, 토끼풀의 똥글똥글한 잎과 꽃이 작고 소박해서 정감이 갑니다. 망초꽃이 가득한 석양을 맞이하는 기분은 '평화'로 제 가슴 속에 남습니다.

사람들의 염려대로 몇 년 전에 고르게 잘 자라던 잔디는 기진하고 토끼풀과 쑥들이 무성합니다. 이런 형편을 쫓아 저희 집 정원에서 머리를 박고 있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토끼풀 무리에서 네 잎의 크로버를 찾거나 쑥을 뜯는 사람들입니다. 대처에서 오신 분들이 정원에서 네잎 크로버를 찾아 '희망'과 '행운'을 안고 돌아간다면 토끼풀을 뽑고 더 아름다운 꽃을 키운 것보다 기쁜 일입니다.

쑥은 참 왕성한 생명력으로 여러 사람들이 여린 쑥을 뜯어도 그 다음날이면 또다시 무성합니다. 저희 집 정원에서 뜯은 쑥으로 향기로운 쑥국이나 쑥떡으로 자연의 축복을 느낄 수 있다면 이 또한 저의 보람이지요.

헤이리

모티프원의 정원에서 쑥을 뜯고 있는 사람들
 헤이리 모티프원의 정원에서 쑥을 뜯고 있는 사람들
ⓒ 이안수

관련사진보기


잡초는 단지 돈 되는 작물이 아닌 것을 사람들이 차별해서 부르는 말이지요. 더불어 어울리면 다 같이 풍요롭고 조화로운 자연의 일부입니다. 이 지구에서 과잉번식에 성공해서 타 종에 비해 우월적 지위를 갖게 된 인간이 단지 인간의 기준으로 인간의 경제적 이윤에 반하는 다른 식물 종을 '잡초'로 차별해서 호칭한 다음 그것을 죄책감 없이 멸살할 자격을 누구로부터 부여받았는가 하는 의문이 들곤 합니다.

벌도 유혹을 뿌리치지못한 강아지똥풀꽃. 
샛노란 꽃이 지천인 이 강아지똥풀은 사람의 손길에 힘입어 자란게 아닙니다. 사람의 손이 닿지않았기에 꽃을 피울 수 있었지요.
 벌도 유혹을 뿌리치지못한 강아지똥풀꽃. 샛노란 꽃이 지천인 이 강아지똥풀은 사람의 손길에 힘입어 자란게 아닙니다. 사람의 손이 닿지않았기에 꽃을 피울 수 있었지요.
ⓒ 이안수

관련사진보기


김포 보구곶리에서 작업하시는 서양화가 문영태 선생님댁에서 함께 정원을 돌아보는 중에 일본에 다녀오신 얘기를 하셨습니다.

"그곳에 잡초 연구소가 있었습니다. 그곳의 정원은 우리가 제거하고자 애쓰는 풀들이 보호받고, 애지중지하는 꽃들이 제거의 대상입니다."

문선생님의 말씀을 조금 달리 해석해본다면 잡초와 잡초가 아닌 것의 경계를 어떻게 지을 수 있을까요?

모티프원 정원의 작살나무 가지 아래,  발코니 위에 놓인 작은 석등 위에서 아침마다 노래를 하는 작은 새의 방문을 정말 사랑합니다.

모티프원의 발코니를 방문한 새
 모티프원의 발코니를 방문한 새
ⓒ 이안수

관련사진보기


정원에서 네잎 크로버를 찾는 연인이나 쑥을 뜯는 사람들의 모습을 서재에서 지켜볼 때는 석등 위의 그 작은 새를 보는 마음과 매한가지의 마음이 됩니다.

모티프원의 정원에서 쑥 뜯는 여인
 모티프원의 정원에서 쑥 뜯는 여인
ⓒ 이안수

관련사진보기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포스팅됩니다.



태그:#잡초, #모티프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