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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대 근방에 있는 대안공간 루프 입구 장지아 '침묵의 계율(OMERTA)전' 홍보물
ⓒ 김형순
예술은 사회적 금기를 깨는 데 맨 앞자리에 서 있는 영광을 누려왔다. 그러나 미술사를 보면 여러 사례에서 보듯 그 영광만큼의 치욕과 수난의 대가를 치러야 했다.

작가는 관객을 당황하고 불편하게 하면서까지 왜 사회적 금기를 깨려는 것일까? 그건 아마도 관객이 '이 작품이 왜 날 낯설게 하고 당황하게 하지?'라는 의문을 던질 때 비로소 예술은 개인과 사회의 보다 원활한 소통의 문이 열린다고 믿기 때문인지 모른다.

장지아, '뒤바꾼 남녀권력구조' 그리고 '죽음의 계율(OMERTA)'

장지아(34)는 바로 그런 몫을 톡톡히 해온 작가이다. 이미 '예술가가 되기 위한 신체적 조건2-모든 상황을 즐겨라'에서는 작가에게 쏟아지는 무차별적 폭력성을 '꽃도장'에서는 꽃도장을 찍는다는 것은 여성생리혈을 묻힌다는 뜻으로 이를 통해 남녀권력의 구조가 현실과 정반대로 뒤바뀌는 해프닝을 성적 판타지로 보여준다.

▲ '공주는 말했다(Princess said)' 2004. 비디오 작품을 편집한 사진
ⓒ 장지아
그의 영상작업 중 가장 독창적인 '공주는 말했다(Princess said)'에서 보면 '꽃도장'과 맥락을 같이 하는데 사디스트 요부공주는 근육질의 남자를 궁중에 유괴하고 그를 철장에 가두어 갖가지 실험을 강행한다.

공주는 갇힌 이 남자의 눈물을 궁정정원에 물주는 데 사용하고, 키스할 때 입으로 흘러 들어간 침의 양과 실연의 아픔으로 흘린 눈물의 양을 비교하는 등 엉뚱한 실험으로 과거의 남성적 인습을 여성을 통해 전복시키고 지금까지의 고정된 남녀역할을 깨려한다.

이런 예사롭지 않은 발자취를 남긴 장지아는 작년 여름에 대안공간 루프 책임큐레이터 신보슬을 찾아와서 느닷없이 "여자 서서 오줌 누면 뭐가 문제지?"라는 질문을 던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올봄 그걸 사진과 영상으로 가시화했고 지금 그 전시가 열리고 있다.

여자가 알몸으로 오줌 누는 것을 사진에 담은 것도 뜻밖이지만 스튜디오에서 사진 찍은 과정을 여과 없이 영상으로 담아 보여준 점도 흥미롭다. 사진을 찍으면서 오간 얘기며 장난치듯 깔깔대는 육성이 너무나 생생해 바로 그 현장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물론 오줌 누는 여자모델을 구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공모한 후 몇 개월 고생 끝에 사진촬영에 성공할 수 있었단다. 사진작업은 남자들이 했는데 여자모델이 오히려 더 당당하여 그들을 당황했다는 뒷이야기다.

이번 전시회의 주제는 '오메르타(OMERTA)' 이 말은 마피아들 사이에서 쓰는 말로 그 조직내부의 계율을 깨뜨리면 죽음으로 보복 당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작가는 여자가 서서 오줌 누는 것을 또 그런 모습을 사진으로 찍고 그 과정을 영상에 담는 걸 오메르타의 계율을 깨는 것으로 빗대고 있는지 모른다.

▲ 장지아전 겹쳐 붙인 전시포스터
ⓒ 김형순
시인이 언어의 계율을 깰 때 새로운 언어가 탄생하듯이 작가는 금지의 계율을 깰 때 새로운 세계를 열 수 있다. 장지아의 작업은 그런 냄새가 강하고 풍긴다. 그 어느 나라, 어느 곳에서라도 이런 시도가 있었겠지만 성 담론이나 성적 터부의 문턱이 높은 우리사회에서는 신선한 충격이자 시원한 배설이자 또한 유쾌한 카타르시스라고 아니할 수 없다.

일탈 배설물, 생명 싹틔우는 출발

게다가 작가의 오줌을 유리관 속에 담아 만든 오줌나무(P Tree)는 아이디어도 기발하고 사막에서 금맥을 캔 마법사 같다. 이 세상에 이렇게 아름답게 핀 꽃을 보기란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런 기발한 착상은 이를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놀라운 상상력과 창조력을 유발시키기에 충분하다. 또한 그 같은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가져보지 못한 다른 작가들의 부러움을 살만하다.

여기 오줌나무(P Tree)는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나무형태에 철 구조물로 만들어져 있고 나뭇가지 끝에 오줌이 담긴 유리볼이 매달려 있다. 유리볼에 끼워진 고무호스를 연결하며 나무구조물 아래쪽으로 흘러내려 오줌이 정화하게 되어있다.

▲ '오줌나무(P Tree)' 혼합재료 300×300×270cm 2007. 설계도(아래)
ⓒ 김형순
이 오줌은 고무호스를 통해 규칙적으로 아래에 있는 씨앗에게 수분이 공급되고 그 수분으로 씨앗은 새싹을 띄우게 된다. 여성의 신체적 특성과 닮아있고 생명을 잉태하는 과정과 원리를 한눈에 보는 듯하다.

작가는 작업노트에서 자신의 이번 전에 대한 포부를 이렇게 밝혔다.

"나의 네 번째 개인전은 바로 일탈의 배설물이 새로운 생명을 싹틔우는 행위의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 오줌에 찌든 솜 위에서 자라는 씨앗들, 아름다운 형상의 소금기둥이 되어가는 염분들 그것이 만들어내는 불가능의 가능성, 그것은 마치 어디에도 없는 유토피아처럼 상상만으로 가능한 그 정신적인 무언가에 대한 것이다."

작가는 존재하지 않는 장소에서, 사람들에게 누설해서는 안 되는 침묵의 계율(오메르타)도 작품을 통해서 말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하긴 작가정신이란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것이나 언급하지 않는 것을 먼저 발설하는 것이 아닌가! 그는 지극히 작가정신에 충실하고 있고 그런 면에서 그 누구보다 앞장서고 있다.

터부 깨기, 불편하나 유쾌하다

이번 전시 기획자 신보슬은 '장지아전'에 대해 개관적 설명을 하면서 이를 보는 관객들의 이중적 반응에 대해서 이렇게 언급하고 있다.

"오메르타는 장지아가 펼치는 작은 서시이다. 우리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고 현실을 전복시키는 작은 서사, 여자가 서서 우줌 누는 불경한 장면을 사진으로 찍고, 이를 영상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오가는 농담과 웃음도 담았다. 그런데 그들의 즐거움과 유쾌함이 오히려 현장을 바라보고 있는 이를 불편하게 하고 당황스럽게 한다."

지하전시장에서 1층으로 올라오면 오줌과 소금결정이 달라붙은 오브제를 촬영한 후 일반 픽서(fixer)가 오줌성분과 일부 유사한 점을 착안해 오줌으로 인화한 사진작품 '물고기연작(Fixed Object)'이 있고, 그 앞엔 여성용품을 소금결정으로 만들어 관객이 가지고 놀게 한 '유리곽(Fixation Box)'도 있다. 오줌을 미술에 이렇게 다용도로 쓴 작가는 드물 것이다.

▲ '고정오브제 A 물고기연작(Fixed object-A fish series)' 디지털프린트 혼합재료 27×27cm 2007(뒷면). 유리곽(Fixation Box) 혼합재료 150×70×150cm 2007. 1층 전시장 광경
ⓒ 김형순
하여튼 코끝에서 지린내 나는 오줌을 재료로 삼았다든가, 음모가 보이는 여자가 서서 오줌을 누는 사진을 찍었다든가, 마피아적인 침묵의 계율을 통해 사회의 비정함을 비꼬았든가, 이 모든 것이 작가나 관객에게 분명 편안한 건 아니다. 그러나 작가는 오히려 이런 심기 불편한 것을 통해서 진정 편안한 것, 통쾌한 것, 시원한 것을 추구한 것이 아닌가 싶다.

끝으로 이런 터부와 고정관념을 깨는 작가의 시도는 얼핏 보면 미비하고 사소해 보이지만 질서와 체제만을 고집하는 사람들에게는 생각 외로 커다란 압력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전시장을 나오면서 이런 작은 몸짓이 남성중심사회의 가치관을 흔들고 우리사회를 보다 역동적으로 변화시키는 소리 없는 단초가 되리라는 믿음도 생긴다.

덧붙이는 글 | '대안공간 루프' 주소:서울시 마포구서교동 335-11 전화:02-3141-1377 이메일:loop@galleryloo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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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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