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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에 걸린 '이화 초 비싸' 라는 뜻의 현수막. 이화여대의 1년 평균 등록금은 국내 최고 수준이다.
 이화여대에 걸린 '이화 초 비싸' 라는 뜻의 현수막. 이화여대의 1년 평균 등록금은 국내 최고 수준이다.
ⓒ 김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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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등굣길, 한 선배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너희 학교(이화여대) 총학생회가 '비싼 등록금이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기본권을 침해했다'는 내용의 헌법소원을 제기할 계획이라는데, 그 보도 봤니?"

금시초문이었다. 마지막 학기를 다니는 나는 대학생이라기보다는 이미 취업준비생에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이야기를 들으며 첫 번째로 든 생각은 '강한 실천력을 보여주고 있는 총학생회가 또 한번 일을 벌였구나', 그리고 동시에 든 생각은 '과연 얼마나 많은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비싼 등록금이 자신들의 행복을 앗아갔다고 생각할까'였다.

적어도 나는 공감할 수 있었다. 등록금이 나를 엄청나게 불행하게 만들었다는 건 아니지만, 국내 최고수준의 등록금(연간 평균 879만원)에 대한 부담감이 나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끼친 건 사실이기 때문이다.

등록금 400만원, 더 오르기 전에 빨리 졸업할 수밖에

등록금 대책을 위한 시민ㆍ사회단체 전국 네트워크 회원 및 대학생들이 지난 3월 12일 서울 이화여대 정문 앞에서 연간 1천만원에 달하는 등록금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며 등록금 인하를 촉구하고 있다.
 등록금 대책을 위한 시민ㆍ사회단체 전국 네트워크 회원 및 대학생들이 지난 3월 12일 서울 이화여대 정문 앞에서 연간 1천만원에 달하는 등록금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며 등록금 인하를 촉구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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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로 졸업을 서둘러야 했다. 해마다 치솟는 등록금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이화여대 사회대의 2008년 등록금은 내가 입학하던 2004년을 기준으로 약 13% 정도 상승했다.

300만원 초반의 돈과 400만원에 가까운 액수는 그 어감부터가 엄연히 달랐다. 무섭게 오르는 등록금 때문에, 난 하고 싶던 일과 공부를 포기해야 했다.

누군가는 "등록금 없으면 장학금 받으면 되지"라며 쉽게 얘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 학교의 성적우수 장학금이라는 것은 등록금의 10% 남짓한 액수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기껏 공부해서 평균평점 3.75를 넘기면 40만원을 받을 수 있다. 400만원에 육박하는 등록금에 비하면 티도 나지 않는 액수다.

그걸 기대하고 A+를 받기 위해 도서관에 한 시간 더 있기보다는 과외 1시간을 더 해 차라리 돈을 버는 것이 나았다.

두 번째, 마지막 학기를 시작하던 지난 9월 초 나는 엄청난 부담감 때문에 우울했던 것이 사실이다.

4년 전, 나는 졸업하기 전에 한 번은 부모님 도움 없이 내 힘으로 등록금을 벌어보겠다고 결심을 했다. 하지만 그 결심은 한 번도 실행하지 못 했고, 어느새 난 마지막 학기를 맞고 있었다.

마지막 기회였다. 어머니께서는 괜한 고생하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하라며 말리셨지만 나는 꼭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고 싶었다. 사실은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 힘으로 등록금 벌려고 몸부림 쳤으나

내게는 매달 소액을 2년 반 동안 투자하여 만기를 바라보는 적립식 펀드가 있었다. 20%를 넘나드는 수익률이 보장만 된다면 등록금 마련은 물론이오, 돈이 좀 남아서 쏠쏠한 기쁨마저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건 웬 날벼락인지 연초부터 시작된 불경기로 수익률은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나는 원금만이라도 회수하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는 은행원의 말을 위로 삼아 펀드를 해지해야 했다.

그 외에도 평소 중고생 과외를 하며 저축해둔 돈이 있었지만 그 모두를 합쳐도 400만원에 가까운 돈은 마련할 수 없었다. 결국 나는 등록금을 세 번에 분납하기로 결정했다.

첫 번째 납부액은 총액의 약 60%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일단 가장 부담되었던 첫 납부액은 펀드를 해지한 돈으로 충당할 수 있었다. 하지만 두 번째·세 번째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당시 내가 모을 수 있는 돈은 30만원을 받는 월 8회 과외 3개로 버는 90만원이었다. 이 돈에서 생활비를 제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두 달을 모으면 나는 등록금 납부 프로젝트를 멋지게 완수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매달 정기적인 90만원의 수입이 들어온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과외학생과 나의 사정으로 1~2번 정도 과외가 연기되는 경우가 다반사이고, 중간·기말고사가 끼어있을 때는 타 과목 공부를 위해 1주일 정도는 비워주는 것이 예의다. 이러다 보니 한 달에 8번의 횟수를 채우는 일은 차질이 생기게 됐다.

여기에 매일 최소 1만원 이상 들어가는 식비와 매달 부과되는 교통비, 카드사용 청구액과 휴대폰 요금을 고려하면 한 달에 저축으로 이어지는 돈은 고작 30만원도 채 되지 않는다.

아직 2차 분납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살인적으로 높은 등록금에 대한 부담을 느끼며, 학업과 등록금 마련을 병행하는 나도 행복추구권을 침해 당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등록금? 난 그런 거 내본 적 없어"

ECC(Ewha Campus Complex). 학교에 입학할 때부터 공사를 하더니, 졸업할 때 쯤 완공했다. 이 시설을 제대로 활용해보지도 못 하고 졸업하게 됐다.
 ECC(Ewha Campus Complex). 학교에 입학할 때부터 공사를 하더니, 졸업할 때 쯤 완공했다. 이 시설을 제대로 활용해보지도 못 하고 졸업하게 됐다.
ⓒ 황승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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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방학, 나는 세계 최고의 명문대로 손꼽히는 미국의 한 대학에서 계절 학기를 수강했다. 미국의 최고 사립대라면 그 등록금도 분명 어마어마할 것이고, (엄청난 천재가 아니라면) 부잣집 자제들만이 다닐 수 있는 학교가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그 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케냐 출신의 아벨에게 비싼 등록금은 누구의 도움을 받아서 내고 있는지 물어보았다.

아벨은 입학 이후 한 번도 등록금을 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자기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학생이 학교로부터 장학금을 받고 있기 때문에 등록금에 대한 부담은 느끼지 않는다고 했다. 이 학교의 경우 사회에 진출한 졸업생들이 학교에 많은 기부와 투자를 하고 있기 때문에 학교는 그 돈을 다시 학생들에게 투자하여 그들이 학업에 열중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있었다.

작년 12월 10일 월스트리트저널 보도에 의하면, 이 대학의 장학금 혜택과 기부금 규모는 대단하다. 장학금 액수가 무려 1억2000만 달러(약 1400억원), 기부금이 350억 달러(약 42조원) 규모라고 한다.

또한 보도에 의하면 이 대학은 올해부터 등록금을 최대 50% 가량 인하했다. 가족의 연수입이 18만달러(약 2억1000만원) 미만인 학부생의 등록금을 가족수입의 10% 이하로 내린 것이다. 따라서 가족의 연소득이 12만 달러(약 1억4000만원)인 학생은 1년 등록금이 1만2000달러(약 1400만원)가 돼 현재 1만9000달러(약 2300만원)에서 크게 낮아졌다. 연소득 6만달러(약 7000만원)가 안 되는 가정의 학생은 학비 전액을 면제받을 수도 있다고 한다.

재학생들에게 많은 투자를 하고 그들을 훌륭하게 키워내 훗날 다시 자신들이 받았던 혜택을 후배들에게 돌려주는 논리, 그리고 소득에 따라 차등 적용되는 등록금.

물론 이런 사례는 미국의 한 학교에 국한된 일부의 사례일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이슈 되고 있는 헌법의 '행복추구권'을 바탕으로 생각해 본다면 학생과 동문·학교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이 방식은 배울 만한 점이 아닐까?

난 이미 마지막 학기, 그래도 후배들은 행복해야지

현재 이화여대 학생들은 교육에 있어 어떠한 차별 받지 않아야 할 권리, 등록금 납부 부담자가 행복할 권리를 주장하고 있다. 총학생회가 얼마나 많은 학생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켜 헌법소원 청구라는 현실적 움직임으로 이끌어갈 수 있을지 기대된다.

사실 난 4학년이고, 이번이 마지막 학기이기 때문에 이 헌법소원에 대해 굳이 관심을 갖지 않아도 된다. 또한 권리구제형 헌법소원은 '기본권의 침해가 있은 날로부터 1년 이내'에 청구해야 하기 때문에, 신입생들만 참여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내가 직접 뛰어들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 최고 수준의 등록금을 꼬박 내왔으나, 그만한 혜택을 못 받았다고 생각하는 이대생으로서, 그리고 졸업을 앞둔 현재까지 등록금 납부에 상당한 부담을 느끼고 있는 학생으로서 헌법 소원을 준비 중인 후배들에게 마음속으로 조심스럽게 응원을 보내고 싶다.

지난해 등록금 인하, 등록금 상한제 실현, 이명박 교육정책 규탄 '3.28 전국대학생 행동의 날' 행사가 28일 오후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전국대학생교육대책위 주최로 열렸다. 일부 참가자들이 비싼 등록금에 고통받는 학생들을 표현하며 행진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등록금 인하, 등록금 상한제 실현, 이명박 교육정책 규탄 '3.28 전국대학생 행동의 날' 행사가 28일 오후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전국대학생교육대책위 주최로 열렸다. 일부 참가자들이 비싼 등록금에 고통받는 학생들을 표현하며 행진을 벌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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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등록금, #헌법소원, #행복추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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