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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케이지의 '장치된 피아노(The prepared Piano)' 1946. 전시장 영상자료. 피아노를 장치하는 존 케이지(John Cage preparing a piano)[왼쪽]
 존 케이지의 '장치된 피아노(The prepared Piano)' 1946. 전시장 영상자료. 피아노를 장치하는 존 케이지(John Cage preparing a piano)[왼쪽]
ⓒ John C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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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백남준아트센터에서는 백남준 탄생 80주년과 그의 스승인 존 케이지 탄생 100주년을 맞아 '엑스사운드: 존 케이지와 백남준 이후'전'을 7월 1일까지 연다. 여기서 엑스(X)는 존 케이지(John Cage 1912-1992)가 말하는 현대음악의 확장(ex-pand)과 백남준이 말하는 서양미술의 추방(ex-pel)을 뜻한다.

백남준은 1952년 동경대에 입학해 음악과 예술사를 전공하고 12음법을 창시한 쇤베르크 논문을 썼다. 1956년에는 독일로 건너가 뮌헨대에서 음악사와 철학을 공부한다. 그러다 1958년 독일 다름슈타트 신음악제에서 존 케이지를 만나 큰 영감을 받는다. 두 거장의 공통점은 전위예술가로 음악과 미술에서 그 통념을 깼다는 점이다.

존 케이지는 1952년 '4분 33초'라는 작품을 발표해 관객들에게 충격을 준다. 스토리가 전혀 없는 소설처럼 한 남자가 피아노 앞에 앉아 있기만 하다가 연주 없이 4분 33초 만에 자리를 뜨는 게 전부다. 이런 작품이 나온 건 그가 선불교와 인도철학에 심취해 화음과 멜로디만 아니라 음색, 관객의 소음, 침묵 등을 음악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백남준이 존 케이지의 넥타이를 자르다

백남준이 1960년 '피아노포르테를 위한 연습곡(Performance of Etude for Piano Forte)'을 연주하다 존 케이지의 넥타이를 자르는 모습. 사진: 클라우스 바리쉬(K. Barisch)
 백남준이 1960년 '피아노포르테를 위한 연습곡(Performance of Etude for Piano Forte)'을 연주하다 존 케이지의 넥타이를 자르는 모습. 사진: 클라우스 바리쉬(K. Barisch)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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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백남준은 '피아노포르테를 위한 연습곡'을 연주하다 청중석에 끼어있던 존 케이지의 넥타이를 느닷없이 잘라버린다. 그런데 왜 이런 무례한 짓을 했을까.

물론 백남준은 존 케이지를 스승으로 존경하고 있었다. 이는 그를 모독한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 한 시대를 끝내고 새 시대의 연다는 의미가 크리라. 다시 말해 백남준은 기존의 서양예술체계와 다른, 보다 높은 차원의 예술세계가 열릴 것임을 예고한 것이다. 백남준이 2006년 뉴욕에서 타계했을 때 문상객도 이 퍼포먼스를 따라했다.

사실 이건 불교의 '단(斷)은 각(覺)이다'라는 철학에서 온 것이다. 즉 깨달음을 얻은 자만이 할 수 있는 것으로 이를 위해선 마음의 비움(無)이 먼저 요구된다. 다시 말해 전위예술가로서 낡은 사고를 버리고 새로운 세계를 열어젖히겠다는 결연한 의지의 발로이다.

백남준의 장난기, 새장 속 존 케이지

백남준 I '새장 속 케이지(Cage in the Cage)' 비디오설치 1990
 백남준 I '새장 속 케이지(Cage in the Cage)' 비디오설치 1990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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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케이지'란 새장이라는 뜻인데 착안한 것이리라. 백남준의 장난기 어린 탁월한 유머감각이 엿보인다. 정말 백남준은 존 케이지를 이렇게 새장에 가두고 싶었을까. 그렇다고 누구도 못 말리는 존 케이지가 이런 새장에 갇힐 사람은 물론 아니다. 그럼에도 새장바닥에 배설물처럼 피아노 현이 쌓인 걸 보면 존 케이지는 여기서도 작곡을 시도한 것인가.

현대미술을 구석기에서 신석기로 전환

백남준 I '총체 피아노(Klavier Integral)' 36×140×65cm 1963. 사진 만프레드 몬트베(Manfred Montwe)
 백남준 I '총체 피아노(Klavier Integral)' 36×140×65cm 1963. 사진 만프레드 몬트베(Manfred Montwe)
ⓒ 백남준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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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이 독일에 가 7년간 준비한 첫 전시회가 1963년 부퍼탈에서 열렸을 때 그 의도는 예사롭지 않다. 음악을 전공한 백남준이 전시제목을 '음악의 전시(Exposition of Music)'라고 한 건 그렇다 하더라도 미술에 음악을 도입한 도발적인 시도는 구석기에서 신석기로 바뀐 것만큼 세계미술사에서 획기적인 사건이다.

이 전시에는 4대의 피아노와 여러 개의 TV가 등장하는데 이에 관객들은 얼떨떨해 한다. '총체 피아노'라는 작품은 그 모양새가 또한 가관이다. 피아노에 작동하는 전구, 깡통, 자물쇠, 암소뿔, 철조망, 전화기, 괘종시계, 헤어드라이어 등을 붙여 마치 소통이 가능한 물체처럼 보이게 한다. 게다가 브래지어까지 입혀 여자로 의인화시켰다.

이런 방식은 위 첫 사진에서 보는 존 케이지의 '장치된 피아노'의 영향인 것 같다. 존 케이지는 이전의 피아노 조율을 거부하고 그 현에 못, 나사, 대나무, 플라스틱 등을 끼워 넣어 연주에서 그 어떤 제약이나 법칙에도 구애받지 않겠다는 작곡가의 의지를 보였다.

소리를 보고 TV에 비디오아트 실험

백남준 I '두 대의 TV에 입력된 소리의 파도_수평/수직(Sound Wave Input on Two TV set Horizontal/Vertical)' 1963. TV화면에 전자파로 그린다는 개념의 첫 전시를 재현하다. '추방(Expel)'이라는 단어가 뒤로 보인다
 백남준 I '두 대의 TV에 입력된 소리의 파도_수평/수직(Sound Wave Input on Two TV set Horizontal/Vertical)' 1963. TV화면에 전자파로 그린다는 개념의 첫 전시를 재현하다. '추방(Expel)'이라는 단어가 뒤로 보인다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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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대상을 그리는 미술이 아니라 소리를 보는 미술을 추구한다. 공간에 시간을 들여와 다원예술의 면모를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음악과 소리가 TV로 시각화하면서 비디오아트를 탄생시킨다. 이런 발상은 선불교에서 말하는 "새소리를 귀로 듣지 않고 눈으로 본다"는 개념에서 왔다고 볼 수 있다.

이건 백남준이 미술에서 시각만 아니라 청각, 촉각 등을 결합시킨 것이다. 그도 첫 전시서문에서 "여기 악기들은 밟고, 만지고, 쓰다듬고, 두드리며 감각을 결합시켜 준다"라고 적고 있다. 이는 서양미술을 뒤엎는 혁명적인 발상으로 '추방(Expel)'이 부제가 된 이유다.

전시장에 사라지는 시간을 몸으로 그리다

존 케이지 작곡 '인간첼로(John Cage's Charlotte Moorman with Human Cello performed with Nam June Paik)' 1967. 2층 전시실 영상자료
 존 케이지 작곡 '인간첼로(John Cage's Charlotte Moorman with Human Cello performed with Nam June Paik)' 1967. 2층 전시실 영상자료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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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은 또한 몸으로 그림을 그리는 해프닝아트 즉 퍼포먼스에 올인한다. 위 작품은 존 케이지가 작곡한 '인간 첼로(Human Cello)'로 백남준과 샬럿 무어맨이 연주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 퍼포먼스는 1965년부터 시작돼 휘트니미술관 등 여러 곳에서 재연된다.

샬럿 무어맨(C. Moorman 1933-1991)은 백남준 예술을 열렬히 지지하는 예술의 화신이었다. 그녀는 원래 줄리아드 출신의 재원으로 한때 아메리칸 심포니오케스트라 단원이기도 했다. 1963년 뉴욕아방가르드페스티벌 때부터 해프닝 아트를 주도했고 1964년 뉴욕에서 백남준을 만난 이후 퍼포먼스 예술의 뮤즈가 된다.

백남준이 이렇게 20세기 현대미술에서 몸을 중시하고 비디오아트를 창시한 건 얼핏 보면 반예술적이고 비이성적인 것 같으나 그 이유가 있다. 바로 20세기의 맹목적인 합리주의와 과학주의가 유럽과 독일을 끔찍한 파시즘과 나치즘으로 내몰았기 때문이다.

피아노와 TV가 결합한 설치조각

백남준 I 'TV 피아노(TV Piano)' 1988. AK 플라자 소장
 백남준 I 'TV 피아노(TV Piano)' 1988. AK 플라자 소장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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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TV와 피아노를 결합한 전자조각을 보자. 이전의 'TV 부처'나 'TV 정원'의 같은 맥락이다. 백남준은 이렇게 TV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매체를 공존시켜 한국인의 독창적인 융합미를 과시한다. 조각이 이동식이고 실시간으로 관객의 모습이 폐쇄회로로 중계되어 백남준이 강조하는 '소통과 참여'를 몸으로 경험하게 한다.

이 작품은 13개의 대형모니터와 피아노로 구성되어 있는데 마치 거인처럼 보인다. 인간이 피를 만들 수는 없지만 피가 통하는 예술품을 만들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전자리듬이 피아노 주위를 맴돈다고 할까. 백남준은 이런 설치작품을 통해 조각의 범위도 넓힌다.

시공간, 시청각의 경계를 넘나들다

오토모 요시히데 & 야수토모 아오야마 I '위드아웃 레코드(Without Records, 레코드 없는 턴테이블)' 사운드설치 2008
 오토모 요시히데 & 야수토모 아오야마 I '위드아웃 레코드(Without Records, 레코드 없는 턴테이블)' 사운드설치 2008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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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일본의 전위작곡가이자 기타연주자인 오토모 요시히데와 그의 동료 야수토모 아오야마가 합작한 작품을 감상해 보자. 오토모 요시히데는 '노이즈 재즈'를 비롯하여 즉흥음악을 펼치며 현재 일본실험음악의 대부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작품은 무엇보다 시간과 공간, 시각과 청각의 경계를 넘나들며 소리, 공간, 신체의 관계를 탐색한다.

또한 이 작품은 그 제목에서 보듯 백남준이나 존 케이지가 언급한 7음계 3화음을 뛰어넘는 무조음악을 연상시킨다. 턴테이블에 레코드판은 없지만 컴퓨터로 조정된 프로그램으로 겹음이 들린다. 또한 오래된 턴테이블에는 손때 묻은 기억이 남아 있어 이것으로도 충분한 기록(records)이 될 수 있음을 일깨워준다.

백남준의 동서양 후예들, 소리의 시각화

지문(Zimoun 스위스 작가) I '302개의 장치된 모터(Volume-302 prepared dc-motors)' 종이박스와 코르크 볼. 사운드 설치 2012
 지문(Zimoun 스위스 작가) I '302개의 장치된 모터(Volume-302 prepared dc-motors)' 종이박스와 코르크 볼. 사운드 설치 2012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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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스위스 작가 지문의 작품을 살펴보자. 그는 공간을 활성화하고 변형시켰다는 공로로 '2010년 전자예술상(2010 Prix Ars Electronica)'을 수상한다. 줄 달린 작은 모터가 302개의 종이박스를 쉴 새 없이 두드리면서 나는 마찰음이 공간 속에서 관객에게 어떻게 반응하는지 관찰한다. 청각을 통한 시각 확장을 시도한 백남준과 역시 통한다.

이밖에도 김기철, 이세옥 같은 한국작가와 2010년 터너상 수상자인 영국의 수잔 필립스, 2011년 베니스비엔날레 은사자상 수상자인 하룬 미르자, 2013년 베니스비엔날레 프랑스대표로 참가하게 될 앙리 살라 등의 작품도 볼 수 있다. 백남준이 사운드 개념으로 비디오아트를 창시한 이래 21세기미술은 이렇게 '소리의 시각화'에 온통 정신을 쏟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참가작가] 디디에 포스티노 (Didier FAUSTINO, 프랑스), 로리스 그레오(Loris GREAUD, 프랑스), 하룬 미르자(Haroon MIRZA, 영국), 수잔 필립스(Susan PHILIPSZ, 영국), 앙리 살라(Anri SALA, 알바니아), 이이무라 타카히코(Takahiko IIMURA, 일본) 모리 유코(Yuko MOHR, 일본), 김기철(Kichul KIM), 이세옥(Sei RHEE), 오토모 요시히데(Otomo YOSHIHIDE) & 야수토모 아오야마(Yasutomo AOYAMA, 일본) 우메다 테츠야 (Tetsuya UMEDA, 일본), 지문(ZIMOUN, 스위스), 존 케이지(John CAGE, 미국) 백남준 (Nam June PAIK) [총 14명]

입장료 2000-4000원. 031-201-8571 [전시관련 존 케이지 음악회_백남준아트센터 1-2층] 4월 28일: 존 케이지 <우리의 봄이 온다> 정성인(피아노) I 5월5일: 존 케이지의 <4분 33초> e.c.-ap.i.p 앙상블 I 5월 12일: 존 케이지 <4> 가이아(4중주) I 5월 19일: 존 케이지 <상상풍경> 추계예술대 학생 24명 [참고] www.njpartcenter.kr



태그:#백남준, #존 케이지, #샬럿 무어맨, #사운드 아트, #해프닝 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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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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