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1954년 형사소송법 제정 이후 처음으로 경찰이 수사개시권을 갖게 됐다."

 

20일 박종준 경찰청 차장이 검·경 수사권 조정 합의안을 발표하면서 한 말이다. 형사소송법 제196조 제2항에 수사개시권을 명문화한 걸 두고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하지만 일선 경찰관들의 반응은 완전히 달랐다. 대부분 경찰관들은 "수사권 조정의 의미를 찾아볼 수 없는, '안 하느니만 못한' 합의안"이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심지어 일부에서는 "이번 형사소송법 개정안은 악법"이라는 혹평까지 나왔다.

 

"무소불위 검찰권력은 놔두고 검찰의 경찰 통제만 강화시켜"

 

일선 경찰관들이 이번 합의안에 반발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조현오 경찰청장까지 참석한 20일 청와대 협상에서 검찰의 수사지휘권을 한층 강화한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합의됐기 때문이다. 

 

이 합의안에 따라 '수사관, 경무관, 총경, 경감, 경위는 사법경찰관으로서 검사의 지휘를 받아 수사를 하여야 한다'는 제196조 제1항은 '수사관, 경무관, 총경, 경감, 경위는 사법경찰관으로서 모든 수사에 관하여 검사의 지휘를 받는다'로 바뀐다.

 

'검사의 지휘를 받아 수사를 하여야 한다'가 '모든 수사에 관하여 검사의 지휘를 받는다'로 바뀐 것이다. 이는 검찰의 수사지휘권을 더욱 구체화함으로써 검찰의 수사지휘권을 강화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게다가 제196조 제3항('사법경찰관리는 검사의 지휘가 있는 때에는 이에 따라야 한다')과 제4항('사법경찰관은 범죄를 수사한 때에는 관계서류와 증거물을 지체없이 검사에게 송부하여야 한다')에서도 검찰의 우월적 지위를 명문화했다.

 

박 차장이 의미부여한 대로 50여 년 만에 경찰의 수사개시권을 형사소송법에 처음으로 명문화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무늬만 수사개시권'이라는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경찰관 A씨는 "'모든 사건에 대하여 검사의 지휘를 받는다'에 합의한 대목은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들다"며 "(합의안은) 검찰의 지위를 대폭 강화한 것"이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대다수 경찰관들이 '당혹스럽고 답답하다'는 반응"이라고 전했다.

 

A씨는 "그동안 경찰은 (독자적으로) 수사개시를 해왔다"며 "그런데 이번 합의안은 이것을 형사소송법에 명문화한 것 말고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관 B씨는 "진정한 수사권 조정은 기소권과 수사권을 분리해 검찰에는 기소권, 경찰에는 수사권을 주는 선진국형"이라며 "하지만 평검사들이 목소리를 높여 형사소송법 개정(수사권 조정)의 명분과 취지를 흩트렸다"고 지적했다.

 

B씨는 "일선 수사간부들 사이에서는 '이건 악법 아니냐'고 반발하고 있다"고 전한 뒤, "무소불위의 검찰권력을 이번 수사권 조정을 통해 분산했어야 했다"며 "하지만 '모든 사건에 대하여 검사의 지휘를 받아야 한다'고 명시해 검찰의 경찰통제를 강화했다"고 말했다.

 

경찰관 C씨는 "여야를 막론하고 무소불위 검찰권력에 꾸준히 문제제기를 해왔고 이번 형사소송법 개정을 통해 검찰 견제가 가능해질 수 있었는데 갑자기 틀어져 버려 당황스럽다"며 "경찰 수뇌부가 정말 노력했는지 의문"이라고 경찰 지도부 책임론까지 제기했다.

 

경찰관 D씨는 "어제부터 경찰청 내부망이 수사권 조정 문제로 엄청 뜨겁다"며 "대부분 이번 합의안에 비판적인 내용이 많고 심지어 '경찰 수뇌부는 뭐했냐? 물러나라'고 요구하는 사람도 있다"고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D씨는 "이번 수사권 조정 합의 과정을 보면서 대통령조차 힘있는 검찰권력에 약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토로했다.

 

"내사도 지휘범위에 포함? 검찰이 앉아서 만리 보겠다는 것"

 

일부에서는 신중론도 제기되고 있다. 수사파트에 있는 경찰관 E씨는 "현재의 합의안은 검찰이 경찰을 더 강하게 지휘하겠다는 것이긴 하지만 법무부령에 적시될 수사지휘범위를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개정될 형사소송법 제196조 제3항은 "검사의 지휘에 관한 구체적 사항은 법무부령으로 정한다"고 규정돼 있다. 이는 향후 검·경 수사권 조정 갈등의 2라운드가 될 지점이다.  

 

경찰관 F씨는 "검사는 구속사건만 맡고 불구속사건은 검사의 지휘를 받지 않고 경찰이 처리하도록 해야 한다"며 "그런 정도의 재량권을 경찰에 주는 '수사권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검사의 수사지휘범위에 내사를 포함시키느냐가 향후 검·경 간의 쟁점사항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내사는 '수사 대상자를 피의자로 입건하기 전에 실시하는 초기 단계의 조사'를 말한다. 경찰은 지금까지 형사입건하는 단계부터 검찰의 지휘를 받아왔다. 즉 내사 사건을 검찰에 보고하지 않았고, 검찰로부터 지휘도 받지 않았다는 것.

 

그런데 이귀남 법무장관과 조현오 경찰청장은 20일 사법제도개혁특위(사개특위) 전체회의에 출석해 "경찰 내사 사건은 지휘 대상에서 빠진다"라고 말했다. 물론 이귀남 장관이 바로 "중복 수사나 내사의 정의가 혼선을 빚는 부분에 대해 법무부령으로 정리하겠다"고 말을 바꾸긴 했지만, 내사가 수사지휘범위에서 빠질 경우 검찰의 수사지휘권은 축소될 수밖에 없다.

 

경찰관 G씨는 "내사는 수사대상이 될지 안될지를 판단하기 위해 첩보를 수집하는 것인데 그것마저 검찰지휘를 받아야 한다면 경찰은 아무것도 못한다"며 "검찰이 앉아서 만 리를 보겠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태그:#검·경 수사권 조정, #형사소송법, #수사개시권, #수사지휘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