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포르노 배우겸 페미니스트 에널벨 청. 29일부터 국내 개봉되고 있는 다큐멘터리 영화 '섹스 : 에너벨 청 스토리'의 주인공이다. 10시간에 걸쳐 251명 남자와 섹스쇼를 벌이는 장면은 우리에게 무척 낯선 페미니즘 표현방식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우리 역사를 4백년쯤 거슬러 올라가면 비슷한 한 여성을 만날 수 있다. 유감동. 조선왕조실록을 들춰보면 '유감동'이라는 사대부집 여성이 나온다. 이 여성이 나오는 세종 9년 8월 18일의 실록은 마치 신문 사회면 기사와도 같다.

"평강 현감 최중기의 아내 유감동이 남편을 배반하고 스스로 창기라 일컬으면서 서울과 외방에서 멋대로 행동하며 간부(奸夫) 김여달·이승·황치신·전수생·이돈과 여러 달 동안 간통했다"

그러나 세인들의 관심을 끄는 부분은 사대부집 여자가 연루된 간통사건이기보다는 그와 상대한 남자들의 수자가 무려 39명에 이른다는 점이다. 그네들 신분도 사헌부 지평, 공조판서 등의 고위관리에서부터 각지의 수령, 남편의 매부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그러나 이렇게 간통을 벌여 풍속을 문란케 한 유감동과 그의 간부들에 대해 벌을 내리는 것은 쉽지 않았다. 조선의 법률에 따르면 양반 부녀자와 간통한 남자는 극형으로 다스리는 게 상례였으나 유감동과 관계를 맺은 파트너 중에는 국가 공신의 아들까지 끼어 있어 형량을 결정하기가 무척이나 어려웠다.

조정에서는 '죽이자'와 '봐주자'로 의견이 갈리었다. 그러다 결국 남성들이 주름잡던 조정은 이같은 불미스러운 일이 감동의 음탕함에서 비롯된 사건으로 단정짓고 유감동과 성관계를 맺은 남성들에게는 장형이나 파직 정도의 가벼운 처벌을 내린다. 그 덕분에 유감동에게도 변방의 관비로 보내는 것으로 결론이 내려져 목숨만은 건진다.

이는 유교사회가 무르익지 않은 조선초기의 성풍속도를 단적으로 말해주는 사건이기도 하다. 유감동이 관계한 남성의 숫자도 유감동이 유부녀이고 파트너들이 고위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검찰당국'이 발표한 39명보다 더 많았을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그 두세배에 이르는 1백여명에 달했을지도 모른다.

'00부인 바람났네' '애들은 재웠수?'와 같은 3류 비디오 테이프를 보는 듯하다. 그러나 이것은 15세기 조선사회에서 실제로 벌어진 섹스 연쇄 사건이다. 그렇다면 유감동은 왜 그랬을까? 그 이유에 대해 한 여성의 사생활에 국한된 문제로 단순한 간통사건이라고 단정내 버리면 그만이지만 당시 세종 임금과 조정 관료들까지 '유감동 간통 사건'의 처리를 놓고 옥신각신했던 것을 보면 이것은 개인 차원을 넘어 사회 문제로 대두되었던 사실임에 틀림없다. 남편을 가진 한 여인이 뭇 남성과 섹스를 하는 장면은 도덕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간통일 수도 있으나 당시 사회가 여성을 억압하는 남존여비의 구조라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유감동의 간통사건은 남성위주의 사회와 여성으로서의 삶이 부닥치면서 튀어나온 페미니즘의 발로라 할 수 있다. 남편을 제껴두고 자신의 파트너를 찾아 어둠속을 걸어가는 유감동을 보라! 남성들이 여럿 여성들을 거느리고 여성들은 일부종사해야 하는 사회의 모순된 구조를 향해 정면으로 다가가고 있는 것이다.

"섹스는 남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여성도 자신이 원하는 남자와 섹스를 할 수 있다" "내 인생은 나의 것이다" 아마도 그녀는 이렇게 속으로 외쳐댔을 것이다. 후대의 사람들이 어떻게 평가하든 그녀는 우리 여성사에 죽음을 무릅쓰고 사랑 아니면 '페미니즘'을 갈구한 인물임에 틀림없다.

5백년이 지난 지금 또 싱가포르의 한 여성이 이와 비슷한 일로 조선땅에서 화제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영화 홍보차 내한한 포르노 배우 에너벨 청. 그녀가 10시간동안 251명의 남자와 섹스쇼를 벌이고 있는 장면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섹스 : 에너벨 청 스토리'에 관한 이야기들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섹스 : 에너벨~'은 주인공 에너벨 청의 자전적 스토리로 옥스퍼드 대학에서 법률을 공부하고 남가주대학에서 여성학을 전공한 고학력 여성이 포르노 배우로 변신하는 과정과 주변의 사람들에게 이해를 구하는데서 오는 갈등과 고통이 두 개의 큰 기둥을 이룬다.

그러나 그 흔하디 흔한 포르노가 다시금 문제가 되는 것은 조선시대의 '유감동'의 경우처럼 '섹스 : ~'의 스토리가 픽션이 아닌 실제 상황이라는 점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선정적인 남녀의 성교 장면을 넘어서 사뭇 진지한 페미니즘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 역시 일반인들과 여성학자들 사이에서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그러면 왜 하필 남자의 숫자가 251명일까? 원래 에너벨 청은 251명이 아닌 300명의 남성들을 벌거벗은 채로 줄서게 했으나 섹스 도중 예기치 않은 상처가 나는 바람에 251명과의 관계로 마무리지었다고 한다. 에네벨 청은 육체적으로 고통과 환희가 가득 찬 표정으로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다 보는 앞에서 마지막 251번째 남자까지 '마라톤 섹스'를 벌이는 열성을 보였다.

지난해 칸느 영화제와 선댄스 영화제 공식 초청작으로 주목을 끈 이 영화를 보고 한 기자가 "어떻게 251명의 남자와 섹스를 할 수 있는냐"고 묻자 에너벨 청은 "한 남자와 251회 섹스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라고 되받아쳤다고 한다. 이렇게 릴레이 섹스쇼를 벌이게 된 동기를 묻는 질문에 대해서도 "많은 여성과 관계를 맺는 남성들은 그냥 성적 능력이 강한 남자 정도로 평가된다. 반면 많은 남성과 관계를 맺은 여성들에겐 창녀라는 표현이 따라 붙는다. 이런 위선적인 관습의 잣대를 뒤집어 보고 싶었다"고 대꾸했다.

그녀는 섹스를 말하는 게 아니라 '여성'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포르노라기보다는 페미니즘을 목청을 다해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그녀는 처음부터 포르노 배우였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순진무구한 소녀에 불과했다. 그녀의 이름 역시 에너벨 청이 아니라 그레이스 퀙이었다. 에너벨 청은 포우의 시와 삼류 영화의 제목을 합성해 만든 예명이라고 하지 않는가?

1972년 5월 22일 교사부부의 외동딸로 태어난 에너벨 청은 남학생과 만날 수 있는 기회라곤 교회에 갈 때와 방과후 아들셋이 있는 이웃집에 놀러갈 때뿐일 정도로 우리나라 조선시대와 같은 '남녀칠세 부동석'의 환경에서 자랐다.

그런데 영국 옥스퍼드 대학시절 지하철 정거장에서 만난 6명의 남자들에 의해 윤간을 당한 데 이어 남가주대로 편입해서는 많은 학생들이 거리낌없이 대상을 바꾸며 프리섹스를 즐기는 것을 보고 문화충격을 경험한다. 곧 그녀 자신도 마약에 손을 대고 학교 내의 많은 남학생들과 성관계를 갖는다. 여성학 수업 도중 남성중심적인 교수의 사고에 격분해 페미니스트로서의 깃발을 높이 치켜든다. 그가 높이 치켜든 깃발이 바로 '섹스 : 에너벨 청 스토리'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라 할 수 있다.

한 여자가 여러 남자로부터 섹스를 당하는 것을 속어로 'gang bang'이라 한다. 우리나라 말로는 '윤간'이라고 한다. 이것 또한 남성중심적 표현일 수 있다. 이에 대해 세계적 '섹스의 화신'이자 '페미니스트'라고 자임하는 에네벨 청은 다른 각도로 단어의 정의를 내린다. "한 여성이 여러 남자와 섹스를 벌이는 것". 그리고 에너벨 청은 몸소 그것을 행동으로 보여줬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허전함이 남는다. 에너벨 청은 한가지 중요한 것을 빠뜨리고 말았다. 그것은 '사랑'이다. 조선시대의 유감동은 일부종사라는 엄격한 사회적 계율 속에서도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를 좇아 또다른 자기만의 세상을 열어간다.

그러나 에너벨 청은 비슷하지만 다르다. 페미니즘을 위해 톱니바퀴에 물려 돌아가는 듯 뭇남성들과 릴레이 섹스를 벌이고 있으나 거기엔 어디서도 인간적 체취가 풍기지 않는다. 그야말로 우리가 말하는 gang bang이다. 그것은 에너벨 청이 얘기하는 여성 주도의 섹스가 아닌 남성 주도의 섹스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우리가 아침에 신문을 펼쳐들었을 때 나오는 '여성 집단 성폭행' 사건과 무엇이 다른가? 단지 에너벨 청이 기획했다는 것 빼고는.

에너벨 청은 분명 나름대로 독특한 방식의 페미니즘을 선보이려 노력했다. 그리고 이런 현상들이 현대에 들어서 부쩍 늘어난 페미니즘의 한 양상이라는 사실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뜻은 좋지만 방법은 문제다'라는 식의 비판을 면키 어렵다. 그녀 자신이 여성학 전공자라면 더욱 더 페미니즘의 핵을 잘 짚어야 했을 것이다.

그 핵이라고 하는 것은 여성이 서고 남성이 쓰러지는 것을 말하진 않는다. 단적으로 말해 10시간이 아니라 10년이 걸려도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251명을 찾아 섹스쇼를 벌여야 했었다. 그래야 '피압박자'인 여성이 남성 중심의 구조에서 자유로워지는 것과 동시에 '압박자'인 남성도 그 잘못된 사회의 굴레에서 벗어나 결국 우리 사회가 제 궤도로 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섹스 : 에너벨~'이 한낱 영화가 아니라 현실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그녀의 방식에 대해서도 이러쿵 저러쿵 말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영화 출연 역시 한번 찍고 마음에 안 들면 던져버릴 수 있는 그런 필름이 아니라 다시는 지워버릴 수 없는 그녀의 생생한 인생이 아니던가?

그리고 또 한가지. 한국에 와서 '남성 251명과 영화 함께 보기'라는 선정적인 이벤트를 벌일 게 아니라 다소 딱딱할지 모르지만 여성 251명과 진정으로 페미니즘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자리를 마련해 볼 필요가 있다. 그녀가 결국 보여주고 싶어하는 것은 아무것도 걸치지 않는 '젖꼭지'와 '나신'이 아니라 '여성'과 '페미니즘'이 아닌가? 에너벨 청은 '섹스의 여신'이란 꼬리표를 떼고 '평범한 페미니스트'로 돌아가는게 좋을 듯 싶다. 아니면 한국에 온 김에 4백년전 조선의 페미니스트 유감동을 참고하는 것도 좋을 듯 싶다. 그 은근하면서도 지독한 페미니즘을?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