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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은 감사의 대상이지요. 감자 하나를 심어도 땅 속에는 감자가 주렁주렁 달리잖아요. 그러니 감사의 대상일 수밖에. 항상 우리에게 베풀어 주는 건 자연밖에 없어요."

친구이자, 동반자인 이상인(57)·정성자(54) 부부가 말하는 땅의 의미입니다.

거름 중 휴식을 취하는데도 여유가 흐릅니다. 농부들에게 땅은 '생명의 땅'입니다.
 거름 중 휴식을 취하는데도 여유가 흐릅니다. 농부들에게 땅은 '생명의 땅'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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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자씨는 30대 초반, "이래도 하하, 저래도 하하 하며 늘 손해만 보는 남편을 보고, '왜 저리 멍청하게 살까?' 이해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가슴에 우주를 품은 남편이 더없이 크게 보인다"고 합니다. 오십 중반에 아내에게 이런 소리 듣는 남편이라면 성공한 삶이라 할 수 있겠지요.

"우리 부부는 농사일 배우느라 매주 바빠요"

꽃 피는 춘삼월. 농부들 손길도 밭 갈고 거름 주느라 분주합니다. 덩달아 여기저기 텃밭을 일구는 어설픈 농사꾼 손길도 바빠집니다. 왜, 어설픈 농사꾼이냐고요? 현재의 여가활동을 노후 일거리 삼으려고 준비하는 일손이기에 더욱 그러합니다.

"노후 준비? 구례 쪽을 염두 했는데, 아무래도 고향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올해 이 근처에 집을 지을 거구요. 이 산밭은 그때를 대비해서 샀어요. 우리 부부는 농사일 배우느라 매주 바빠요."

한쪽에는 씨를 뿌렸습니다.
 한쪽에는 씨를 뿌렸습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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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이상인ㆍ정성자 부부와 만나 텃밭이 있는 여수시 율촌 상봉으로 향했습니다. 거제도에 사는 그들 부부는 주말이면 어김없이 텃밭 가꾸기에 빠져듭니다. 텃밭 가는 길목에 핀 목련, 개나리, 광대나물, 민들레 등이 일행을 반깁니다.

텃밭인줄 알았더니 근 300여 평이나 되는 큰 밭입니다. 이날 목표는 밭 가운데 자란 나무를 뿌리째 파내는 일이었습니다. 파내기 쉽게 나무줄기를 미리 잘라, 나무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기 힘듭니다. 하지만 힘차게 뻗은 뿌리를 보면 꽤 컸을 걸로 짐작됩니다.

허리 다치면 어쩌려고 남편을 혹사시킬까?

이상인씨, 어설플 줄 알았던 괭이질이 제법 폼이 나옵니다. 소싯적, 한 가닥 했던 폼이네요. 그렇다고 주업으로 일하는 농사꾼을 따를 수야 없지요. 전문 농부들이야, 어떤 일이든 여유가 묻어나니까요.

아니나 다를까, 이상인씨 그새 가쁜 숨을 몰아쉽니다. 육십 가까운 나이에 허리 다칠까 걱정됩니다. 부인 정성자씨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그러다 허리 다치면 어쩌려고 남편을 저리 혹사시키세요."
"아니에요, 오늘 다 파려는 게 아니라 할 수 있는데 까지만 할 거예요."

남편이 염려스러웠던지 정성자씨도 거듭니다. 잠시 후, 빗방울이 비치기 시작합니다.

이상인 씨 괭이질이 제폼 폼이 나오지요?
 이상인 씨 괭이질이 제폼 폼이 나오지요?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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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여유가 '평화로운 땅'을 만나게 해

이들 부부가 노후를 편안히 보낼 수 있는 '돈 되는 땅'을 거부하고 돈 안 되는 땅을  산 이유가 궁금합니다. 그 이유를 들어볼까요?

"우리라고 돈 되는 땅을 왜 모르겠어요. 또 돈 되는 땅을 구입할 기회도 많았지요. 그러나 죽으면 그만인 세상, 자기 삶에 만족하고 사는 게 우선 아니겠어요? 마음을 비운 덕에 돈 되는 땅을 사는 '미련한 짓'은 피할 수 있었지요."

알면서도 피해갔다는 말이 알쏭달쏭합니다. 이를 두고 '멍청한 짓이다'라고 비아냥거릴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곰곰이 따져보면 '비움의 철학'을 아는 지혜로운 부부란 생각입니다. 마음의 여유가 '평화로운 땅'을 만나게 한 것이겠지요.

그래서일까, 동네 할머니들은 "이 밭은 기름진 땅이라 뭘 심어도 잘되는 밭이다"며 "'깨'하고 '콩' 심으면 좋다"고 훈수한답니다. 어설픈 농사꾼이 깨 농사지을 수 있을까. 지켜봐야겠지요?

나무뿌리를 파내는 부부.
 나무뿌리를 파내는 부부.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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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다음과 U포터에도 송고합니다.



태그:#텃밭, #어설픈 농부,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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